"정우성씨는 언제부터 말을 잘했나요?"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12.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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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사진제공=NEW


"정우성씨는 언제부터 말을 잘했나요?"

"태어날 때 '응애, 응애' 하면서부터요."


12월 초 어느 사석에서 정우성이 한 말이다. 그가 유엔난민기구 홍보대사 자격으로 방글라데시에서 로힝야 난민을 만나고 귀국한 날 저녁이었다. 무려 60만명이나 되는 난민들이 피신해 끝없이 텐트들이 펼쳐져 있던 광경을 목도한 심경을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이런 사태를 야기한 미얀마 정부에 대해선 어떤 말도 하려 하지 않았다.

"유엔난민기구는 각 나라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정치적인 역학관계가 얽힌 문제들 속에서 난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당 국가에 대한 정치적인 견해는 드러내선 안된다. 오로지 인도적인 목적으로만 접근해야 난민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엄숙했다.

그가 방글라데시로 떠나기 전 '강철비' 홍보를 하면서 장난감 총을 겨냥하는 장면이 유명세를 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명한 사격 자세를 흉내 낸 탓이다. 정우성은 당시 인터넷 라이브로 진행된 영상에서 "유명한 사격자세다"라면서 굳이 패러디였단 걸 숨기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물었다. 정우성은 아무 준비 없이 들어갔는데 장난감 총을 소품으로 준비했기에 그냥 떠오르는 대로 했다고 말했다. "워낙 유명한 자세 아니냐"고도 했다. 그러면서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

소속사인 아티스트 컴퍼니 대표를 맡으면서 연기까지 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특히 대표가 연예인이면 잘될 때는 모르지만 안 될 때 소속 연예인들과 헤어지게 되면 상처를 받지 않겠냐고 물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란 없는 법이고, 워낙 그런 일들을 정우성 스스로도 많이 봐왔을 터다.

정우성은 "그래서 회사 경영은 전문인을 영입했다"면서 "난 그저 20년을 넘게 연예계 활동을 한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연예인이기에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것들, 더 속상한 것들, 알아야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나누고 싶다. 나중에 이별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서로가 덜 상처받을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래도 서운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게 맞는 것 같다." 진지했다.

그리하여 "정우성씨는 언제부터 말을 그렇게 잘했나요?"라고 물었다. 정우성은 아기처럼 두 손을 말아쥐면서 "태어날 때 '응애, 응애' 하면서부터요"라고 말했다. "푸하하" 서로 웃었다.

정우성의 말대로, 그는 원래부터 말을 잘했다. 말을 풀어내야 하는 토크쇼에 거의 출연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조각 같은 외모에 가리어진 것도 크다. 겸양이 미덕이던 시절, 잘생기면 연기 못한다는 편견이 많던 시절, 정우성은 말을 아꼈다. 숨기지는 않았다. 연예인에게 스캔들이 치명적이라고 여겨지던 데뷔 초반에도, 그는 오래 사귄 일반인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상대를 배려해 조심스러워 했을 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나이 마흔을 넘으면서 자유로워졌다. 외모 개그를 하기 시작했다. 조각 같은 외모다라고 하면 "너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잘생겨서 불편한 건 없었냐고 하면 "있겠냐"라고 했다. 자신을 둘러싼 선입견과 편견을 즐기기 시작했다. 잘난 체처럼 느껴지지 않게, 불쾌하게 여겨지지 않게, 너스레를 떨면서 하나둘씩 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둘이서 탈모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나도 머리가 빠져서 걱정"이라는 정우성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자가 "그래도 내가 당신보다 나은 게 하나 있다"고 했다. 정우성은 "나 정우성인데"라면서 씨익 웃었다. "애가 둘이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정우성은 "그건 못 이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같이 웃었다.

멋있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쉽지 않다. 가진 게 더 많을수록, 연예인처럼 칼날 위에 서 있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하나하나 조심스러운 법이다. 언제 칼날로 떨어질지 모르는 탓이다. 정우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다. 아주 어릴 적부터 칼날 위에서 버티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순간 굳이 칼날 위에 서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내려와서 같은 눈높이로 이야기하는 방법을 터득한 듯 하다. 내려놓으면 편하다는 걸 깨달은 듯 하다.

문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던 연예인 중, 정우성만큼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이야기한 사람은 드물다. 정우성은 지난해 11월 '아수라' 관객과 대화에서 "박근혜 나와"라고 외쳤다. 그 뒤로 '더 킹' 보이콧 움직임이 있었다. '강철비'도 친박단체가 촬영장에서 시위를 예고하기도 했다. 정우성은 숨지 않았다. MB사격 자세 패러디는 그 뒤였다.

"KBS정상화"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정우성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자격으로 지난 20일 KBS ITV '뉴스집중'에 출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최근 관심사를 묻는 한상권 앵커의 질문에 "KBS 정상화"라고 말했다. 정우성은 당황하는 한 앵커를 바라보며 "1등 공영방송으로 위상을 빨리 되찾길 바란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이튿날 셀프 카메라로 파업 중인 KBS새노조원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KBS정상화"만 화제가 됐지만, 그의 또 다른 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우성은 '뉴스집중'과 같은 날 출연한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주 앵커가 "우리 사회에서 유명한 분들이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연예인이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우회적인 질문이었다.

정우성은 "제가 얘기하고 있는 말과 표현은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한 국민이 나라에 바라는 염원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우리 국민 모두 정치적 발언을 서슴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우성은 '생각이 없는 국민은 국가의 큰 자산'이라는 히틀러의 말을 인용하면서 "독재자의 입장에서는 (생각이 없는 국민이)얼마나 큰 자산이겠느냐"며 "국민의 무관심은 이상한 권력을 만들어내는 용인에 가까운 행위"라고 강조했다.

정우성이 태어날 때부터 말을 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지금 필요한 때, 필요한 말을 잘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다르다. 정우성은 나이를 먹을수록 둘의 차이를 좁히며 살려 하고 있는 것 같다. 멋지게 나이를 먹고 있다.

2017년을 보내며 정우성의 말들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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