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양우석 감독 "'변호인' 이후 中피신, '강철비' 만든 이유는?"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12.14 16:33 / 조회 : 7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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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석 감독/사진=홍봉진 기자


양우석 감독(48)은 데뷔작 '변호인'으로 영광과 위기를 같이 맛봤다. 데뷔영화로 1137만명의 관객을 만났다.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던 '변호인'으로 본의 아니게 중국에서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한국에 있으면 위험하니 외국으로 피신해 있으라는 주위의 권유를 받아들여야 했다. 실제 '변호인'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으니, 그런 권유가 기우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랬던 양우석 감독이 이번에는 한반도 핵전쟁과 관련된 영화로 돌아왔다. 14일 개봉한 '강철비'는 그가 썼던 웹툰 '스틸레인'을 원작으로 한 작품. 북한에서 쿠테타가 일어나고 중상을 입은 북한 권력1호가 한국으로 피신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북한의 선전포고와 미국의 선제 핵공격 등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와 흡사한 영화 속 내용이 울림을 준다. 양우석 감독은 왜 '변호인' 차기작으로 한반도 핵전쟁을 다룬 이야기를 꺼내들었는 지,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인터뷰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변호인' 이후 2년여 동안 중국에 머물다가 지난해 초 한국으로 돌아와 '강철비' 준비를 시작했는데. 왜 중국으로 떠났나. '변호인' 개봉 당시엔 결혼도 안 했고, 잃을 게 없기에 무서울 것도 없다고 했었는데.

▶비공식적으로 "니가 가라. 하와이"를 들었다. 주위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 한 분이 일본에서 야쿠자를 잡아들일 때 경찰을 붙여서 노상방뇨, 풍기문란 혐의로 계속 체포했다고 하더라. 그렇게 당할 수도 있겠다 싶더라. 내가 만든다는 영화는 투자도 안되고 제작조차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는 소리를 건너 건너 듣기도 했다. 중국에 가서 펑샤오강 감독이 준비하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귀국해서 '강철비'를 만들었는데. 왜 '강철비'였나.

▶임기말이 되면 레임덕이 올테고 그러면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탄핵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지만. 일단 웹툰 '스틸레인'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는 이상, 북한에서 쿠테타가 벌어지면 한반도에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한국에 돌아올 때는 내 생각으로 2017년에서 2018년 즈음에 북한발 핵 위기가 크게 불거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틸레인'을 영화로 만들어 미리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싶었다. 원래는 '강철비'를 2017년 여름에 개봉시킬 계획이었는데 여러 문제로 늦어졌다.

-한반도 핵전쟁 발발 위기라는 소재를 선택했을 때, 출발점은 재미였나, 의미였나.

▶재미로 이 소재를 택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니깐. 그걸 어떻게 영화적으로 접근해서 보여줘야 하느냐는 그 다음 고민이었다. 내가 직접 불을 끌 수는 없지만 불이 난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변호인'도 그렇고, '강철비'도 그렇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 주력하는 것 같은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이야기가 있다. 세상이 필요한 이야기와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 '변호인'도 '강철비'도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나라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란 과대망상인 것 같다.

-'강철비'는 한반도를 둘러싼 거시적인 시각은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그걸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전형적인 남북 버디물인데. 한국의 요원과 북한의 특수요원이 힘을 합쳐서 해결한다는 설정인데.

▶장르의 차용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이 장르의 차용은 앞선 남북 버디물에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이야기의 원형이 있다. 선우휘 작가가 1956년에 발표한 '단독강화'란 단편소설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포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두 사람이 미군 보급품을 같이 나눠 먹다가 알고보니 한쪽은 국군이고 한쪽은 인민군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단편이다. 서로 정체를 알고 총부리를 겨누고 버티다가 지쳐서 둘이서 그만하자고 한다는 내용이다. 'TV문학관'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방송되기도 했었다. 어릴 적에 읽고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적인데 동포다. 이게 아이러니다. 남북을 소재로 만든 작품들은 이 이야기의 원형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탈북자가 아닌 북한사람을 이런 이야기 속에 넣을 때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란 판타지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강철비'에선 김정은이란 추정이 가능한 북한1호가 등장하는데도 김정은이란 실명은 쓰지 않는데.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김정은을 실명으로 쓰지 않고 불쑥 한국으로 넘어왔다고 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얼굴 없는 실체를 넣어야 했다.

-조우진이 악역으로 등장하고 쿠테타의 주역이 등장하긴 하지만 '강철비'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안타고니스트(반동인물 혹은 대항제)가 없는데.

▶극 중에서 정우성이 북한 군부에는 핵 미사일을 쏘면 다 죽겠지만 이렇게 말라죽을 바에는 쏴야겠다고 하는 의견이 있다고 하는 대사가 있지않나. 그게 '강철비'를 관통하는 안타고니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우성이 총을 맞고 병원에서 누워서 곽도원에게 말하는 그 장면을 꼭 지켜야 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변호인'은 이분적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어느 한쪽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반대쪽의 증오를 샀다. 상업영화에서 이런 접근은 중요하다. 그런데 '강철비'는 지극히 현실적인 설명을 하고 선택을 하다 보니 양쪽 모두에게서 환영받지 못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은데. 예컨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대행으로 나오는 곽도원의 입에서 한국에도 핵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이 아닌 한국을 겨냥한 것이란 이야기도 나오고. 진보보다는 보수에서 환영받을 내용이다. 반면 곽도원을 응원하는 신임 대통령 당선인은 명백히 민주당 계열의 대통령으로 대화를 선호하는데.

▶일단 곽도원이 맡은 곽철우는 외교 안보 전문가다. 외교란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냉전시절에는 저쪽에 핵이 있으면 이쪽에도 핵이 있어야 했다. 클라우제 비츠가 전쟁은 외교의 연장선이라고 했듯이 각국의 이해 관계가 맞아야 균형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게 대한민국의 딜레마이기도 하고. 좋든 싫든 한국인은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인정이 모든 사태 해결의 바탕이 된다고 믿는다.

'강철비'는 그런 현실인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면 난 관객 편이다. 관객에게 적합한 것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걸 진보로 받아들일지, 보수로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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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과 양우석 감독/강철비 스틸


-산부인과 격투, 카체이싱, 국군수도병원 등 여러 액션이 등장한다. 액션 설계를 어떻게 했나.

▶'변호인'에서 5번의 공판을 5가지 성격으로 설정해 반복되는 재판 장면이 줄 수 있는 지루함을 갖지 않도록 설계했던 것처럼, '강철비'에서도 5번의 액션을 5가지 성격으로 나눠서 설계했다. 개성공단 폭격, 산부인과 격투, 카체이싱, 국군수도병원 전투, 핵미사일 발사 등으로 나눠서 각각의 액션이 목적을 다르게 갖도록 했다.

개성공단 폭격은 북한의 쿠테타 상황을 보여주는 한편 그걸 어떻게 미군과 연결할지, 그리고 실제 전쟁이 벌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보여주려 했다. 그리고 탈출로 이어지는데 북한군끼리 교전하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줘서 쿠테타라는 걸 인식하도록 하려 했다.

산부인과 액션은 조우진이 맡은 캐릭터를 구축하는 한편 정우성이 북한을 못 믿게 만들어서 어쩔 수 없이 남한의 힘을 빌리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도록 만들었다. 카체이싱은 결국 그 장면에서 정우성이 임무를 수행하게 만들고, 그래야 그가 새롭게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국군수도병원 전투 장면은 가장 힘을 들인 장면이다. 던전 게임처럼 하나씩 부수고 들어가 최종 마왕과 맞붙는 것처럼 설계했다.

핵미사일 장면은 실제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 일본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런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신임 대통령 당선인을 이경영이 연기했는데. 당선인 사무실 벽에 걸린 액자를 보면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쓰여 있다. 결국 민주당 계열의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걸 의미하는 건데.

▶2017년 대선에 대한 나름의 예언이었다. 도박을 건 셈이기도 하고. '변호인'을 내놓고 본의 아니게 망명객으로 세월을 보냈다. 정권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영화는 못 만들 것 같고, 레임덕이 오면 한 번은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행동하는 양심 액자는 미술팀이 준비했는데 그대로 걸도록 했다.

-극 중 등장하는 소품 중에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한 말인 "원래 하나였던 것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걸 제목으로 한 책이 있는데.

▶가상의 책이다. 빌리 브란트 총리가 한 그 말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서 가상의 책을 만들었다.

-정우성의 북한 사투리도 그렇고, 곽도원의 영어 대사도 그렇고. 한국 표준어 외에는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는데. 영화 사운드 문제라기보다는 극장 스피커 문제 같던데.

▶그렇지 않아도 확인했더니 극장에서 폭발음이 많다보니 스피커의 중저음을 줄여놨다더라. 그래서 대사들이 한국어 외에는 또렷하게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극장에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북한어가 음절마다 명확한 발음을 요구하는 한국어와 달리 문장 전체를 바로 쏟아내는 편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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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석 감독과 정우성, 곽도원/강철비 스틸


-정우성은 워낙 판타지스런 사람이다 보니 그간 연기를 해도 판타지스러운 지점이 있었다. 그런데 '강철비'에서 비로소 현실적이던데. 왜 정우성이었나.

▶정우성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 '빠담빠담'을 워낙 좋아했다. 정우성이 '강철비'에서 맡은 엄철우는 기본적으로 슬픔을 깔고 가는 사람이다. 죽을 병에 걸렸는데도 자신의 약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강철비'에서 정우성이 보일 듯 말듯 하게 웃는 세 번의 장면이 있다. 곽도원과 국수를 먹다가 한 그릇 더 시켜준다니 스윽 짓는 미소. 아재개그인 대포동을 이야기하면서 짓는 미소. 그리고 곽도원에게 빌려 쓴 카드를 돌려주면서 웃는 미소. 이런 표정을 슬프면서도 멋있게 지을 수 있는 배우가 바로 정우성이라고 생각했다.

-곽도원은 '변호인'에 이어 또 다시 호흡을 맞췄다. 자칫 희화화될 수도 있고,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 캐릭터의 중심을 잘 잡았는데. 어떤 걸 주문했나.

▶딱 두가지를 요구했다. 진짜 프로패셔널을 보여주자. 실제 프로들을 보면 지치고 닳아진 듯 한데 그런 게 아닌 프로패셔널을 보여주자고 했다. 그랬더니 곽도원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소년처럼 해달라고 했다. 소년의 마음이 아니면 북한을 프로처럼 못 본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각자의 입장을 더하게 되니깐.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소년의 마음을 갖고 있는 프로패셔널이어야 한다는 게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될 것 같은가.

▶직업적인 맥락이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걸 진보로 볼지, 보수로 볼지는 관객의 몫이다.

-CG를 원래 모펙에서 하려 했는데 트러블이 있어서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초반 미군의 스틸레인 발사 장면 등 CG가 다소 아쉽기는 한데.

▶원래는 CG를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했었다. 그런데 모펙에서 여러 문제가 생기면서 포스로 바꿨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런 준비 없다 갑자기 일을 맞게 돼 3개월 만에 이 정도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포스의 내공 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결말을 어이없다고 받아들일 사람도 더러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현실적이고 어쩌면 판타지스런 결말인데.

▶어차피 북한에 매파와 비둘기파가 있는데, 이 영화는 결국 매파가 득세하려 했다가 사라지고 비둘기파가 득세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지 않나. 그런데 매파를 없애도 결국 다시 매파는 생기기 마련이다. 이럴 때 한국 입장에선 어떤 보험을 들어야 할까를 생각했다. 대사에도 있듯이 북한1호가 귀순한다고 하면 모를까, 계속 데리고 있어도 문제고, 보내도 문제면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까를 놓고 고민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본다면 우리가 받는 게 있어야 저쪽에도 줄 게 있다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 점에서 영화 초반 핵무장론을 주장했던 곽철우는 더 성장하게 된 셈이다.

-왜 제목을 '강철비'로 했나.

▶강철과 비는 쉽게 붙는 어감이 아니다. 무겁고 딱딱한 강철과 서정적인 비. 그게 우리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남한을 상징하는 곽철우, 북한을 상징하는 엄철우, 그리고 강철비라는 무기가 등장한다. 이 세 개의 철우 중에서 하나가 우리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작품은.

▶아직 구체적으로 준비한 게 없다. '변호인' 때는 흥행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만 생각했다. 그런데 '강철비'는 훨씬 많은 금액이 투입되다보니, 지금은 형량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 같은 느낌이다.

그저 차기작으로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란 생각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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