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데이-루이스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7)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입력 : 2017.12.14 10:00 / 조회 : 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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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다니엘 데이-루이스 /AFPBBNews=뉴스1


2013년 2월 24일에 할리우드의 돌비극장에서 열린 8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역사적인 시상식이었다. 영국 배우(아일랜드 국적도 가지고 있다) 다니엘 데이-루이스(Daniel Day-Lewis)가 남자배우로서는 처음으로 ‘링컨’(Lincoln, 2012)으로 세 번째 남우주연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캐서린 햅번(Katharine Hepburn, 1907 – 2003)이 '황금연못'(On Golden Pond, 1982)을 포함해서 여우주연상을 네 번 받은 기록은 있다. 첫 수상과(Morning Glory, 1934) 마지막 수상 사이가 48년이다. 그러나 남자배우가 세 번을 수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져 왔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더 심하기 때문이다. 첫 주연상 수상작이 '나의 왼발'(My Left Foot, 1989)이었고 두 번째가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2007)였다. 첫 수상과 세 번째 사이가 2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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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다니엘 데이-루이스와 축하하는 메릴 스트립 /AFPBBNews=뉴스1


전 할리우드가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모두들 담담하게 축하를 해 주었다. 메릴 스트립이 건네준 트로피를 받아 들고 데이-루이스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행운은 나누어 가져야 하는 건데 제가 너무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라고 하면서 특유의 겸손하고 수줍은 모습을 보였다. 가장 위대한 현역 남녀 배우 데이-루이스와 스트립이 축하의 포옹을 하는 장면도 아름다웠다.

데이-루이스는 세 번째 감독상을 받을 것으로 모두가 기대했던 스필버그에게도 물론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감독상은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의 이안(Ang Lee) 감독에게 돌아갔다.


처음 스필버그가 링컨 역을 제안했을 때 데이-루이스는 자신이 링컨 역을 하는 것은 터무니 없다고 생각해서 고사했다. 그래서 리엄 니슨이 캐스팅되었고 니슨은 철저히 준비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니슨은 대본 독회에서 "이건 내 몫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번개에 맞은 것처럼 떠올랐다면서 물러난다. 사람들은 니슨이 1년 전에 상처를 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래서 결국 데이-루이스가 다시 캐스팅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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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링컨' 스틸컷


데이-루이스는 링컨이라는 어떻게 보면 신비한 역사적 인물을 품위있고 재치있는 톤으로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학자들로부터 약간의 비판이 있었지만 조용하고 자신있으며 인내심을 가지고 정치를 펼쳐나가는 한 대통령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촬영 준비 기간 동안 데이-루이스는 링컨에 대한 책을 100권 이상 읽었고 수많은 사진을 검토했다. 링컨의 연설문을 소리 내서 읽다가 결국은 링컨의 목소리를 알아냈다고 한다. 데이-루이스는 사람의 목소리는 ‘영혼의 지문’이라고 말한다. 링컨 캐릭터와 완전히 동화되었다는 뜻이다.

오스카의 전초전인 골든 글로브상 시상식 때는 스필버그와 인연이 깊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무대에 나와서 '링컨'을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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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당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헬렌 미렌 /AFPBBNews=뉴스1


데이-루이스가 2008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두 번째 남우주연상을 받을 때 시상자가 헬렌 미렌이었다. 헬렌 미렌은 그 전 해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연기를 한 '더 퀸'(The Queen, 2006)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데이-루이스는 미렌 앞에 살짝 한 쪽 무릎을 꿇었고 미렌은 오스카 트로피로 어깨를 건드리며 기사 작위 수여 흉내를 냈다. 6년 후인 2014년에 데이-루이스는 버킹햄 궁전에서 영국 기사 작위를 받았다.

데이-루이스는 사생활에 대해 잘 이야기 하지 않는 은둔형이다. 일부에서는 은둔형으로 '악명이 높다'고 까지 이야기 한다. 대중적 인기에 알레르기가 있다고도 한다. 아일랜드에서는 혼술을 하는 것이 종종 목격된다. 그래서 이런저런 일화가 많지 않고 직업적인 것 외에는 쓸 이야기도 별로 없는 배우다. 영국과 아일랜드 이중국적을 가진 이유도 런던이 언론을 피할 수 없는 곳이어서라고 한다.

데이-루이스는 '팬텀 스레드'(Phantom Thread, 2017)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는데 60세이기 때문에 매우 이른 은퇴다. 은퇴를 발표하면서 데이-루이스는 그 결정이 사적인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코멘트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화를 보고 바깥으로 나오면 영화에 몰입했을수록 바깥 환경에 적응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을 느낀다. 생각할 것이 좀 있는 영화의 경우 며칠 동안 머릿속에 여진이 있다. 관객이 그럴 정도니 배우들은 더 그럴 것이다. 훌륭한 배우들은 영화와 캐릭터에 자신을 완전히 동화시켜 거의 빙의 수준까지 간다고 한다. 어떤 배우들은 동시에 두 편을 하지 못하고, 촬영이 끝난 영화에서 ‘빠져나오는데’ 고생하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고 원하는 배역을 따기 위해 체중, 몸짓, 심지어는 심리상태까지 캐릭터에 맞추는 사전 준비를 해서 오디션에 나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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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스레드' 시사회에 나선 다니엘 데이 루이스 /AFPBBNews=뉴스1


'라스트 모히칸'(The Last Of The Mohicans, 1992)을 찍기 전에 데이-루이스는 황야에서 6개월을 지내면서 준비했고 '복서'(The Boxer, 1997)를 찍기 전에는 18개월간 훈련을 했다. '링컨'을 찍는 내내 스필버그는 다니엘 데이-루이스를 ‘대통령님’이라고 불렀다. 데이-루이스도 영부인 역 샐리 필드에게 링컨으로서 문자를 보내곤 했다. 자기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되기 위해 데이-루이스는 수개월씩 준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동료 배우와 스탭들을 멀리하면서 정신을 집중하는 일이 많았다. 한 언론을 통해 데이-루이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마지막 촬영 날은 끔찍하다. 현실이 아닌 것 같다. 내 마음과 몸, 영혼은 영화를 통해 경험한 것들이 이제 끝나간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일종의 영적 혼돈을 표출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바친 것이다. 불편하지만 나의 어떤 부분도 내 캐릭터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상실감이 안정으로 복귀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윤회론에서 인간의 영혼이 한 사람의 생을 살고 다른 생으로 옮겨가는데 준비와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영화배우들은 한 생에서 여러 생을 사는 사람들인 셈이다. 고유의 개성과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여러 가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 배우다. 영화를 보는 우리도 배우가 누군지 잊지 않으면서도 그 배우가 역할을 하는 캐릭터의 개성과 스토리에 집중한다.

데이-루이스가 한 작품을 끝내고 상당 시간이 흐른 후에야 다음 작품을 한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러나 오늘 날의 할리우드에서는 흥행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시퀄, 프리퀄, 리부트가 성행하는 시대다. 작품과 연기 외의 요소들이 배우들을 지나치게 압박한다. 아마도 데이-루이스는 성격 상 그런 요소들을 더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서 이른 은퇴를 결정했을 것이다. 걸출한 배우의 작품을 다시 접할 수 없게 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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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데이 루이스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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