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 뇌와 시각, 감성 잡아채는 한반도 핵전쟁 시나리오 ①

[리뷰] 강철비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12.12 10:15 / 조회 :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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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어한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그리하여 보고 믿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에 반색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시나리오도 마찬가지다. 좌우 이념에 따라, 각자의 이익에 따라, 생각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시나리오를 논한다.

'강철비'는 그런 각자가 믿고 싶어하는 한반도 시나리오들에 대한 이야기다.

엄철우(정우성)는 전직 정찰국 정예요원이었다. 들키면 어찌 될지 모르고 철없이 지드래곤 노래 좋아하는 딸, 그리고 아내가 있다. 그런 그에게 정찰국에서 극비임무를 맡긴다. 이번 임무가 성공하면 딸과 아내에게 쿠바 대사관행을 약속한다.

쿠테타를 노리는 세력이 있으니 개성공단에서 은밀히 제거하라는 명령이다. 엄철우는 가족에게 잠시 안녕을 고하고 저격을 준비한다. 그런데 개성공단에는 기다리던 쿠테타 세력은 안 오고 북한 권력1호가 내려온다. 바로 그 위로 미국의 인명 살상 미사일이 쏟아진다. 미군의 무기를 탈취한 북한 쿠테타 세력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

엄철우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북한 1호를 데리고 개성공단을 넘어 한국으로 피신한다.

한국에선 대선이 막 끝났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대행 곽철우(곽도원)는 후임 대통령 당선인에게 줄을 데려 애쓴다. 아내와 이혼해 오랜만에 만난 두 아이는 뒷전이다. 그런 그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온다. 북에서 넘어온 엄철우가 북한1호를 데리고 숨은 병원이 하필이면 이혼한 아내의 병원인 것. 그는 북한1호와 엄철우 신병을 확보한다.

그 사이 북한은 미국이 미사일을 발사해 최고 통치자 목숨을 위협했다며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다. 미국은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기 전 선제 핵공격을 해야 한다며 한국의 대통령을 압박한다. 신임 대통령 당선자는 가급적이면 전쟁을 피하려는 마음이지만 현 대통령은 다르다. 임기를 마치기 전에 모든 오욕은 자신이 뒤집어쓰겠다며 이때가 북한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해 미국의 제안에 응하려 한다. 중국과 일본도 한반도 전쟁을 둘러싸고 각자 손익계산에 바쁘다.

그러는 사이, 북한 1호를 제거하려는 쿠테타 세력들이 엄철우와 곽철우를 쫓는다. 과연 임박한 한반도 핵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강철비'는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들의 이야기다. 남과 북, 남과 남, 북과 북, 미국과 남, 미국과 북, 북과 일본, 남과 일본, 남과 중국, 북과 중국. 각각의 입장과 각각의 이익들 속에서 한반도 전쟁을 논하는 시나리오들에 대한 이야기다. 현실에 뿌리를 내린 이야기들이다.

양우석 감독은 이런 시나리오들에, 북한에 쿠테타가 일어난다면, 이란 시나리오를 더했다. 북한에 쿠테타가 일어나면, 각자의 시나리오들이 현실이 될 수 밖에 없다는 큰 상상력을 입힌다. 이 상상력은 거대하다. 현실적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북한의 선전포고에 맞춰 전국에 내려진 비상 계엄령. 한반도로 날아오는 미국 핵 폭격기. 한국에서 발을 빼며 북한과 혈맹이란 사실을 강조하는 중국. 당장에라도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다.

양우석 감독은 이 시나리오들을 촘촘히 엮어 지극히 영화적으로 만들었다. 한반도 정세에서 오는 긴장감, 그리고 두 명의 철우가 대립하면서 벌어지는 긴장감, 이들을 쫓는 북한 특수요원들과 긴장감. 이 긴장감들이 허리를 잡아챈 채 마지막까지 끌고 간다. 음모와 반전, 전쟁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액션들까지 '강철비'는 여느 할리우드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와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다.

다만 이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가 지금 한반도 정세와 지나치게 유사해 단순한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한국 관객은 '강철비'를 단순한 오락물로 치부하기엔 너무 현실적이다.

양우석 감독이 백화쟁명식으로 나열한 한반도 핵전쟁 시나리오들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입장부터 어떻게든 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북한이 실제로 핵미사일을 사용한다면 그 목표가 한국일지, 일본일지, 아니면 미국일지를 영화적으로 보여주는 장면까지. '강철비'는 논쟁적이다. 이 논쟁거리는 한반도 정세에 민감한 사람들에겐 러닝타임 내내 강한 긴장감을 더할 것 같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다.

이 논쟁거리가 뇌를 자극한다면, 정우성과 조우진의 액션은 눈을 자극한다. 명불허전인 정우성의 액션과 마치 '터미네이터2'의 T-1000 같은 조우진의 액션은 충분한 볼거리다. 정우성과 곽도원의 호흡은 감성을 자극한다. 각각 북과 남을 상징하는 두 사람의 협력은, 그대로 한반도 전쟁을 막기 위해 남과 북이 협력해야 한다는 걸 상징한다. 이 뻔한 상징이 뻔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정우성과 곽도원의 공이 크다.

정우성은 비로소 판타지가 아닌 현실 속 사람 같다. 곽도원은 비로소 악한 관료를 벗었다. 정우성은 액션과 감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곽도원은 자칫 더 심각해지거나 자칫 더 희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았다. 외줄에서 춤추는 솜씨 좋은 하마 같다.

'강철비'는 매끈하게 만들어진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다. 거시적인 세계관은 출중하되 미시적인 설정은 종종 허점이 노출된다. 그럼에도 '강철비'가 매력적인 건, 피부에 와닿는 현실감 때문이다. 2년 전 시나리오가 완성돼 촬영에 들어간 영화가 지금 현실과 맞닿아있는 건, 양우석 감독이 멀리 바라보거나, 한반도 정세가 시나리오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거나, 어쩌면 둘 다일 것 같다.

12월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강철비' 최대 수혜자는 지드래곤일지 모른다. '강철비'는 양우석 감독이 쓴 원작 웹툰 '스틸레인'을 뜻한다. 스틸레인은 상공에서 터지면 파편이 강철비처럼 쏟아지는 인명살상 미사일이다. '강철비' 결말은 판타지거나 현실적이거나, 아무튼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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