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이창명이 밝힌 #그날#천벌#무죄#희망

문완식 기자 / 입력 : 2017.12.08 09:00 / 조회 : 1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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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창명 /사진=김휘선 기자


"안하무인이었던 제가 벌 받은 것이지요. 쉬면서 정신 차리란 하늘의 뜻 같습니다."


방송인 이창명(48)에게 지난 20개월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우리 나이 스물세 살에 방송일을 시작, 26년간 쉼 없이 달려오던 그는 지난해 4월 16일 이후 1년 8개월을 일없이 보내야 했다. 그를 '범죄자'로 내몬 그 '사건' 때문이었다.

이창명은 2016년 4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앞 삼거리에서 술에 취해 포르셰 차량을 운전하다 보행 신호기를 정면으로 들이받은 뒤 차량을 버리고 달아난 혐의를 받았다. 이창명은 사고 후 반나절 이상 잠적 후 경찰 조사에 출석해 음주 혐의 및 사고 후 미조치 등에 대한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은 국과수 혈액검사 결과 이창명에게 혈중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았지만 정황상 그가 음주운전을 한 증거가 충분하다고 보고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사고 당시 이창명의 혈중알코올농도를 0.148로 추정해 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지난 3월 결심 공판에서 징역 10개월을 구형했으나 이창명의 음주운전 혐의는 무죄 판결이 나왔다. 검찰은 1심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장을 제출했고 첫 항소심에서 징역 10개월 실형을 구형했다. 법원은 그러나 지난 11월 열린 항소심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사고 미조치로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현재 검찰이 이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이창명을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스타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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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창명 /사진=김휘선 기자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기도하고, 계속 뛰고 있어요. 운동으로 하루를 대부분을 보내고 있죠. 하루를 잘 보내야 해요. 그래야 하루가 금방 가거든요. 너무 일찍 집 밖으로 나오지는 않아요. 그러면 하루가 길어지니까요. 사람들과 만남은 없어요. 제가 안마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안 와요. 연락이 와도 안 만나겠지만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인간관계도 자연스럽게 정리되더라고요. 오전에는 웬만하면 집에 있어요. 오전 11시에 운동하기 시작해 오후 3시까지 운동을 해요. 그때까지 밥은 안 먹고요. 운동 끝나서 딱 한 끼 먹어요. 그러고 있다 오후 10시에 잠자리에 들죠. 그래야 다음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니까요.

-기도 제목은 어떻게 되나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에요. 역설적으로 제가 사고 난 것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하나님이 제게 여러 번 기회를 주셨건 것 같아요. 너 정신 차려라, 똑바로 살라고요. 시청자나 네티즌이 볼 때 말도 안되는 생각이겠지만 그날 제가 다리 위에서 떨어져 죽을 수도 있었고, 사람을 여러 명 다치게 할 수도 있었는데 인명 피해 없었건 것에 감사하고 고마워요. 2년 가까운 이 시간을 겪으며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있지' 원망도 있었죠. 시간이 흐르니 내가 너무 잘 못 살아서 이런 일이 생겼구나, 스스로 내 잘못이 많구나 생각을 해요. 그러다 더 시간이 흐르니 아, 감사한 일이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나이를 좀 더 먹은 후 이런 일이 있었으면 아마 헤어나지 못했겠죠. 더 괴로웠을 거예요. 그나마 천만다행이구나 감사하면서 살고 있어요. 요즘은 행복해요.

-어떤 행복인가요.

▶스스로 행복해요. 금전적인 것이나, 삶, 방송을 못하는 건 불행하지만 지난 2년 가까이 저를 괴롭혔던 굴레를 벗어나 제 스스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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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창명 /사진=김휘선 기자


-2016년 4월 16일 왜 그런 일이 발생한 건가요.

-제가 스물세 살에 대전 MBC를 통해 방송에 데뷔했어요. 그리고 스물네 살 때 KBS 대학개그제에서 금상을 받고 서울로 올라왔죠. 상 받고 까불까불 돌아다니다가 방송정지도 당해봤어요. 그러다가 'TV는 사랑을 싣고'를 맡게 된 거죠. 그때는 제가 집이 없을 때였어요. 빨간색 프라이드 승용차를 KBS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먹고 자고 했어요. 저녁에는 할 게 없으니 편집실에 갔어요. 배도 고팠거든요. 편집실에 가면 PD들이 먹을 걸 줘서 자주 갔죠.

저는 할 게 없고 먹을 게 없어서 편집실에 간 건데 PD들은 그걸 열심히 사는 이창명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제가 옆에서 편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왕이면 제 분량을 좀 더 챙겨주더라고요. 'TV는 사랑을 싣고'를 박수림과 함께 했는데 스타가 나올 때 제가 하고, 외국에 나갈 때고 제가 할 수 있게 해줬어요.

그러다가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CF를 찍게 된 거죠. 김국진씨가 메인이고 제가 서브였는데 다른 연예인들은 출연료가 적다고 안한다고 했다고 해요. 제가 얼나냐고 물어보니 500만원이래요. 바로 한다면 좀 그러니까 생각 좀 해보겠다고 하고 바로 연락했죠. 그 CF가 '대박'이 나면서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프랜차이즈 사업도 하게 됐어요. 매장 하나에 500만원을 받고, 거기서 사인회를 하면 200만원을 받았는데 서른 살 전에 420개 매장을 냈어요.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됐다는 말이 실감 날 때였죠.

동시에 '출발 드림팀'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 전 하루에 돈 1000원을 썼어요. 돈 쓸 시간이 없었거든요. 밥도 방송국에서 줬고요. 유일하게 제가 몇 시간 잠처럼 잘 수 있는 곳이 영화관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안하무인이 됐어요. 싸가지 없어진 거죠. 흔히 말하는 스타병에 걸린 거에요. '출발 드림팀'이 잠깐 없어졌을 때가 있었는데, 결국은 컨트롤 하기 힘든 이창명이 된 거죠. 그때 MBC에서 계약하자면 계약금 4000만원을 줬어요. 편당 400만원의 출연료도 약속했고요. 거기에 '음악캠프' MC까지 줬어요. 첫 아이를 얻었을 때였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지금도 호의호식을 하고 있는데 옮겨서 잘 못되면 어쩌지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그 때 KBS에서 '야, 창명아 네가 여기를 떠나면 어떻게 하냐. 친정 떠나서 잘된 애들이 없다'면서 보장을 해주겠다는 거예요. MBC 생방송을 펑크 내라고 했어요. 그게 '음악캠프'였어요. 그대로 했고 위약금과 손해배상을 1억 2000만원을 물렀습니다. 그만한 돈이 있었거든요. 물론 그 이후로 MBC에서 영원히 아웃됐지만요. MBC에서 영구퇴출되고 KBS에서 열심히 녹화하고 있는데 SBS에서 '콜'이 온 거에요. 옮겼죠. 그 때 '드림팀'이 없어졌어요. 근데 KBS에서 김석윤 PD에게 '드림팀'을 살리라는 특명이 떨어졌고, 그래서 다시 SBS를 떠났죠.

-지상파 3사에서 이창명씨에게 끊임 없이 러브콜이 이어졌네요.

▶이런 것들을 거치면서 '나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하무인이 된 거죠.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환경이 그렇게 만들더라고요. 싸가지가 없어지고요. 근데 사람이 한 번에 안 쓰러지더라고요. 담배 피고, 술 먹고, 문란한 생활을 하고...이런 게 합해져 100이란 숫자가 됐을 때 쓰러지더라고요.

'드림팀'하고 있을 때 KBS 국장이 저를 불러 PD를 자를 수는 없으니 네가 그만두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만두고 교양국으로 갔죠. '공부의 왕도'라고 전 세계를 돌면서 유명대학도 가고 하면서 공부 잘하는 비법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저로 인해서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됐어요. 라디오로 가게 됐죠.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이영자 누나와 라디오를 하게 됐는데, 서로 잘 안 맞았어요. 그만두고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이지연 아나운서와 라디오 프로를 하게 됐죠. 그 때 '슈팅스타'라고 축구 관련 예능을 다시 하게 되면서 TV에 복귀하는지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라디오까지 그만두게 됐죠. 그러면서 한 1년 정도를 쉬었어요.

-그러다 '출발 드림팀'이 시즌2로 부활하게 되면서 복귀했죠?

▶쉬면서 실의에 빠져있는데 전진학PD가 유학 갔다 오더니 '드림팀' 시즌2를 하자고 해서 복귀하게 됐죠. 첫 녹화 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인천에서 해양경찰 특공대 팀과 녹화를 하는데 오프닝 때 해경 헬기가 하늘에 떠 있었어요. 바람이 세니 모래가 날리고, 출연자들은 다 피해있었죠. 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맞으면서 오프닝 멘트를 하는데 몸은 아픈데 전 행복하더라고요. 마이크를 들고 '출발~드림팀~!'를 외치는 데 여한이 없었어요. 그 순간만큼은 벼락을 맞아도 행복할 것 같았죠. 녹화 끝나고 매니저한테 오늘 괜찮았냐고 물었더니 '형, 최고였어요!' 하는데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때 철든 지 알았는데 오래 가지 못하더라고요. 또 방탕해졌죠. 오래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거예요.

-그럴 때 사건이 난 거네요.

▶사고가 터진 거죠. 이게 하나님의 뜻이었어요. 너 고마워할 줄 모르는 놈이구나. 너 감사할지 모르는 놈이구나. 너 한 번 당해봐야겠다. 이러신 거죠. '드림팀'은 저와 애증의 관계였어요. 제게 행복을 가져다줬지만 전 그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죠. 그러다가 결국 사건이 터지고 프로그램마저 없어진 거죠. 전진학PD한테 하소연을 많이 했었는데 하나님이 너 그거 진심이지 없애주마, 너 쉬어라 이러신 거죠.

-사건이 터진 날도 전진학 PD와 함께 있었죠?

▶사고 나는 날, '드림팀'에 대해 진지하게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논의를 하려 했어요. 전진학PD가 너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해서 '그래, 그럼 복근을 보여주겠다'는 각오에 다이어트를 해서 7킬로그램을 감량했을 때였죠. 그 날도 한끼도 안 먹었어요. 전진학PD가 저녁을 먹자고 하길래 탕을 먹을 수는 없어서 살 안 찌는 음식을 찾다 참치를 생각하고 잘 아는 분이 운영하는 참치집에 가게 된 거죠.

-식당 내 다른 사람들과 합석은 왜 하게 됐죠?

▶연예인들이 그런 곳을 가면 그런 일들이 종종 있어요. 그날도 참치집 사장님 면 세워주려고 다른 분들 모이신 방에 인사차 가게 됐어요. 참치집 사장님 있는 방에 가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고 나오려는 데 저희에게 합석을 권하시는 거에요. 나이 드신 분들이 말씀하시는 거라 전진학PD나 저나 거부하긴 힘들었어요. 다른 분들은 검은색 병에 든 '화요'란 독한 술을 드시고 저는 맥주 잔을 들었죠. 건배를 하고 나서 마시지는 않고 목으로 꿀꺽꿀꺽 소리만 냈어요. 일종의 개그를 한 거죠. 나이 드신 분들이 타박하니 참치집 사장이 창명이 술 못 마신다고 제 잔을 대신 마셨어요.

-술을 잘 못마시나요.

▶먹기는 하는데 마셔도 한 잔 정도 마셔요. 술을 먹으면 얼굴이 붓고 호흡이 잘 안되거든요. 그래서 '드림팀'을 하면서도 회식을 한 번인가 밖에 안 했어요.

-그러다 사고는 왜 난 거죠?

▶그날 돌멍게가 안주로 나왔는데 전진학PD가 제주도 돌멍게가 몸에 좋다고 해서 같이 좀 먹었어요. 그런데 자리가 영 불편해서인지 전진학PD가 체한 거예요. 그래서 자리를 빨리 끝냈죠. 전진학PD는 제 차에 타서도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토를 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전진학PD를 제 차로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대리운전을 불렀는데 취소하래요. 본인이 부르는 데 있다면서요. 그래서 취소했죠. 나중에 경찰, 검찰 조사받을 때 대리운전 부른 것을 보고 술 먹었으니 대리를 부른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전진학PD를 그냥 보내고 제 차(포르쉐 카이엔)를 몰고 가는데 다이어트를 하고, 긴장까지 풀리니 방심하고 살짝 졸았나봐요. 횡단보도를 지나 안전지대를 '텅'하고 박은 거죠. 그때 시속 30킬로미터 정도 됐을 거예요.

-사고 후 도망갔다는 얘기도 있는데.

▶저속이었지만 정면으로 제대로 박으면 에어백이 터진대요. 빵하고 터지면서 차량 내부가 하얀 연기로 뒤덮여 눈 앞이 안보이더라고요. 에어백이 터지는 충격도 상당했어요. 가슴을 치니 숨을 못 쉴 지경이었죠. 차에서 내려 사람을 친 건 아닌지 확인을 하고 차를 빼려는 데 차가 안 움직여요. 어떤 차들은 충격이 있으면 자동으로 전기가 차단이 된대요. 제가 사람을 죽일 뻔하고 도망을 갔다고 하는데 병원이 바로 횡단보도 너머에 있었어요. 119를 기다리기보다 걸어서 병원에 빨리 가는 게 낫다고 본 거죠.

-병원에서 소주 2병을 마셨다는 진술을 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응급실에서 접수 받는 분이 모 매체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창명이 멀쩡했다고 했다는 데 그런 건 방송에 나오지도 않았어요. 레지던트, 인턴이 저를 봤는데 레지던트가 제가 소주 2병을 마셨다고 진료 기록지에 썼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 레지던트는 그런 걸 자신이 안섰다고 해요. 결국 이 부분은 증거 채택이 되지 않았죠. 그날 제 기록을 보면 '멘탈 정상', '스킨 정상', '맥박 정상'으로 돼 있어요. 술 먹은 사람에게는 통상 처방을 안 하는 안정제 같은 약도 받았는데 술을 먹었다면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요. 병원 CCTV에도 제 모습이 멀쩡하게 나와요. 저 그리고 보험도 안 들고 신고도 안 했다고 하는데 사고 나자마자 보험사에 신고했어요. 제게 보험사에서 온 문자메시지도 있어요. 사고 현장에 가보니 사고 접수할 게 없다. 수리할 게 없다는 내용이었는데 검찰로 넘어가기 전에 다시 문자가 오더니 수리할 게 있다고 신호등 비용 30만원이 계산했더라고요.

-그날 이창명이 운전한 차가 '대포차'(등록이 안된 차량)라는 얘기도 나왔죠.

▶2016년 4월이 그 차 할부 다 끝나는 달이었어요. 제 차인데 왜 대포차인가요. 한 TV프로에서 모 연예인이 이창명씨가 그렇게 비싼 차를 탈 수 있냐고 얘기를 하는데 어이가 없었어요. 저 열심히 살았거든요. 그 전에 제가 해 놓은 게 있는데 왜 그 차를 타지 못하나요. 나중에 그 프로에 함께 출연하는 지인에게 하소연했더니 '다 대본이라고, 그 연예인 개인 생각이 아니니 이해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사고 후 잠적도 이슈가 됐어요.

▶잠적이 아니라 대전을 내려갔어요. 지인의 차를 타고 대전에 내려갔죠. 톨게이트 CCTV에 운전하는 제 모습이 다 나와요. 멀쩡해요. 그 사고에도 대전에 간 건 사업 때문에 받을 돈이 있어서 간 거였어요. 내려가니 피곤하더라고요. 차고 있는데 후배가 깨우면서 형 큰일 났다는 거에요. 휴대전화를 켜니 경찰로부터 전화가 와 있었어요. 전화해서 올라라겠다고 했죠. 지금 꼭 올라 가야 하냐고, 사업 때문에 좀 늦게 올라 가도 되냐고 하니 경찰에서 그러시라고 해요. 그러더니 한참 있다 다시 전화가 와요. 오라고. 올라오자마자 음주측정기를 불었어요. 그런데 피는 또 밤 12시에 뽑더라고요. 그리고 1대 6으로 조사를 받았죠. 경찰이 6명이 달라붙었어요. 그래서 이럴 거면 아예 기자들을 부르자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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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창명 /사진=김휘선 기자


-음주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는데, 심정이 남다를 것 같아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자괴감이 많이 들었어요. 난 정말 죄인인가. 내가 범죄자인가. 내가 살인자인가. 내가 마약범인가. 내가 도박범인가. 참 가혹했죠. 경찰이 운전면허도 일단 취소된다고 했어요. 1년이 지났으니 취소된 면허를 딸 수 있었는데 일부러 안 했어요. 그러고 6개월이 또 지났죠. 1년 6개월이 지나 면허증을 다시 땄죠.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취소면 1년, 정지면 6개월인데 전 취소와 정지를 다 겪은 셈이죠. 내가 무엇 때문에 싸웠나 허탈했어요. 사람들은 근데 저를 범죄자로 생각하더라고요. 마치 범죄자처럼 만들어졌고, 살인자처럼 됐죠.

그래도 미치면 안되잖아요. 자살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겁니다. 장경동 목사님의 부흥회 설교를 다 봤어요. 말씀이 너무 좋으시더라고요. 장 목사님의 말씀이 큰 힘이 됐어요. 그 중 '담대하라' 이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어요. 후회할 짓을 하지 말라, 두려워 할 짓을 하지 말라, 욕심내지 말라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방송에 복귀하면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저 때문에 없어진 '출발 드림팀'을 다시 부활시키고 싶어요. 그 프로그램이 없어지면서 힘들어진 스태프들도 적지 않을 테니까요. '드림팀'은 건전한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런 건전함을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보여드리고 싶어요.

다음은 아침 일찍 하는 라디오 프로를 하고 싶어요. 열심히 사는 이창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창명은 "지하철, 마을버스를 1년 6개월 간 타고 다녔다"며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다녔는데 나중에는 그냥 다녔다"고 했다. 그는 "마을버스를 타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어렵게 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돈 없이 살아가는 지금의 어려움은 생소하지 않다"고 했다.

"처음에 사고가 났을 때는 후회를 많이 했어요. 내가 옛날에는 이랬는데 내가 옛날에는 이런 차를 탔는데 하면서요. 그러다가 저로 돌아왔죠. 처음 사고가 났을 때는 TV를 안 봤어요. 그러다 TV를 틀고 소리를 줄이죠. 좀 시간이 흘러 TV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는데 '아, 저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 하곤 했어요. 시간이 좀 흐리니 연예인들이 저렇게 방송하는구나 생각이 들었고. 이젠 시청자가 됐죠. 지금은 시청자의 마인드로 연예인들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리고 다시 '방송인 이창명'이 되는 날을 기도하며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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