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와 조연들의 힘, 그리고 진선규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11.27 18:20 / 조회 :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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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범죄도시' 스틸컷


'범죄도시'(감독 강윤성)는 저물어가는 올해 하반기 극장가의 최고 서프라이즈다.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관심 밖에서, 주인공으로는 한 번도 히트작을 내놓은 적 없는 배우들을 기용해 만들어낸 청소년관람불가 범죄물이 추석 시즌의 복판에 뛰어들었을 때, 그의 선전을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680만 관객을 훌쩍 넘어 롱런하리라 생각한 이는 더더욱 없었으리라.

청불 오락액션을 내세웠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킹스맨:골든서클'에 대적하긴 역부족이고, '마블리' 마동석과 윤계상이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남한산성'의 스타군단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대세였다. 하지만 막상 베일을 벗고 보니 극장가의 양상은 완전히 달랐다. '범죄도시'는 개봉일 3위로 출발, 입소문 속에 관객수와 스크린 수를 늘려 갔고 결국 추석의 최종 승자에 등극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황금연휴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9일까지 221만 관객을 모은 '범죄도시'는 '연휴가 끝난 뒤 더 진가를 발휘했다. 1달 넘게 롱런을 이어간 끝에 '택시운전사'(1218만 명), '공조'(781만 명), '스파이더맨:홈커밍'(725만 명)에 이어 2017년 흥행 톱4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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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범죄도시' 스틸컷


돌이켜보면 '범죄도시'는 영리하고도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때려잡는 경찰 이야기'란 단순명쾌한 콘셉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힘과 속도감으로 밀어붙였다. 2004년 서울 가리봉동을 배경으로 사실적인 분위기를 한껏 살린 의상과 미술은 관객이 쉽게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짜임새 있는 각본과 적절한 캐스팅은 4개의 폭력조직이 얽히고 뒤섞인 가운데 십수명의 캐릭터가 맞물리는 복잡한 얼개를 쉽게 전달했다. '실화가 바탕'인 덕택에 조선족 폭력조직에 대한 묘사의 거부감 면에서도 덕을 봤다.

여러 드라마와 영화, 무엇보다 1000만 '부산행'에서 액션 스타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마동석을 깡패보다 더 무지막지한 경찰로 설정해 영화의 간판을 삼은 건 특히나 '범죄도시' 신의 한 수. 살벌하지만 귀여운 '마요미'표 코미디들은 살벌한 범죄극 곳곳에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실제 직접 이끄는 콘텐츠 기획회사 팀고릴라와 함께 각본과 제작 과정부터 깊숙이 참여한 마동석 스스로에게도 '범죄도시'는 주인공이자 창작자로서 처음 맛보는 흥행작이 됐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의 공로자들이 더 있다. 적재적소에서 마치 진짜같은 모습으로 맹활약한 기라성 같은 조연배우들이다. 극적인 변신을 선보인 조선족 폭력조직 두목 장첸 역 윤계상의 오른팔과 왼팔로 맹활약한 위성락 역 진선규, 양태 역 김성규, 이수파 두목 장이수 역 박지환과 독사파 두목 허성태. 어디 이뿐이랴. 마동석과 함께 달린 형사반장 최귀화를 비롯해 강력계 형사로 분한 허동원과 홍기준, 곱상한 막내 형사 하준. 걸쭉한 남도 사투리의 조폭 황사장 역 조재윤…. 여기에 하나하나 열거하지 못할 여러 배우들이 '범죄도시'의 성공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머리를 밀고 사투리를 연습하고 살을 찌우고 빼길 마다하지 않은 열정 가득한 배우군단은 마치 2004년의 가리봉동 거리와 뒷골목, 경찰서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느낌마저 줬다.

그 중에서도 눈에 뵈는 것 없는 빡빡머리 조선족 조폭 위성락으로 분한 진선규는 단연 발군이었다. 파르라니 밀어버린 머리와 깡마른 몸으로 카메라 앞에 선 눈빛만으로도 위협이 느껴지는, 지독하고도 폭력적인 캐릭터를 더없이 실감나게 완성해 냈다. 남은 역을 맡았던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비롯해 영화 '관능의 법칙', '극적인 하룻밤', '사냥', '터널', '특별시민',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에다 '범죄도시'와 함께 개봉한 '남한산성'에서도 박희순의 부하 역할로 활약했던 그는 이미 인정받는 충무로의 신스틸러였다. 절치부심한 배우의 진가가 '범죄도시'를 통해 드디어 드러났다.

지난 25일 열린 제 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유해진 김희원 배성우 김대명 등 쟁쟁한 배우들과 경합 끝에 진선규에게 남우조연상이 돌아갔다. 위성락이 턱시도를 차려입은 듯 빡빡이 머리 그대로 무대에 오른 그가 "진짜 너무 감사합니다"라며 소매로 눈물을 훔칠 때, "오면서 청심환 먹고 왔는데, 이거 받을 줄 알았으면 하나 더 먹는 건데"라며 너스레를 떨 때, "40년 동안 도움만 받으며 살아서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며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 하나하나를 부를 때 보는 사람이 다 울컥했다. 상이 주인을 잘 만났다. 진선규가 드디어 때를 만났다. 늦었지만 그의 수상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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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룡영화상 중계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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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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