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나' 지질한 청춘의 불안한 성장담

[리뷰]영화 '아기와 나'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11.23 17:19 / 조회 : 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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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기와 나' 스틸컷


영문도 모른 채 아기와 남겨진 한 남자의 이야기 '아기와 나'. 입에 착 붙는 친숙한 제목은 사실 의도된 미끼다. 제목만 봐선 눈 크기가 얼굴 절반은 되는 꽃미모 캐릭터가 등장하는 동명의 일본만화나 장근석이 주연한 동명의 2008년 가족영화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아기와 혼자 남겨지다시피 한 남자의 이야기는 사랑스런 순정만화나 알콩달콩 육아일기보다는 처절한 분투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단편 '야간비행'으로 칸 시네파운데이션 3등상을 수상했던 손태겸 감독의 첫 장편 '아기와 나'가 그런 이야기다. 지독하고 갑갑하다.

말년 휴가를 나온 도일(이이경 분)에겐 예비신부 순영(정연주 분)과 덜컥 낳아버린 아기가 있다. 어머니 집에 얹혀 미래를 그려보던 어느 날, 도일은 병원에 갔다가 자신이 아기 아빠가 아니란 걸 알아버린다. 취업을 약속했던 헬스클럽 선배는 난색을 표하며 전단 알바를 권한다. 어찌할 줄 몰라 쭈뼛거리던 다음날, 순영이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모든 것이 막막해져버린 가운데, 도일은 순영을 찾아 헤맨다. 아이의 아빠는 누구일까, 순영이는 왜 도망갔을까.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도일은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아기와 나'는 불안 속에 내던져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러닝타임 113분 내내 주인공 도일의 시점을 유지한다. 한계와 미덕이 분명하다. 2시간 가까운 장편영화를, 그것도 별다른 사건 없는 드라마를 1인칭 시점으로 끌고 가기가 만만찮다. 하지만 '아기와 나'는 집요하고도 치밀하게 도일의 시점을 견지한다.

주인공 도일은 3인칭으로 지켜봤다면 한숨이 절로 나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집안의 문제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아기와 나'는 그의 불안감을 고스란히 담아낸 듯 핸드헬드로 도일의 속내와 시선을 따라간다. 영화는 그의 더딘 성장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한심한 자의 말 못할 심경에 기어이 다가가게 만든다. 그리고 가정과 아이와 직장이 있는 '보통의 삶'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가를 실감하는 이 시대의 청춘을 담담히 어루만진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군대 안의 울타리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말년 병장의 사연엔 특히 많은 남성들이 공감할 것 같다.

다만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얻은 공감은 변명과 한끝 차이다. '아기와나'는 아슬아슬한 선을 지켜가지만, 끝끝내 사라진 여자 순영이 끝까지 속을 알 수 없는 타인으로 남는 점은 아쉽다. 순영에 대한 비하와 모욕이 난무하는 술자리 친구 무리의 걸레 같은 언사 역시 목적이 분명한 신임에도 불편함이 남는다.

영화의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도일 역의 이이경은 특히 돋보이는 존재감으로 극을 이끈다. 최근작인 드라마 '고백부부'에서 장발의 코믹 캐릭터로 서슴없이 망가진 그는 2년 전 '아기와 나'를 찍었다. 전혀 다른 두 작품이 동시기 선보였음에도, 이이경은 '아기와 나'로 드라마 속 캐릭터가 비집고 들어올 틈 없는 몰입을 보여주며 갑갑한 청춘 이야기를 든든하게 지탱한다. 손태겸 감독은 '미생 프리퀄'로 임시완을, '여름방학'으로 이수경을 발견한 주인공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그 눈썰미와 연출력을 실감케 된다. 지질한 청춘, 그 불안한 성장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또한 마찬가지다.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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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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