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로버츠감독의 이해못할 '다르빗슈 미련'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11.03 08:34 / 조회 : 6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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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빗슈 유 /AFPBBNews=뉴스1


올해 LA 다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격돌한 올해 월드시리즈는 6차전까지 거의 매 경기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역대급 명승부가 펼쳐져 팬들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엔딩은 실망스러웠다.

2일(한국시간) 펼쳐진 시리즈 최종 7차전에서 휴스턴은 1회와 2회 다저스 선발 다르빗슈 유를 두들겨 5점을 뽑아낸 이후 나머지 7이닝에선 한 점도 추가하지 못했지만 다저스가 이날 첫 3이닝에서 계속 두 명 이상의 주자를 내보내고도 한 점도 뽑지 못하는 ‘타격변비’ 증세를 보인 데 힘입어 크게 추격당하지 않고 순항한 끝에 5-1로 승리, 구단 55년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휴스턴 입장에선 내용과 관계없이 너무도 감격스럽고 흥미진진했던 경기였겠지만 다저스나 중립 팬들 입장에선 경기 시작부터 풍선에 구멍이 뚫려 바람이 빠져나간 것처럼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이 쭉 빠져나가버리는 허탈감을 느꼈던 실망스런 결말이었다.

이런 결과가 나오면 당연히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따지게 마련이다. 우선 시리즈 3차전에 이어 또 다시 1⅔이닝 만에 강판당하는 수모를 당한 선발투수 다르빗슈에 대한 질타가 나오고 있다. 한 번의 부진이나 실수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최고의 무대에서 두 번 연속으로 생애 최악의 투구를 보인 것은 사실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을 예방하지 못한 데이브 로버츠 감독도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사실 이날 다르빗슈가 초반에 KO되면서 일찌감치 승부를 그르치고 난 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3번째 투수로 등판해 3회부터 6회까지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자 “다비시가 아니라 커쇼가 선발로 나왔어야 했다”는 말이 나왔다. 당장 FOX TV의 해설자인 명예의 전당 멤버 존 스몰츠부터 중계 도중 이를 언급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어차피 커쇼를 4이닝이나 던지게 할 생각이 있었다면 당연히 자신감이 바닥에 떨어진 다르빗슈보다는 커쇼를 선발로 내보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라는데 필자도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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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첫 우승을 일궈내고 기뻐하는 휴스턴 선수단./AFPBBNews=뉴스1


하지만 이것은 결과론일 뿐이다. 7차전 시작 전에 다저스 선발로 다르빗슈가 아니라 불과 사흘 전 5차전에 선발 등판했던 커쇼가 다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모르지만 그런 목소리는 전혀 없었다. 필자 역시 경기 전까진 다르빗슈 대신 커쇼가 선발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5차전에 선발로 나서 94개의 공을 던진 커쇼가 단 이틀을 쉬고 돌아와 이처럼 잘 던질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커쇼 선발 의견이 7차전 경기 시작 전에 나왔다면 뛰어난 혜안을 가졌다고 인정하겠지만 경기 후에 나타난 결과를 보고 말하는 것은 고려할 가치도, 의미도 없다.

하지만 결과론이 아닌 차원에서 이날 경기를 복기하며 다저스 패배를 불러온 문제점들을 짚어볼 수는 있다. 우선 이날 다르빗슈의 투구내용을 살펴보자.

다르빗슈는 앞서 3차전에서 생애 가장 짧은 1⅔이닝만에 6피안타로 4실점하고 강판 당했다.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압도적인 피칭을 보였던 것과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었다. 그날 다르빗슈가 난타당한 가장 큰 원인은 그의 주무기인 슬라이더가 높게 제구 됐기 때문이었다. 슬라이더가 낮게 떨어지지 않으면서 그는 휴스턴 타자들에게 베팅볼 투수처럼 두들겨 맞았다.

따라서 이날 다르빗슈 등판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과연 그가 슬라이더를 낮게 제구 할 수 있느냐에 모아져야 했다. 이날 경기가 벼랑 끝 7차전인 만큼 다저스 입장에선 설사 1회라도 그의 제구력에 문제가 드러나면 큰 타격을 입기 전에 교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는 의미다. 더 이상의 경기가 없고 커쇼와 알렉스 우드를 포함, 거의 모든 투수가 등판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선발투수를 일찍 내리더라도 가동할 투수는 얼마든지 있는 상황에서 3차전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다르빗슈는 경기 시작부터 제구가 좋지 않다는 것을 드러냈다. 1회초 선두 조지 스프링어를 상대로 3구 슬라이더가 포수가 주문한 아웃사이드로 떨어지는 대신 한복판으로 쏠렸고 스프링어는 이를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2루타로 연결했다. 다음 타자 알렉스 브레그먼은 주자를 3루로 보내기 위해 타구를 오른쪽으로 보내려고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 다르빗슈는 빠른 볼을 아웃사이드 코너에 던져 브레그먼이 1루 땅볼을 치기 쉽게 도와주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1루수 코디 벨린저의 송구실책까지 나오며 다저스는 눈 깜짝할 새에 선취점을 내주고 계속해 무사 2루 위기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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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빗슈 강판시킨 투런포의 주인공 스프링어./AFPBBNews=뉴스1


계속해서도 아쉬운 장면이 나왔다. 다르빗슈가 2루주자 브레그먼의 도루 가능성을 간과하고 풀 와인드업 모션으로 공을 던지다 가볍게 3루 도루를 허용한 것이다. 1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의가 부족했고 그 책임은 벤치도 함께 져야 했다. 이어 호세 알투베를 상대로 또 다시 슬라이더가 떨어지지 않고 들어가 오른쪽 내야땅볼로 가볍게 3루 주자의 홈인을 허용하고 말았다. 첫 3타자 만에 스코어는 2-0이 됐고 결과적으로 이 두 점은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패배를 안겨준 점수가 됐다.

다르빗슈의 제구가 좋지 못하다는 것은 계속해서 2사후 율리 구리엘과의 대결에서도 드러났다. 3차전에서 그를 상대로 홈런을 친 뒤 그에 대한 인종차별적 제스처를 해 논란을 빚었던 구리엘을 상대로 다르빗슈는 공을 13개나 던진 끝에 간신히 빠른 볼로 외야플라이를 끌어냈지만 이 과정에서도 슬라이더를 3개나 한복판에 던지는 불안한 제구력을 노출했다. 구리엘이 이중 하나라도 제대로 공략했더라면 다르빗슈는 아픈 상처에 소금이 뿌려지는 이중의 수모를 당할 뻔 했다. 결과는 아웃이었지만 다르빗슈가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잘 보여준 대결이었다.

그럼에도 다저스는 2회초 르빗슈를 다시 마운드에 올렸고 그는 첫 타자 브라이언 맥캔을 상대로 계속 제구력 난조를 보인 끝에 볼넷으로 내보내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말았다. 이어 마윈 곤잘레스에게 던진 커터가 한복판으로 쏠려 우월 2루타를 맞고 무사 2, 3루의 위기에 몰린 다르빗슈는 다음 타자 자시 레딕을 빠른 볼로 2루땅볼로 유도, 발이 느린 3루주자 맥캔을 3루에 묶어놓고 원아웃을 잡았다. 다음 타자가 투수인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임을 감안하면 추가 실점없이 이닝을 마칠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하지만 다르빗슈는 이날 등판을 바로 잡을 마지막 기회도 살리지 못했다. 맥컬러스를 상대로 던진 슬라이더가 또 높게 들어가며 빗맞은 2루 땅볼을 허용해 3루 주자의 홈인을 허용하고 말았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왜 이 상황에서 다저스 내야수비가 전진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3루 주자의 발이 느리고 타자가 상대투수라면 내야수비를 앞으로 당겨 내야땅볼 때 3루주자의 득점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다저스 2루수 로건 포사이드는 중간지점에서 수비를 하고 있었고 맥컬러스의 빗맞은 타구를 앞으로 달려와 잡았을 때는 아무리 발 느린 맥캔이라도 홈에서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미 점수차가 3-0으로 벌어진 상황에서 로버츠 감독이 계속 다르빗슈를 마운드에 남겨둔 것도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1루가 빈 2사 3루에서 다음 타자 스프링어를 고의사구로 거르지 않고 승부를 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스프링어는 첫 타석 2루타를 포함, 다르빗슈와 3차례 맞대결에서 2루타 2개를 때렸고 이미 이번 시리즈에서 홈런 4개를 포함, 3할7푼이 넘는 고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가장 뜨거운 타자였다.

반면 다음 타자인 브레그먼은 다르빗슈를 상대로 생애 통산 11타수 2안타(타율 0.182)에 그치고 있었다. 다르빗슈를 계속 던지게 할 생각이라면 당연히 스프링어를 거르고 브레그먼과 상대시켜야 할 상황이었다. 아니라면 이 시점에서 다르빗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투수를 바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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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로버츠 감독./AFPBBNews=뉴스1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그냥 다르빗슈에게 스프링어를 상대하게 했고 그 결과는 이날 승부에 못질을 한 쐐기 투런포였다. 경기 후 다르빗슈는 스프링어와 풀카운트로 맞선 상황에서 포수 오스틴 반스가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주문했지만 슬라이더를 던질 자신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 슬라이더는 예리하지 않았다. 스프링어같은 타자를 잡기엔 역부족이었다”면서 “볼카운트 3-2에서 반스가 슬라이더를 요구했지만 1회와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결국은 빠른 공으로 승부를 했다”고 밝혔다. 다르빗슈의 시속 95마일 패스트볼은 한복판으로 들어갔고 스프링어는 이를 완벽하게 잡아당겨 비거리 438피트짜리 대형 투런아치를 그려 리드를 5-0으로 벌렸다. 이 한 방으로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패배가 사실상 확정됐고 다르빗슈의 짧았던 다저스 커리어도 막을 내렸다.

물론 이 상황에서 스프링어를 걸러 보냈거나, 다르빗슈를 교체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과론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로버츠 감독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르빗슈에게 스프링어를 상대하게 놔둔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하는 것은 결과론이 아니다. 2차전과 6차전에서 리치 힐이 던질 때는 성급하다 싶을 정도로 빨리 교체를 단행했던 로버츠 감독이 왜 이미 한 차례 실패를 경험한 다르빗슈에게 이처럼 오래 미련을 갖고 있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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