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어느덧 만신창이' 다저스 불펜 ..힐만 믿는다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10.31 09:38 / 조회 : 4061
  • 글자크기조절
image
5차전서 이해안갈 불펜 운용을 보인 데이브 로버츠 감독./AFPBBNews=뉴스1


LA 다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충돌하고 있는 제113회 월드시리즈가 역대 최고급으로 평가되는 명승부를 이어가고 있다. 휴스턴이 연장 11회 접전 끝에 7-6으로 승리한 시리즈 2차전 후 많은 사람들이 “역대 최고의 명승부였다”고 했는데 불과 나흘 만에 ‘역대 최고 경기’라는 타이틀이 2차전에서 5차전으로 넘어가게 생겼다.


30일(한국시간) 5차전에서 나온 13-12라는 스코어는 113회를 맞는 월드시리즈 역사에서 처음 나온 것이었다. 월드시리즈만이 아니라 모든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 경기를 다 포함해도 이런 스코어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이번 월드시리즈 5차전과 비견될만한 ‘미친’(Crazy) 게임을 꼽으라면 1993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맞붙었던 월드시리즈 4차전이 꼽힌다. 그 경기는 15-14라는 스코어가 나와 스코어 합계(29점)에서 월드시리즈 최고 기록을 세운 게임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그 경기는 9-14로 크게 뒤지던 토론토가 8회초 대거 6점을 뽑아 15-14로 승리, 사실상 막판 한 번의 반전이 승부를 결정한 것으로 거의 매 이닝마다 승부의 저울추가 결정적으로 요동쳤던 이번 5차전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날 경기는 경기 초반부터 승패의 저울추가 워낙 크게 요동쳤기에 9회초 다저스가 2사 후 크리스 테일러의 적시타로 12-12 동점을 만들었을 때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만약 누가 영화나 드라마를 이런 시나리오로 만든다면 지나치게 현실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내용이 너무 유치한 것 아니냐고 조롱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로도 만들기 힘든 황당한 시나리오가 실제로 펼쳐진 것이다.

5차전을 포함,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불펜싸움이다. 그리고 이날 기록적인 난타전을 거치면서 양팀 모두 불펜이 이미 바닥을 드러난 모양새다. 불펜에서 마운드로 걸어오는 양팀 투수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자신감 대신 불안감이 느껴지고 있는 상황이다.


image
2차전 블론세이브에 이어 5차전 패전투수가 되고만 '철벽불펜'의 대명사 켄리 잰슨./AFPBBNews=뉴스1


사실 이번 시리즈를 앞두고 양팀의 전력 비교는 우열을 가리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팽팽한 백중세였지만 그래도 불펜만큼은 다저스가 다소 앞선다는 평이었다. 특히 다저스의 우완 필승조인 켄리 잰슨, 브랜든 모로, 마에다 겐타 트리오는 앞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와 시카고 컵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거의 ‘언히터블’의 위용을 보였기에 다저스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이유로 불펜의 우세를 꼽았다.

그런데 시리즈가 6차전으로 향하는 현재 다저스의 불펜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양상이다. 마운드에 올라오는 투수들마다 호되게 두들겨 맞고 있을 뿐 아니라 5차전까지 너무 잦은 등판으로 인해 완전히 진이 빠진 모습이다. 이번 시리즈 이전에 보였던 압도적이고 위력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특히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공격적인 불펜 운용으로 인해 거의 매 경기마다 필승조가 투입되면서 핵심 불펜요원들은 이미 거의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다. 다저스의 셋업맨으로 필승조의 핵심 요원인 브랜든 모로는 5차전에 앞서 로버츠 감독이 “오늘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이날 경기가 그 누구도 예상 못한 난타전으로 전개되면서 결국은 이날도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다저스가 8-7로 앞선 7회말 마운드에 오른 모로의 이날 투구 모습은 과연 그가 다저스가 자랑하는 철벽 셋업맨과 같은 사람인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였다.

모로는 이날 마운드에 올라 단 6개의 공을 던지며 홈런 2방과 안타, 2루타 등 4안타를 맞고 4실점한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조지 스프링어에 던진 초구 빠른 볼(시속 95마일)은 왼쪽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동점 솔로홈런이 됐고 이어 알렉스 브레그먼에 슬라이더를 던져 안타를 맞았다. 다음 타자 알투베를 상대로 2구만에 패스트볼(97마일)을 던진 것이 2루타가 됐고 이어 카를로스 코레아에게 2구 97마일 패스트볼을 통타당해 좌월 투런홈런을 내준 뒤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단 6개의 공을 던져 홈런 2방과 2루타, 단타 등 4안타로 4실점한 것이다. 빠른 볼 평균 구속이 시속 98마일에 달했던 모로가 이날 던진 최고 구속이 97마일에서 멈춰선 것만으로도 그의 몸 상태가 100%가 아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image
브랜든 모로 /AFPBBNews=뉴스1


브랜든 모로 투구내용

image


로버츠 감독은 경기 후 모로의 등판이 본인이 자청해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 도중 모로가 불펜에서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몸 상태가 괜찮다면서 팀이 리드를 잡으면 등판하고 싶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모로 역시 경기 후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몸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전화해 경기에 나가겠다고 한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었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본인이 자원한 등판임에도 불구, 모로에게 4타자나 상대시킨 로버츠 감독의 결정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가 첫 두 타자에게 공 2개로 홈런과 안타를 맞은 과정을 보면 구위가 100%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 뚜렷했고 그런 구위로 휴스턴의 톱2 히터인 알투베와 코레아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했다. 그냥 놔두면 얻어맞는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마치 맹렬하게 달려오는 트럭의 강렬한 헤드라이트에 그대로 얼어붙은 도로위의 사슴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모로가 이들과 충돌해 회복불능의 치명상을 입은 후에야 어쩔 수 없이 그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이날 승패를 떠나 불펜에서 잰슨을 제외하면 가장 소중한 자산인 선수가 100%가 아닌 상태에서 상대에게 유린당하도록 남겨둔 결정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로가 이날 입은 타격이 워낙 심각해 6차전에도 등판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모로 외에도 다저스 불펜의 상황은 심각하다. 잰슨이 이날 다저스가 극적인 동점을 이룬 뒤 9회말 마운드에 올라 10회까지 사실상 2이닝을 던지며 결국은 패전투수가 됐다. 전날에도 1이닝을 던진 잰슨의 구위는 정규시즌 때에 비해 훨씬 떨어진 기색이 역력하다. 이들보다 먼저 등판한 마에다도 3차전에서 42개를 던진 뒤 이틀 만에 마운드에 오른 이날 알투베에 동점 3점포를 얻어맞는 과정에서 구위가 상당히 떨어진 모습을 드러냈다. 믿었던 우완 필승조가 모두 그로기상태에 놓인 것이다.

image
불펜이 망가진 다저스, 6차전 선발 리치힐이 구원할까./AFPBBNews=뉴스1


지금 다저스 불펜에는 확실하게 1이닝을 맡아줄 수 있다고 자신할만한 선수조차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휴스턴은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 불펜을 상대로 타율 0.292, 출루율 0.346, 장타율 0.635로 OPS 0.981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다저스의 운명은 이제 6차전 선발인 리치 힐의 어깨에 달려 있게 됐다. 불펜의 큰 도움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힐이 얼마나 오래 버텨줄 수 있느냐가 승부에 절대적인 열쇠가 됐다. 시리즈 2차전에서 4회까지 3안타 1실점으로 호투하고도 투구수가 60개에 불과했던 0-1 상황에서 교체된 뒤 분노를 나타냈던 힐이 팀을 구해낼지 주목된다. 그동안 힐에게 많은 이닝을 맡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로버츠 감독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를 믿고 맡겨야 할 것이다. 그가 믿고 의지해온 불펜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