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차인표 "美영화 '라이프' 무산, 오히려 용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10.13 18:39 / 조회 :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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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사진=김휘선 기자

차인표가 영화 제작자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 13일 오후 KTX를 타고 부산을 향하는 그의 목소리는 사뭇 행복해 보였다. 수화기 너머로 그가 전한 첫 인사는 "행복하세요?"였다. 행복을 찾아 무모한 도전을 한 차인표였기에, "행복하냐"는 질문의 울림은 제법 컸다.

차인표는 올초 영화사 TKC픽쳐스를 차렸다. 그리고 한미 합작영화 '헤븐퀘스트: 필그림스 프로그래스' 촬영을 최근 마쳤다. 한미 합작이라고 하면 거창하다.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든 영화다.

TKC픽쳐스의 TKC는 'Thy Kingdom Come'의 약자다. 주의 나라가 임하도록 노력한다는 뜻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차인표는 지천명(50살)을 맞아 주의 나라가 임하도록 노력한다는 영화사를 차렸다. 그가 첫 작품으로 내놓은 영화 '헤븐퀘스트: 필그림스 프로그래스'는 소설 '천로역정'을 각색한 액션 판타지물이다.

'Thy Kingdom Come'이라는 영화사를 차리고 천로역정을 영화로 만들었으니, 차인표 다운 선택이다.

그렇다고 선뜻 뛰어들기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자칫 비웃음 사기도 쉬운 일이다. 오히려 그냥 하던 대로, 하던 일을 하는 게 더 편한 길이다. 차인표는 왜 굳이 좁은 길을 골라 걸어 든 것일까.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고난이, 실패의 경험이, 그에게 되려 용기를 줬다.

"할리우드 영화 '라이프' 캐스팅 제안이 왔어요. 제이크 질렌할, 라이언 레이놀즈 등이 출연한 SF영화인데 동양인 과학자 역할로 오디션을 보라는 것이었요."

차인표는 과거 ‘007’ 시리즈로 할리우드에 진출할 뻔했다. 당시 악독한 북한군 간부 역할을 제안받았으나 남북 관계를 왜곡할 수 있단 생각에 고사했었다.

그렇기에 ‘라이프’ 출연 제안은 그에게 나이 오십에 또 다른 기회처럼 여겨졌다. 차인표는 “옛날에 할리우드 갈 기회가 있었지만 무산됐는데 오십에 가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차인표는 지난해 초 한달 여 동안 ‘라이프’ 오디션을 진행했다. 스튜디오에서 오라고 하면 미국으로 달려갔다. 사장 인터뷰로 다시 오라고 하면 또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 처음에 설렘은 이내 사라지고 조마조마한 시간들이 계속됐다. 처음엔 적극적이던 ‘라이프’ 측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계속 최종 답변을 미뤘다.

차인표는 당시 이미 KBS 2TV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 출연하기로 한 터라 마냥 ‘라이프’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결국 ‘라이프’와 인연을 접어야 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평소 좋아하고 관심 있었던 내용도 아닌데 그저 할리우드란 생각에 그렇게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먹어야 했나란 생각이 들었죠. 이 나이에 그러지 말고 좀 더 솔직해보자고 마음 먹었어요. 하고 싶은 걸 하자고 생각했죠.”

차인표는 “뜻을 세웠더니 길이 보이더라”고 했다.

차인표는 가족영화, 기독교영화, 세상에 좋은 영감을 주는 영화에 대한 뜻을 오래 품고 있었다. 그래도 선뜻 용기를 낼 순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2015년 ‘서울서칭’이란 재미동포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운좋게도 그 영화가 그해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됐다. 그렇게 미국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썩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아시안 배우에게 기회가 없었다.

“(아시안 배우들이)좋은 역도 안 오고. 기회도 적고. 어떻게든 기회를 잡으려 이곳저곳 파티에 기웃거리더라구요. 나 같은 선배들이 프로듀서로 그들이 일할 기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채무감이 들었어요.”

선댄스영화제 경험과 ‘라이프’의 좌절. 두 경험은 차인표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차인표는 “막상 영화 제작을 하려 했는데 상업영화 길은 아닌 것 같았다. 이미 너무 많고”라면서 “뭘 하면 행복할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올해 3월 미국에서 공부 중인 아이들과 아내를 만나려 LA로 넘어가면서 일이 시작됐다.

마침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계 미국 배우 리키 김을 만났다. 이런 생각들을 두런두런 나누다가 의기투합했다. 리키 김이 마침 준비 중이던 영화 ‘헤븐퀘스트’를 같이 만들고 출연도 하자고 뜻을 모았다. 차인표는 리키 김을 통해 킹스트릿 픽쳐스 댄 마크를 소개 받아 '헤븐 퀘스트'에 결국 공동제작자로 나서게 됐다.

“신기했어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게 가능해진 게 정말 신기했어요.”

매일매일이 행복한 경험이었다. 매일 아침 황량한 사막, 촬영장에 각국의 배우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시작했다. ‘헤븐퀘스트’에는 차인표과 리키 김을 비롯해 미국의 알렌 파웰·에릭 티에데·패트릭 톰슨, 호주의 피타 서전트, 멕시코의 카리미 로자노·페르난다 로메로, 덴마크의 에스거 폴먼 등이 출연했다.

매트 빌런 감독과 인연도 신기했다. 시카고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이던 매트 빌런 감독은 선생님을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꿈을 잊지 않았다. 단편영화를 찍고, 늘 준비를 해왔다. 한국과 인연도 남다르다. 매트 빌런 감독은 한국, 필리핀, 에티오피아에서 온 세 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 그가 첫 장편영화로 ‘헤븐퀘스트’을 택한 건, 밤마다 세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가 ‘천로역정’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천로역정’을 지루해 하자 액션 판타지 버전으로 각색해서 이야기하고, 그렇게 그 이야기가 ‘헤븐퀘스트’가 됐다. 매트 빌런 감독과 리키 김의 인연이, 차인표에게로 이어진 것이다.

차인표의 말대로 신기하다. 신기할 정도로 차인표와 매트 빌런 감독 이야기도 닮았다. 입양과 기독교. 새로운 도전. 차인표는 “매트 빌런 감독이 시카고에서 LA로 아예 가족들과 이사 왔다. 영화감독으로 전념하기 위해서다”며 “‘헤븐퀘스트’는 잘 돼야 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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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퀘스트' 스틸/사진제공=TKC픽쳐스

차인표는 신기한 경험은, 정작 영화 촬영 뒤에 더 많았다고 했다. 미국 독립영화 규모이기에 많은 예산이 없었다. 자신을 비롯한 출연진도 영화 취지에 공감해 출연료를 10분의 1도 채 받지 않았다.

그런 영화에 할리우드 메인 스트림에서 활동하던 스태프들이 속속 참여의 뜻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차인표는 “‘레버넌트’ 편집에 참여한 해리 윤이 7시간 동안 촬영분을 보더니 자원봉사로 ‘헤븐퀘스트’에 슈퍼바이저로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음악은 ‘데드풀’을 했던 조나든 버드가 선뜻 하겠다고 했다. CG는 더 기막히다. 돈이 없어 브라질 업체에 맡겼더니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겼다. 그랬더니 ‘맨 오브 스틸’ ‘캡틴 아메리카’를 했던 조쉬아 가르빈시아가 주말을 이용해 돕겠다고 했다.

차인표로선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말이 절실하게 여겨질 법하다.

차인표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열리는 아시안필름마켓에서 ‘헤븐퀘스트’를 선보인다. 아직 후반작업이 끝난 게 아니라 해외 바이어들에게 간단한 데모 영상을 소개할 예정이다. 어떤 결과를 원해서 판을 벌인 건 아니다.

“미국은 가족영화, 종교영화 시장이 커서 영화 촬영을 하고 나니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온다. 그런데 난 이 영화를 한국에서 선보이고 싶다. 세일즈 경험이 없으니 일단 직접 부딪혀보자는 생각에 아시안필름 마켓을 찾았다.”

새 일을 하는 데 가족의 응원이 없다면 쉽지 않은 법. 부인 신애라는 “하고 싶은 일 하라”고 했단다. 물론 한국에서 일은 계속 하라는 말은 잊지 않았단다. 차인표는 “생활비는 벌라는 소리죠”라며 웃었다.

돈에 대한 불안함은 없을까. 미래에 대한 걱정은. 영화 제작 뛰어들었다가 가산 탕진한 사람 한둘 본 것도 아닐텐데. 차인표는 “행복합니다. 지금. 사람이 행복하려고 사는데 행복한 일을 하니깐 정말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차인표는 ‘헤븐퀘스트’ 1편이 잘 선보이면 2편도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적극적으로 함께 한 컴패션의 창립자 에버렛 스완슨 목사의 삶을 영화화하는 것도 기획 중이다.

차인표가 50살에 꾸는 꿈이 지상에서 이뤄질지, 그의 행복이 자연스레 남들에게 흘러갈지, 분명한 건 그는 꿈을 이루려 첫 발을 내딛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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