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조진웅 "'명량' 최민식의 고통..이젠 내 차례구나"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10.18 17:00 / 조회 : 2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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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김창수'의 조진웅 / 사진제공=(주)키위미디어


영화 '대장 김창수'(감독 이원태) 개봉을 앞둔 조진웅은 유독 "성정", "숙명" 같은 단어들을 거푸 입에 올렸다. 허허실실 너스레를 떨곤 하던 여느 인터뷰와는 확연히 다른 부담과 무게가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장 김창수'는 존경받는 민족 지도가 백범 김구의 청년기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고 그는 김창수라 불리던 시절 젊은 김구를 연기했다. "내가 왜"라는 생각에 몇 번을, 몇 년을 거절했다던 조진웅은 결국 내 차례라는 생각에 '대장 김창수'를 집어들었고, 그저 감옥소 속 젊은 김창수의 마음과 성정에 녹아들고자 했다. 웬만한 사람이어야지,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성정"이나 "숙명"같은 단어가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다.

할아버지 묘를 찾듯 김구 선생의 묘를 드나들면서 영화를 촬영하고 또 영화의 개봉을 앞뒀다는 조진웅. 이젠 길에 침도 못 뱉고 살겠다 싶다면서도 "이 역할을 연기했으니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과 무게감이 있다. 더 바르게 살면 더 좋은 것 아니겠냐"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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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김창수'의 조진웅 / 사진제공=(주)키위미디어


-'대장 김창수' 포스터에 커다랗게 얼굴이 실렸다.

▶상당히 부담스럽다. 볼 때마다 부담스럽다.(웃음) 포스터는 촬영을 마치고 따로 찍었다. 표정이 나올까 했는데 나오더라. 한두 달이 됐는데도 그때 느낌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사실 저는 작업이 끝나고 포스터를 촬영하며 당시를 떠올리면 동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느낌이 달랐다. '대장 김창수'는 영화를 홍보하면서도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울컥울컥 하는 게 있다. 당대를 생각하면 더 숙연해지기도 한다.

-수차례 고사했던 영화라 들었다. 결국 '대장 김창수'에 출연한 이유는 뭔가.

▶처음 고사하고 나서 1년반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2년 지나고 3년 지나 또 이야기를 하더라. 원래 시나리오 제목은 '사형수'였다.

아무도 안 하려고 하나 그랬다. (웃음) 그러다 내 차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량' 때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최민식 선배님을 옆에서 뵈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하시는 걸 보면서 실존했던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저렇게 고통스럽구나 했다. 그걸 알고 있는 저로선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사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자연스럽게 이쯤 돼선 내 차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건 숙명이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작했다. 김구 선생님이 1876년생인데 제가 100년 뒤 태어난 1976년생이다. 게다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백범로에 살고 있었다. 백범로를 따라 쭉 가면 효창공원이 있는데 거기 김구 선생님 묘가 있다. 작업을 하면서 처음 김구 선생님 성묘를 갔는데, 부산에 있어 자주 못 가던 할아버지 산소에 가듯 가서 주저리주저리 칭얼대다 와도 되겠구나 생각이 들더라. 아내랑도 다녀온다. 오늘 아침에도 갔다 왔다. 이런 공간을 알게 돼 알리는 것도 내 몫이 되겠구나, 끼워 맞추다 보니 이런 합리화까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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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김창수'의 조진웅 / 사진제공=(주)키위미디어


-직접 연기해보니 어땠나. 역시 고통스럽던가.

▶최민식 선배님의 모습을 곁에서 봤을 뿐 느낀 것은 다를 것이다. 저는 실존 인물 연기를 다시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웬만한 사람이어야지, 다가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이 작업을 하면서 분명 변한 게 있다. 제가 역시 일제강점기를 다룬 '암살'이라는 영화를 했다. 그 때 '당시 태어난다면 독립운동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고 '절대 안 한다'고 했다. '목숨 걸고는 못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제가 저에게 물어봤다. '할 수 있겠어?' 이번엔 '당연히 해야한다'는 답이 나왔다. 그것 역시 제 차례인 것이다. 스스로 돌아봐도 저는 귀가 얇고 팔랑귀지만, 확실한 변화다. 그것만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소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몸도 정신도 힘들었을 텐데.

▶연기할 때 항상 느끼는 것인데, 그것이 고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엄청난 재미다. 진짜 신명나는 것이다. 운동하며 구보를 하고 푸쉬업을 하는 게 엄청 괴롭고 힘들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상쾌하다. 고통을 알면서 왜 하겠나. 그것을 즐기려고 하는 것이다. 고통이라 하면 고통일 수밖에 없고, 고통이 드러나야 하는 장면도 있지만 그것조차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대장 김창수' 또한 여느 영화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작업이 끝나고 나서 홀가분 한 반면 무거워지고 부담스러워지는 것도 있다. 고통이 풀리기도 하고 남아있는 것도 있다.

힘들었던 과정을 털어낸 것 중 하나는 김구 선생님 손자분 등 가족들이 영화를 보셨다. 다행히도 잘 보시고 왜곡 없이 담백하게 이야기를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감독님과 통화하며 '우리가 이 영화를 하면서 여러 목적이 있었습니다만, 하나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고 했다. '니들이 뭐라고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 우리 할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어' 할 수도 있는데 잘 보셨다니 너무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지점에서 출발해 청년 김창수를 그려나갔나.

▶그 시기 자료가 전무하다 싶을 만큼 없더라. 분명한 건 18살이란 나이로 동학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이고, 그 성정이 키워드가 되고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하던 사람이 큰 인물이 되기까지 초석에는 그런 신조나 신념이 있었을 것이고, 감옥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변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창수'가 '김구'가 될 수밖에 없는 과정을 겪었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니 그런 성정으로 그냥 살아보자 했다. 그런데 많이 맞아 힘이 들긴 하더라.(웃음)

감옥소에서 만난 고진사(정진영 분)란 캐릭터가 있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던 김창수는 '감옥 안에 핀 꽃이나 밖에 핀 꽃이나 똑같다'는 그를 통해서 사람들을 보게 된다. 감옥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만식과 또 만났다. 호흡도 차지다.

▶만식이 형은 오래 작업을 같이 했고 워낙 예전부터 알고 있던 선배 형이다. 좋아하고 잘 따르기도 한다. 그 형님 성정 자체가 상당히 올바르고 우직하니 남자다운 데가 있다. 좀 비슷하다. 만나면 좋은 친구다.

-묵직한 캐릭터지만 인간미가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특히 정만식과 함께할 때.

▶광대 짓 배우 짓을 하다 보니 관심받고 싶고 웃기고 싶고 하는 게 있다. 하다 보면 감독님이 너무 간 것 같다고 하고. '아 코미디 해서 맘껏 웃기고 싶다' 하는 할 정도다. 약간 살가운 장면들은 '진짜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다. 상대인 만식이 형이 편하기도 하고. 정말 좋은 포수 같다. 어떤 공을 던져도 받아주는 든든한 포수가 있으니 까불어도 괜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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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김창수'의 조진웅 / 사진제공=(주)키위미디어


-반면 감옥소장 역 송승헌과는 처음이었는데 어땠나.

▶누구나 알다시피 너무나 잘생겼다. 그래서 조금 짜증 났다. 그럼 좀 어려버리든지, 나이도 동갑이다. 선배들, 스태프도 '오랜만에 봐도 똑같다' 그러고는 나를 본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 한 프레임 안에 둘이 투샷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촬영감독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이걸 꼭 해야 하느냐, 내가 얘랑 같은 앵글에 있어야 하느냐'고.(웃음) 남자가 봐도 멋있다. 그 친구는 정말 남자답고 잘생겼다. 처음 작업을 같이 해 봤는데, 굉장히 진지하게 깊이 접근을 하더라. 그러니까 눈빛 등을 잡아내는 게 아닐까 했다. 그래서 연기하기에 편했다.

스탠다드하고 젠틀한 느낌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저는 그런 성정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걔가 아주 좋은 싱글몰트 위스키 같다면 저는 소주다. 저는 소주가 좋긴 하다.(웃음) 연기를 하다 보니 제가 사람들을 잘 본다. '방송이라 작업 중이라 저렇구나'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승헌씨는 스탠다드함, 젠틀함이 몸에 배어 있다. 그 성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모습이 있다. '저게 진짜배기인데, 배워야 하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만식이 형님이랑 '우린 안돼' 얘기하곤 했다. 의문의 1패? 의문의 1패가 맞다.(웃음)

-사형장 신은 어땠나. 세트라 해도 기분이 남달랐을 것이다.

▶촬영 때 처음 들어가 봤다. 그 느낌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으면 했다. 막상 들어가니 두렵더라. 그런데 그 분은 사실 당시 20대 초반이다. 나는 곱절이나 나이를 먹었는데 이렇게 두려워하고 있으니, 부끄럽더라. 창피하고도 부끄러웠다. 머리가 굉장히 조아려졌다. 나라면 당시 김창수를 보며 '살라'고 했을까 '당당히 가시게'라고 했을까. 내가 만약 그 상황이 된다면 떳떳하고 당당하게 갈 수 있어야겠다, 입을 꽉 다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 김창수'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에 들어보고 공생할 이유가 있다. 김창수는 그 사람들을 봐 왔고 자기가 처한 환경이 사형수고 대충 막 살아야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구라는, 구국의 아버지가 되셨다. 그렇게 들을 수 있는 자세들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같이 더불어 살자. 그것이 영화가 가지는 또 다른 미덕이 아닌가 생각한다.

-'명량'은 물론이고 '박열', '택시운전사' 등 실존인물과 관련된 영화들이 최근 연이어 흥행했다. 자연히 기대감도 있을 텐데.

▶어떤 영화나 똑같다.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좋겠다. 요즘 영화가 좋으냐 안 좋으냐가 관객 수로 평가되곤 하지 않나. 논란이니 뭐니 해도 영화를 잘 만들면 된다는 기사를 봤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잘 만들면 되는 거다. 작업 당시에도 감독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역사적 인물을 재현하며 너무 상업적으로 '역사팔이'를 하면 안되겠지만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관객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게 만들어보자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새로 쓰려 해도 (실제가) 너무나 극적이다. 이것만 한 드라마가 없더라. 대사도 선생님이 일지에 쓰셨던 말을 그대로 쓴 경우가 많다.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김구 선생님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관객들과 많은 소통을 했으면 했다. 저도 벌써 3번 영화를 봤는데 많은 사람들과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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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김창수'의 조진웅 / 사진제공=(주)키위미디어


-'대장 김창수'가 조진웅에게 준 것이 있다면. 이전과 달리 성정, 숙명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지만 뭔가 계기가 된 것 같다.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포기한 것이 생긴다. 체념이라고 할까? 굉장히 침이 빠지는 단어일 수 있겠으나 체념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다급해지거나 조급해지거나 한 건 없다. '이 영화는 잘 돼야 돼 대박나야 돼' 이런 건 없는데 '소외당하지 않겠지. 많이 생각하시겠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와이프도 '너 이상하다'고 한다.

내가 이 역할을 연기했으니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과 무게감이 있다. 어느 스태프가 그러더라. '자기는 길 가다 침도 못 뱉겠네.' 그러겠다 하면서도 '어차피 안 해야 하는데 안 하면 되잖아'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더 좋아지는 것 아니겠나.

-다작을 선보여 왔다. 좋은 평가와는 별개로 스스로는 자기 복제에 대한 고민도 있을 텐데.

▶매번 고민한다. 내가 볼 때는 다 똑같다. 제가 모니터를 잘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 다만 의도치 않게 시나리오라든지 캐릭터가 다 달랐다. '전작에서 했던 느낌을 이렇게 해 달라'는 감독을 한 번도 못 만났다. 다행이기도 하다.

내가 어디 가겠냐. 나는 어차피 똑같다. 저는 싱글몰트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쓰시려면 쓰시던가.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할 때는 그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그게 배우들 가장 큰 딜레마이고 가장 큰 숙제다. 뛰어넘고 싶은 벽이다. 모든 배우들이 그럴 것이다. 유명해졌던 작품이 있으면 그 이미지들이 대중들에게 각인된다. 그것을 바꾼다 해서 바뀌겠나. 살아온 성정이 있는데. 그저 부딪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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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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