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ML PS '관건은 불펜'..마운드 파격운용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10.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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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세일./AFPBBNews=뉴스1





올해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을 보면 그야말로 ‘타이탄들의 전쟁’이란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10개 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월드시리즈 우승후보로 손색이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최소한 8~9개 팀은 월드시리즈 우승후보로 평가받기에 충분한 전력을 갖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셔널리그(NL)에서는 시즌 104승의 LA 다저스를 필두로 97승의 워싱턴 내셔널스, 92승의 시카고 컵스 등 3개 디비전 챔피언과 93승을 올린 와일드카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모두 우승후보로 꼽힐 수 있는 전력을 갖춘 팀들이다. 이 4개 팀 가운데 가장 성적인 처지는 팀이 컵스지만 디펜딩 월드시리즈 챔피언인 컵스는 ‘고래 싸움에 낀 새우’가 아니라 그 자신이 ‘헤비급 고래’다.

지난해 ‘염소의 저주’를 깨는 우승을 차지한 컵스는 한 해 반짝한 팀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새로운 다이너스티를 이룰 후보로 평가됐던 팀으로 젊은 영건 슈퍼스타들이 즐비하게 포진한 완벽한 우승후보다. 시즌 성적은 디비전 시리즈 4팀 중 가장 처지지만 후반기 성적만 놓고 보면 컵스는 49승25패(승률 0.662)로 NL 1위였다. 후반기 승률 NL 2위 워싱턴(45승29패)보다 4게임이나 앞섰다. 104승을 올린 올해 최고의 팀 다저스는 후반기 성적이 43승39패로 컵스에 6게임이나 뒤졌다.

심지어는 단판승부인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애리조나에 패해 탈락한 콜로라도 로키스 역시 올해 NL 타격왕인 찰리 블랙먼과 놀란 아레나도, D.J. 르메이유 등이 거포들이 즐비하게 깔린 막강 타선을 보유한 강호였다. 그런 막강타선의 콜로라도와 NL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맞붙은 애리조나는 팀의 선발 원투펀치인 잭 그레인키와 로비 레이를 모두 투입하는 등 총력전 끝에 콜로라도의 강펀치를 간신히 막아내고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했지만 그로 인해 다저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선 선발진이 무너지면서 예상보다 훨씬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레인키는 2차전까지 등판할 수 없었고 올 시즌 ‘다저스 킬러’로 활약했던 레이는 콜로라도전 구원등판 후 단 이틀을 쉬고 나선 다저스와 2차전에서 전혀 그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애리조나가 콜로라도라는 막강한 상대를 꺾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음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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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벌랜더./AFPBBNews=뉴스1





아메리칸리그(AL)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각각 시즌 102승과 101승을 올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누가 우승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막강한 전력의 팀들이고 93승과 91승을 올린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 역시 충분히 우승후보로 분류될 수 있는 팀들이다. 오직 한 팀(미네소타 트윈스)만이 월드시리즈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멀다고 단정할 수 있었던 팀이었는데 미네소타는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양키스에 패해 포스트시즌에서 바로 퇴장, ‘고래싸움에 끼어든 새우’의 역할을 마쳤다.

올해 플레이오프 팀들이 얼마나 막강한 전력을 구축했는지는 올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팀들의 선발투수진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지난 6년간 수여된 12개의 사이영상(AL과 NL) 가운데 11개를 받은 투수 8명이 이번 포스트시즌에 나서고 있다. 클레이튼 커쇼(다저스, 3회)와 맥스 슈어저(워싱턴, 2회)를 필두로 릭 포셀로, 데이빗 프라이스(이상 보스턴), 달라스 카이틀, 저스틴 벌랜더(이상 휴스턴), 제이크 아리에타(컵스), 코리 클루버(클랜블랜드)가 그들이다.

지난 2011년 이후 사이영상 수상자 가운데 이번 포스트시즌에 나오지 못한 선수는 R.A. 딕키(애틀랜타) 한 명 밖에 없다. 여기에 2009년 수상자인 그레인키(애리조나), 2007년 수상자 C.C. 사바티아(양키스), 그리고 무려 12년 전인 2005년에 사이영상을 받았던 바톨로 콜론(미네소타)까지 합치면 올해 포스트시즌에 나선 투수 가운데 사이영상 트로피를 갖고 있는 선수가 11명이나 되고 이들이 가진 사이영상 트로피 수는 14개에 달한다. 여기에 아직까지 사이영상 수상경력은 없지만 실력은 사이영급으로 분류되는 크리스 세일(보스턴)과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워싱턴), 존 레스터(컵스) 등을 합치면 올해처럼 초특급 에이스급 투수들이 즐비했던 포스트시즌도 찾아보기 힘들 전망이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이런 특급 에이스들이 즐비함에도 불구, 이번 포스트시즌은 그 어느 해보다도 불펜이 지배하고 있는 시리즈라는 사실이다. 10일 새벽(한국시간)에 펼쳐진 휴스턴과 보스턴의 시리즈 4차전까지 첫 13개 포스트시즌 경기에 나선 총 26명의 선발투수 가운데 5회를 마치지 못하고 강판된 투수가 절반이 넘는 14명에 달하며 3이닝을 마치지 못한 선수도 8명에 달한다. 지금까지 던져진 총 이닝(230에서 불펜이 차지한 이닝(125.1이닝)이 선발투수가 커버한 이닝(104.2이닝)을 압도하고 있는데 이는 포스트시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불펜 가동이 빨라지고 있고 불펜의 견고함이 포스트시즌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고의 열쇠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간으로 10일 새벽에 펼쳐진 보스턴과 휴스턴의 디비전시리즈 4차전 경기는 메이저리그의 이런 추세를 잘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날 휴스턴은 시즌 14승 투수 찰리 모튼, 보스턴은 지난해 22승을 올려 AL 사이영상을 받은 포셀로를 선발로 등판시켰지만 이들은 모두 5이닝을 마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초반에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포셀로는 3회까지 5안타 2실점을 기록한 뒤 강판됐고 모튼은 5회 1사까지 2-1로 앞서가던 상황에서 1사후 볼넷을 내주자 바로 교체됐다. 정규시즌 경기였다면 이들 모두 교체대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른 선수들이다. 이날 지면 탈락하는 벼랑 끝에 몰려있던 레드삭스는 3회까지 1-2로 끌려가던 경기에서 포셀로를 내리고 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이자 최종 5차전 선발투수로 예정돼 있는 에이스 세일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 휴스턴도 가만있지 않았다. 5회 1사에서 2-1 리드를 지키기 위해 역시 1차전 선발이자 5차전 예정 선발투수였던 벌랜더를 투입하는 초강경 승부수로 맞섰다.

양팀 모두 팀 에이스이자 다음 경기 예정선발투수를 사흘만 쉬게 하고 불펜투수로 마운드에 올린 것이었다. 그나마 이날이 아니면 5차전도 없는 보스턴 입장은 이해하기가 쉽지만 휴스턴의 A.J. 힌치 감독이 홈 5차전 여유가 있음에도 별 위기없이 호투하던 모튼을 빼고 벌랜더를 투입한 것은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결과는 언뜻 힌치 감독의 도박이 비참한 실패로 가는 듯 했다. 벌랜더가 첫 타자인 앤드루 베닌텐디에게 우월 투런홈런을 내줘 바로 2-3 역전을 허용한 것이다. 반면 세일은 4회부터 7회까지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눈부신 피칭을 이어갔다.

하지만 분위기는 8회초 다시 뒤집혔다. 보스턴 벤치가 세일에게 이날 5번째 이닝을 맡긴 것이 결국 패착이 됐다. 세일은 8회초 선두 알렉스 브레그만에게 그린 몬스터를 넘어가는 솔로홈런을 맞고 동점을 허용했고 이어 1사 후 에반 개티스에 좌전안타를 내준 뒤 2사후 교체됐다. 이어 구원 등판한 마무리 크레이그 킴브럴은 볼넷과 폭투에 이어 조시 레딕에게 좌전 적시타를 맞고 4-3 역전을 허용했다. 보스턴 팬들 사이에서 차라리 8회 시작과 함께 마무리 킴브럴을 올렸더라면 하는 뒷말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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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 승부가 급부상중인 이번 포스트시즌서 '불펜' 커쇼를 만날지도 모른다./AFPBBNews=뉴스1



반면 휴스턴의 힌치 감독은 일단 리드를 잡자 바로 8회말 벌랜더를 대신해 마무리 켄 자일스를 투입, 2이닝 세이브를 주문하는 과감한 승부수 행진을 이어갔다. 그리고 휴스턴은 9회초 카를로스 벨트란의 적시 2루타로 한 점을 더 달아나 리드를 5-3으로 벌린 뒤 9회말 보스턴의 라파엘 데버스의 장내 홈런으로 한 점을 내줬지만 5-4 승리를 따내 난적 보스턴을 탈락시켰다.

이날 양팀 벤치의 파격적인 마운드 운용은 놀라움을 자아냄과 동시에 메이저리그의 포스트시즌 경기가 정규시즌 경기와는 전혀 다른 승부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 특히 1승이 절대적인 상황에선 선발투수와 불펜투수의 경계선은 모호해지는 것을 넘어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젠 포스트시즌에 나서길 원하는 투수라면 보직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전천후로 출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이 분명해졌다. 류현진이 포스트시즌 로스터에서 제외된 것도 이런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다저스와 애리조나의 시리즈가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승부가 타이트해진다면 커쇼가 불펜투수로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메이저리그의 포스트시즌이 갈수록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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