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웠어요, 라이온킹!] 백인천 "승엽아, 정말 자랑스럽고 수고했다"②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7.10.03 06:00 / 조회 : 2297
  • 글자크기조절
image
그라운드서 해후한 백인천 전 감독과 이승엽.


"승엽아, 수고했다. 오랫동안 수고했다. 더 이상 내가 얘기할 게 없구나. 자랑스럽고 정말 수고했다."


3일 오후 프로에서 22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애제자 이승엽을 향해 백인천 전 감독이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지난 1995년 백인천 감독이 삼성라이온즈 감독으로 부임했을 당시 이승엽은 한 명의 고졸 새내기였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고졸선수 정도로만 알고 있던 이승엽을 백인천 감독이 주목한 것은 이승엽의 어머니 고(故) 김미자씨와 만남 때문이었다.

"삼성 부임 후 선수단 부모님들과의 만남의 자리가 있었어요. 당시 대부분 어머님들이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셨죠. 헌데 이승엽 어머니께서는 '말 안 들으면 방망이로 두들겨 패도 좋습니다. 감독님께 다 맡기겠습니다'고 당부를 하시는 겁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라고 백 감독은 회고한다.

다음날 선수단과의 미팅에서 백감독은 "이승엽이 누구냐?"고 물었다. 어린 티가 여실한 이승엽은 수줍은 듯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때 처음 본 이승엽에 대해 백 감독은 "왕정치를 보는 듯 했어요. 야구 선수를 볼 때 난 제일 먼저 손발을 보는데 손발이 크고 뼈대가 굵고 종아리가 튼실해 신체조건이 딱 맘에 들더라구요. 또릿또릿한 인상도 맘에 들고. 그래서 물었죠. 넌 어떤 타자가 되고 싶니? 했더니 홈런타자가 되고 싶다고 하더란 말이죠. 그래서 그건 간단하다.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된다. 근데 네가 그걸 참아낼지 모르겠다 했더니 '그렇다면 참을 수 있습니다'고 당차게 얘기하더란 말이죠."


백 감독은 그렇게 눈을 사로잡은 이승엽을 남몰래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고 그 쉼없는 노력을 인정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때 경산숙소에 있었는데 아침에 나가보면 2군이랑 연습 같이하고 있고 경기장 나가보면 일찍 나와서 혼자 연습하고 있고, 경기 끝나고 나면 또 연습하고 숙소로 이동해서도 잠자리 들기 전에 또 연습하고...나도 일본에서 '야구에 미친 놈' 소리 듣던 연습벌레였는데 승엽인 나보다 더합디다."

그래서 백감독은 공개적으로 선언했다고 한다. "신체조건도 그렇고 연습량도 그렇고 승엽이 네가 나보다 낫다. 한가지 얼굴 생긴 것 빼곤 네가 더 낫다"고 우스개를 했다고 전한다.

image
백인천 전 감독./사진= 김창현 기자


같이 지도했던 양준혁과도 비교했다. 한마디로 '재주는 양준혁, 노력은 이승엽'이라고 평한다.

백 감독은 양준혁은 어떤 타격 이론과도 맞지 않는 '이상하게 치는' 타격을 했다며 전적으로 천부적인 재능으로 꾸려갔던 선수라고 회고했다. 이에 반해 이승엽은 야구의 이론적 측면에서 딱 맞는 타격을 했다고 평한다.

백 감독은 두 선수 모두 타격을 다듬어줬던 경험을 회고했다.

"승엽이는 어린 나이여서 잘 따라왔어요. 가령 방망이 그립이 가슴 쪽으로 내려와 있었는데 그걸 귀 높이로 끌어올렸죠. 그립이 내려가면 장타가 안 나오는데 한번 굳어지면 고치기 힘든 부분이죠. 승엽이는 어려서 잘 따라왔어요. 준혁이는 어느 날 감독실로 찾아와 '감독님 타격교육이 맞는 걸 알겠고 지금은 잘되고 있는데 그동안 제가 나름대로 쳐온 바가 있어서 슬럼프가 올까 불안합니다'라고 상의했어요. 그래서 '그렇다면 네가 맞다. 기존대로 해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된다'고 조언해줬죠."

백 감독의 지도를 받은 이승엽의 성장세는 놀라웠다. 양준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백 감독은 "전문가 입장에서 준혁이는 상당히 어렵게 가는 편이었다"며 "홈런 60개도 가능했던 선수였는데 아쉬움 남는 천재"라고 촌평했다.

만 나이 41세 은퇴, 프로 22시즌 소화. 공교롭게도 백인천-이승엽 사제의 야구궤적은 닮아있다. 그런 제자 이승엽의 은퇴를 지켜보는 백인천 감독은 "한눈 한번 안 팔고 야구에만 매진했던 집념의 선수였다. 나로선 섭섭한 마음이 크다. 프로는 본인이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구단이 그만두랄 때 그만두는 것이라고 충고도 했었는데 본인은 박수칠 때 떠나길 원했다. 그건 또 그 나름대로 훌륭한 선택일 수 있다고 본다"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백 감독은 "일단 좀 쉬었다가 미국도 가서 공부하고 일본도 가서 공부해보면서 현역 생활의 피로를 충분히 풀고 가장으로서 가족과 시간도 충분히 보낸 후 지도자로 그라운드에 복귀하길 바란다. 겸손한 성품의 이승엽은 지도자로서의 자질도 훌륭하다. 많은 것들을 받아들여 소화하고 숙성시킬 수 있는 덕장이자 지장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며 제 2의 인생을 살게 될 제자 이승엽의 앞날을 축원했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