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이병헌이 밝힌 #남한산성 #천만영화 #김태리

영화 '남한산성'의 이병헌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9.2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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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의 이병헌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은 380여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치욕의 역사를 다룬다. 1636년 인조 14년의 병자호란. 유난히 춥고 배고팠던 그 겨울, 청의 대군에게 둘러싸여 남한산성에 갇힌 채 물러서지도 나아가지도 못한 조선의 조정에선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처절하지만 격조 있는 말과 말의 싸움. 배우 이병헌(47)이 그 한 축을 담당했다. 진정 백성을 생각한다면 치욕을 감수하더라도 청과 화친을 맺고 살아남아야 한다 주장하는 이조판서 최명길 역을 맡았다.

5년 전의 추석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뜻하지 않게 왕이 된 광대가 되어 대체 왕이 무어냐 반문하던 그는 '남한산성'에서 왕을 향해 '임금이 무엇이옵니까' 묻는 신하가 되었다. 참담함을 끌어안고 울분을 눌러 담은 채 던지는 이병헌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묵직하고도 처연하다. 애드리브조차 할 수 없는 말의 향연,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충절의 대결에 끌려 '남한산성'을 택했다는 그는 채 먹먹함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남한산성'은 애드리브라곤 할 수 없는 작품이었을 것 같다.

▶애드리브가 전혀 없었다. 할 수도 없고, 하기도 조심스러웠다. 사실 이게 더 편하다. 워낙 글이 훌륭하기 때문에 온전히 거기에만 의존해서 연기한다는 게 너무 좋았다.

-말의 싸움이라 대사량이 엄청난데.


▶초반 시나리오를 보고 리딩을 했을 때부터 힘든 어휘도 많고 생경한 단어도 많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긴장했던 것 같다. 남달랐던 것 같다. 다 소화해야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했는지 외우는 게 특별히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김윤석과 절정으로 치닫는 싸움을 하는 신은 길기도 하지만 워낙 중요한 신이라 모두 긴장한 상태로 준비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까 그 신을 찍을 땐 모두가 제대로 긴장하고 날이 제대로 선 것 같더라. 촬영 땐 정작 저나 김윤석보다 더 긴장한 게 (인조 역) 박해일 같더라. 해일씨는 대사할 때 중간중간 받아쳐 주거나 앞에 있어야 했다. 두 사람이 이 중요한 연기를 하는데 자기가 받아치면서 실수할까봐 긴장하더라. 다 끝나고 해일씨가 피곤해 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특히 생각나는 대사가 있나.

▶워낙 좋은 대사가 많다. 뒤풀이에서도 그렇고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상헌은 충신이니 버리지 마십시오', '저는 이제 만고의 역적입니다' 같은 것인데 저는 어제 영화를 보면서 다른 대사가 다가왔다. 칸에게 '저희 백성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명길의 키포인트였고, 그래서 저에게는 울림이 더 컸다.

-캐스팅이 특히 쟁쟁하다. 더욱이 조우진 외엔 모두 처음 만났다고.

▶아무래도 작품과 배우들의 조합을 보게 되지 않나. 기대감 긴장감 반반이었다. 처음 호흡을 맞추고, 나와 과연 어떤 케미스트리가 있을까에 대한 걱정 반 기대 반. 설렘도 있고 과연 우리의 케미스트리가 맞을까 하는 걱정도 있고. 그런 것들이 뒤섞인 묘한 흥분이 있었다. 누군가 배우들을 작품에서 만나기가 생각보다 힘들다고 하더라. 공감한다. 신인도 물론이지만 저보다 오래 하신 분들도 보지 못한 분이 너무 많다.

-김상헌 역 김윤석과 내내 팽팽하게 대립하는 모습이다.

▶연기에 대해서는 서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저 혼자 생각했던 것은 목소리가 되게 크시구나 생각했다. 목소리가 정말 쩌렁쩌렁 울리시더라. 그건 어떤 면에서 부러운 부분이었다.

저와 같이 하는 신이 있다. 저도 심지어 연기할 땐 못 봤다. 마주보지 않고 왕을 향해 이야기하지 않나. 상대에게 하는 소리라도 왕에게 해서 쿠션으로 가게 한다. 대사 소리만 들리지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못보게 된다. 영화를 보는데 그 장면에서 '한 나라의 군왕이'라고 하면서 던지는 대사의 표정이 너무 가슴에 확 꽂히더라.

-김윤석과 만나니 어땠나.

▶그 전에는 몰랐다가 정말 열이 많은, 뜨거운 배우구나 생각했다. 대사를 막 하다가. 김윤석씨가 이야기했지만 낯선 단어들이 많고 게다가 사극이 처음이고 하시니까 그 단어를 외우고 그걸 막 입으로 열이 받아 나오는 상황이 나오기에 힘들다고 매일 말씀하셨다. 매일매일 그 이야기를 하셨는데 혀가 꼬여서 NG가 나면. 황동혁 감독은 한 두 테이크에 끝낸다. 찾는 게 나오면 '더'가 없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는지 자기 자신에게 막 화를 내시더라. 역시 열이 많으신 배우구나. 흥분되고 막 격정적인 신이니까. 컷 했는데도 그것이 고스란히 오는 것을 보면서 한없이 감정을 올릴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는 뜨거운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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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의 이병헌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어떻게 출연을 결정했나.

▶영화를 결정할 때는 아주 단순하게 이 작품이 나에게 울림을 줬는지 안 줬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이게 감독의 예술인지, 배우의 예술인지, 누가 돋보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남한산성'은 큰 울림을 줬다. 슬픈 영화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 읽은 느낌 그대로 이야기한다면 '남한산성'의 경우에는 어떤 슬픈 영화보다도 그 울림이 깊고 클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지나간 역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있었던 사실이기에 더 안타깝다.

-어떤 점이 현실과 맞닿았다고 느꼈는지.

▶이 영화가 어떤 답을 주는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유사한 상황이 약 400년 전에도 있겠구나. 당시 상황을 곱씹어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볼 수 있고 좀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고, 좀 더 현명한 답을 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것이다.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 역을 맡았다. 시나리오를 읽을 땐 어땠나.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 객관적으로 읽게 되는데 어느 누구한테도 치우침이 없었다. 다 읽고 나서도. 시나리오를 읽고 내가 누구에게도 한 쪽으로 치우치는 감정 이입이 없었다는 게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시나리오는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라는 게 누구에게 이입돼서 선과 악이 있고 그걸 응징해나가는 재미로 영화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이 돼서 쭉 보는 게 영화의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사람 이야기 들을 때는 저 사람에게 감정 이입이 되다가 저 사람 이야기 들으면 저 사람에게 확 이입이 된다.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찌 보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중 최명길 캐릭터의 매력이라면.

▶상헌과 명길의 두 가지 다른 소신에 누구 하나 손들어줄 수 없다고 했지만 백성을 모두 살려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큼은 저도 약간 그 쪽이었던 것 같다. 가장 인간적으로, 개인적으로 매력을 느낀 건 그 대목이었다. 그 와중에 왕에게 '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더라도 상헌을 절대로 버리지 말아달라. 그는 궁 안에 유일한 충신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나와 완전히 의견을 달리하는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명길의 매력이라 생각했다.

감독님에게 부탁을 해서 대사를 조금 수정한 것은 있는데, 막바지 왕에게 소리지르면서 '임금이 무엇이옵니까'라 묻는 부분이다. 명길은 뭐든지 약간 은유적으로 돌려서 이야기한다. 최대한 예의에 벗어나지 않게, 꾹꾹 눌러서 말한다. 반면 상헌은 직구를 던지고 직선적으로 이야기한다. 명길이 그러니 제가 답답했다. 한 번쯤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쉽게 말하자고 제안했다. '백성을 살려야 진정한 왕이지, 고개 한 번 숙이는 게 힘드냐' 그 이야기를 한 번은 하자. 그걸 한 달 이상 생각하셨다. 감독님이 어떤 좋은 말이 있을까 생각했다면서 조금 고쳐진 대사를 주셨다.

-김윤석의 상헌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은 욕심은 안 났나?

▶저는 상헌을 연기하라고 했어도 연기했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읽고선 소신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둘 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방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것일 뿐인데. 딱 50대50. 누가 더 옳다 맞다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명길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한창 촬영하고 영화인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거기서 '나는 네가 상헌을 할 줄 알았다' 하는 분이 있더라. 또 영화사에선 '명길을 해줘서 고맙다'는 거다. 이러니까. '뭐야 상헌을 할 걸 그랬나. 명길이 약간 안 좋은 역할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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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의 이병헌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패배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은 상업영화로는 위험한 부분이기도 하다.

▶흥행 면에서는 위험할 수 있지만 저는 이쪽이 좋았다. 영화가 승리의 역사만을 말하고 우리가 잘났다고 하는 것보다. 실패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주제를 영화로 보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영화화한다고 한 사람들이 또한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추석 1000만 흥행을 맛본 적이 있다. 이번에도 기대하나.

▶관객이 많이 드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이 영화가 정말 좋은 영화였다'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좋다. 1000만이 드는 건 정말 좋은, 축하할 일이지만 정상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000만이 들고 쉽게 이야기와 이미지가 날아가버리는 것보다는 계속 회자되고 이야기되고 정서가 남아있는 것이 더 좋은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할리우드영화를 하고 '내부자들' 이후 '마스터' 같은 큰 작품을 하는가 하면 '싱글라이더' 같은 작은 영화에도 출연했다.

▶규모 흥행성 등은 영화 생각할 때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제작자거나 감독이라면 그런 데 구애받겠지만 저는 이야기에 매료되는지를 보는 배우다. 흥행영화다 큰 영화다라는 걸 선을 긋고 따지지는 않는다. 아트영화를 찍는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간절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선택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믿고 보는 배우로 평가받는다.

▶고맙다. 너무 고맙고 감사한 동시에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의식하면서 영화 선택의 폭이 좁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걸 의식한다며 '싱글라이더'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데서 늘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 수 있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거니까. 다만 내 팬들이 내 작품을 두고 '다 흥행에 성공했으니 다 봐도 돼'라고 하는 것보다는 '필모가 다양하니 골라보면 돼' 이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더욱 '열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예전 20년 전에는 왕가위 서극 장예모 하면 정말 세계적 감독이었다. 홍콩 배우들은 같은 나라니까 그 사람들이랑 일하고, 보면서 '야 쟤네들은 부럽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미국 영화를 하러 잠깐 나가다 보면 우리나라 영화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여기서 계속 부대끼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이 생기면 우리나라 영화가 정말 좋아졌구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 영화가 가진 힘이 눈에 보이고 느껴진다. 그 작품들을 다른 나라에서 좋아하고 챙겨보는 걸 보면 어쩌면 지금이 내가 예전 부러워하던 그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시나리오를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이 되게 많다. 내가 지금 그 시대를 살면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내 마음이 가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체력이 될 때 하자' 한다. 그런데 또 몸이 두 개가 아니니까. 어느 정도 쉬는 시간도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김은숙 작가와 손잡고 9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다. 준비는 잘 되어가나.

▶준비는 하나도 못했다. 미팅은 했는데 대본을 안 주셔서. 김은숙 작가도 작가님이지만 (소속사) 손석우 대표의 힘이 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손석우 대표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정말 대사를 맛깔나게 쓴다더라. 솔직히 드라마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했다. 누구나 전성기가 있을 텐데 정말 대사 이야기를 잘 쓴다고 이야기하는 작가가 쓴 글을 내 입을 통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을지, 그렇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해보는 것보다는.

출연진과는 다같이 만나 인사하고 식사한 적이 있다. 김태리와의 호흡은 아직 모른다. 그런데 이전에 한참 '내부자들'로 상을 받고 할 때 김태리씨도 '아가씨'로 상을 많이 받았다. 같이 몰려다닌 사람이 손예진 박정민 김태리씨였다. 넷이 영화 하나를 찍은 것 같다. 그래서 네 사람이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다. 박정민씨와도 '그것만이 내 세상'을 찍으며 서먹서먹하지 않게, 오래전부터 한 것처럼 촬영했다.

-배우로서의 고민이 있는지.

▶그 고민이 뭔지는 모르지만 계속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골똘히 생각하고 인상도 쓰는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그러기도 한다.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계속해 고민하고 고민하는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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