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우드 PS불펜 고려'속 류현진이 남긴 아쉬움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9.19 08:31 / 조회 :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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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AFPBBNews=뉴스1


류현진(LA 다저스)은 올해 포스트시즌에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설 수 있을까.

포스트시즌 개막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올해 한국인 선수로 유일하게 포스트시즌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류현진의 등판 가능성이 최고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난 18일(한국시간) 벌어진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이 질문에 대한 희망과 불안감을 동시에 보여줬다.

이날 4회까지 내셔널스 강타선을 3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낸 류현진의 투구내용은 인상적이었다. 4회까지 총 15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5개의 정타를 맞았지만 야시엘 푸이그와 저스틴 터너의 호수비 덕에 안타는 단타로 3개만을 내주고 무실점 투구를 했다. 라인업 전체에 언제라도 담장을 넘길 수 있는 거포들이 수두룩한 내셔널스의 강타선을 상대로 장타를 하나도 맞지 않고 큰 위기없이 4이닝을 실점없이 막아낸 것은 류현진이 충분히 포스트시즌 선발요원으로 고려될만한 옵션임을 보여줬다.

반면 5회말 2사 후 연속 볼넷을 내주는 바람에 승리투수 요건에 아웃 1개를 남겨놓고 강판된 것에는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상대 투수이자 9번타자인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를 잡아내지 못해 이닝을 연장시킨 것은 류현진 입장에서 뼈아픈 실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스트라스버그를 상대로 원볼 투스트라이크의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고도 확실한 결정구나 자신감이 없어 다음 두 개를 유인구로 던졌다가 풀카운트까지 몰렸고 이후 다음 3개의 공을 파울로 커트당한 뒤 9구째에 볼넷을 허용한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류현진의 패배였다.

사실 류현진이 이날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스트라스버그 직전 타자인 8번 매트 위터스 타석에서였다. 비록 올해 타율 2할대 초반의 8번 타자지만 빅리그 통산 126홈런이 말해주듯 한 방이 있는 거포인 위터스를 상대로 류현진은 11구까지 가는 승강이 끝에 헛스윙 삼진을 끌어내긴 했지만 무려 6개의 파울 커트를 허용하는 등 악전고투했다. 투구수가 늘어나면서 구위가 떨어지고 확실한 결정구가 없음을 드러냈다.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스트라스버그의 타석은 위터스와 똑같은 패턴으로 갔고 이번엔 삼진이 아닌 볼넷으로 결말이 나왔다. 상대 8, 9번인 이 두 타자에게 무려 20개의 공을 던지면서 이날 류현진의 등판은 5회를 넘길 수 없음이 확정됐다.

그때까지 투구수 92개를 기록한 류현진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상황이었지만 선발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는데 아웃카운트 1개만 남겨놓은 상황이었기에 다저스 벤치는 한 타자를 더 상대할 기회를 줬다. 하지만 이미 류현진의 ‘개스 탱크’는 텅 비어있었고 트레이 터너를 또 볼넷으로 내보낸 뒤 바로 교체됐다. 류현진은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오자 더 던질 수 있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이미 98개를 던진 그 시점에서 교체는 불가피했다. 사실 로버츠 감독은 마운드로 향하기 전에 이미 불펜에 신호를 보낸 뒤였다.

류현진이나 한국 팬 입장에선 한 타자만 잡으면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는 데 너무 칼같이 야속하게 바꾼 것 아니냐 하는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위터스-스트라스버그-터너로 이어진 과정에서 류현진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을 드러냈다. 그런 상황에서 한 타자를 더 상대하게 하는 것은 류현진에게 승리투수 요건이 아나라 오히려 패전투수 요건을 갖추게 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5회의 아쉬움에도 불구, 이날 류현진의 등판은 충분히 고무적인 것이었다. 워싱턴 타선은 지금 브라이스 하퍼만 빼면 부상선수가 다 돌아와 거의 100%의 전력을 자랑한다. 그런 막강타선을 상대로 류현진은 4회까지 상당히 안정된 흐름을 이어갔다. 대니얼 머피를 제외한 전원이 오른손 타자로 짜여진 라인업을 상대로 체인지업과 빠른 볼을 위주로 커터와 커브를 적절히 섞어 던지며 상대 타자가 리듬을 타지 못하게 하는 노련한 투구였다. 5회말에 고전은 체력과 집중력 저하로 인한 결정구의 위력이 떨어진 것에 기인된 것지만 최소한 4회까지는 플레이오프 선발로 손색없는 구위를 보여줬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도 경기 후 “그(류현진)는

항상 안타는 내주는 투수다. 하지만 고비에서 필요한 공을 던져 손실을 최소화시킬 줄 알다. 올해 그의 WHIP(이닝 당 안타 및 볼넷)과 삼진 대 볼넷 비율을 그의 커리어 전체와 비슷하다”면서 “내가 볼 때 그는 이기는 투수다. 그가 마운드에 오를 때 기분이 좋다. 지난 7~8번의 등판에서 그는 우리가 요구한 것을 해냈다”고 칭찬했다. 류현진은 마지막 12번의 선발등판에서 3승1패, 평균자책점 2.62을 기록했으며 이 기간 중 10경기에서 실점을 2점 이하로 막아냈다.

그렇다면 이날의 투구는 류현진에서 포스트시즌 선발 자리를 안겨줄 수 있을까. 클레이튼 커쇼와 다르빗슈가 PO 1, 2선발로 확정적인 가운데 류현진은 알렉스 우드, 리치 힐, 마에다 겐타와 남은 두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과연 다저스가 우드를 불펜으로 돌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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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우드. /AFPBBNews=뉴스1


올해 우드의 성적은 15승3패, 평균자책점 2.69로 눈부시다. 성적만 보면 그를 선발진에서 제외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더구나 우드는 시즌 후반기에 다소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난 16일 워싱턴과의 시리즈 개막전에선 6이닝을 3안타 무실점으로 막으며 삼진 8개를 뽑아내는 빼어난 피칭으로 슬럼프 탈출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저스가 우드를 불펜으로 돌리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은 우드가 불펜투수로도 이미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선수인데다 무엇보다 포스트시즌에서 불펜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발투수가 5, 6회 이상을 던지는 경우가 드문 현대야구에서 선발투수가 물러난 뒤 마무리가 올라오기까지 중간이닝을 맡아줄 확실한 불펜 필승조를 갖추는 것은 포스트시즌에서 성공의 최대 열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저스는 지금 메인 셋업맨이었던 페드로 바예스의 슬럼프로 인해 선발이 물러난 뒤 마무리 켄리 잰슨까지 가는 과정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우드가 팀의 3, 4선발보다는 불펜투수로 훨씬 더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포스트시즌에서 제4선발과 필승조 불펜요원 가운데 누가 더 중요한 역할을 맡을 지를 생각해보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플레이오프에서 4선발이란 매 시리즈마다 한 번 등판하는 것이 전부다. 시리즈가 7차전까지 가도 선발기회는 한 번 뿐이다. 자칫하면 한 경기도 던지지 못하고 포스트시즌이 끝날 수도 있는 보직이다.

반면 불펜 필승조는 팽팽한 흐름의 경기라면 항상 투입될 수 있는 핵심 보직이다. 마라톤인 정규시즌에서는 4선발이 불펜요원에 비해 훨씬 대접을 받을지 몰라도 단기시리즈인 플레이오프에서 확실한 불펜요원이 웬만한 선발투수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우드 같은 투수를 선발로 시리즈 내내 딱 한 번 밖에 못 던지게 하는 것과 매 경기마다 불펜에 믿음직한 요원으로 대기시키는 것을 생각하면 우드를 불펜으로 돌리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다저스가 이번 포스트시즌에 우드를 불펜으로 보낸다면 그것은 결코 그를 강등이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다고 제4선발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절대 아니다. 플레이오프에서 1승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4선발의 중요성 역시 과소평가될 수 없다. 만약 다저스에 류현진이나 마에다가 없었다면 다저스는 우드를 불펜으로 보내는 것을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4선발로 기용 가능한 류현진 같은 선수가 있기에 다저스가 팀 전력의 극대화 차원에서 우드에게 셋업맨을 맡기는 것이 고려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류현진이 확실하게 4선발을 맡아줄 수만 있다면 다저스 입장에선 우드가 불펜에 있는 것이 훨씬 든든한 것이 사실이다.

류현진은 지금 우드와 선발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포스트시즌 선발로 나설 자격이 있음을 입증해 가는 과정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18일 등판에선 무엇보다 고비에서 이닝을 마무리 짓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가능성도 충분히 보였다.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는 모르지만 지금 다저스가 류현진을 포스트시즌 4선발 후보로 고려중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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