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 백영규 "데뷔 40년, 난 언제까지나 현역가수"

[문완식의 생존신고] '슬픈 계절에 만나요' 가수 백영규 편

문완식 기자 / 입력 : 2017.09.22 16:00 / 조회 : 1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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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백영규는 지난 2007년부터 10년 넘게 경인방송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을 진행 중이다. /사진=김창현 기자


…그와 '슬픈 계절에 만나요'에 대해선 별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1980년이란 시간에 그를 박제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1980년의 백영규가 아닌 2017년 현재의 백영규를 얘기하고 싶어 했다…

'혹시 듣는다면 저를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문자 띄웁니다.'

가수 백영규(65)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했다.

백영규는 지난 1978년 혼성 듀오 '물레방아'로 데뷔했다. 이듬해 솔로로 나섰다. 1980년 솔로 2집 '슬픈 계절에 만나요'가 히트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해 MBC 10대 가수 시상식에서 남자 신인 가수상을 거머쥐었다. 인기는 대단했다. 1981년 영화 '슬픈 계절에 만나요'를 찍었다. 여주인공이 장미희였다.

올해로 데뷔 40년. 하지만 젊은 우린 그를 잘 모른다. 흔히들 '잊혀진 가수'라고 한다. 하지만 흘러가거나 잊혀진 게 결코 아니었다. 2017년 현재의 그를 몰랐을 뿐.



◆라디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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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규는 '가고 싶은 마을'의 촌장이다. /사진=김창현 기자


그가 혹시라도 들어달라고 한 건 라디오였다. 경인방송(FM 90. 7MHz)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이었다.

인터뷰 약속 시간은 오후 6시였다. 그런데 '혹시'가 '꼭'처럼 들렸다. 두 시간 일찍 인터뷰 장소인 경인방송에 도착했다. 정시 뉴스가 끝나고 오후 4시 5분 정각.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그널도 없었고, 오프닝곡도 없었다.

'DJ 백영규'는 퀴즈를 내듯 멘트를 이어갔다. 어떤 여성에 대한 설명이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니었다. 인천 도화동에 사는 59년생 여성이었다. 청취자였다. 백영규는 이 '59년생 여성'을 전화로 연결했다. 그리고 친구와 통화하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청취자도 마찬가지였다. 둘의 대화는 계속됐다. 그리고 신청곡인 산이슬의 '밤비야'가 이어졌다.

그는 '가고 싶은 마을'을 10년 넘게 진행 중이다. 줄여서 '백가마'라고 부른다. 청취자들은 그를 '촌장'이라고 부른다. 부스 밖에 앉았다. 두 시간 동안 가만히 들어봤다. 그는 인천을 손바닥 들여보듯 했다. DJ와 청취자는 한 가족 같았다. '촌장'이라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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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백영규 /사진= 김창현 기자


오후 6시가 넘어 그가 부스 밖으로 나왔다. 근황부터 물었다. 그는 "근황이라고 하니 이상하다"며 웃었다.

"1978년에 데뷔했는데, 음악은 지금까지 쉬지 않았어요. 음악은 계속하고 있죠. 쉬지 않고 '작품'(그는 곡을 작품이라 일컬었다)도 쓰고 있어요. 다른 가수들과 공연도 하고 있고요. '슬픈 계절에 만나요' 때문인지 가을에 많이 불러주세요.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지방 공연도 하고 있고요. 음악방송도 10년 넘게 하는 등 두루두루 행복하게 지내고 있죠."

10년 라디오 진행의 '힘'은 "청취자와 음악적 공감"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청취자와 음악으로 소통하고 있어요. 제 방송은 70, 80, 90년대 그리고 최근까지의 감성 있는 음악들이 나오거든요. '공감'이 되는 거죠. 가족적인 분위기는 청취자들이 만들어주세요. 인천에서 자라다 보니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 것도 청취자와 거리를 좁혀주는 것 같아요."

'촌장'이라는 정겨운 호칭은 그러나, 그를 긴장케 만든다고 했다.

"저를 촌장님으로 불러주니 촌장님처럼 행동해야 해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 야누스가 되어서는 청취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봐요. 겉과 속이 같게, 진정성 있게 다가서지 않으면 청취자들에게 다가설 수 없어요. 그런 점에서 라디오는 저를 채찍질하는 스승님처럼 느껴져요."

◆음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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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규가 기타를 잡았다. /사진=김창현 기자


그는 쉬지 않고 '신곡'을 발표 중이다. 지난해에는 '술 한잔'과 '엄마 그리워요'를 싱글로 냈다. "음악은 쉬지 않았어요. 명함 같은, 제 발자국 같은 것들이라 쉬지 않고 음악을 냈죠." 음악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목소리에는 다시 힘이 들어갔다.

'술 한잔'은 정년을 맞아 은퇴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 음악이 중장년분들에게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보편적이면서 대중적인, 약간 록 트로트 같은 곡을 발표했죠. 쉽게 대중적으로 접근하니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세요."

나 오늘 술한잔 해야해

30년 세월 회한의 술

출근길 퇴근길 꿈만 같아라

정든 직장 떠나간다네

그 옛날 첫사랑 이별보다 아파요

하늘은 푸르고 내 꿈은 살아 있는데

떠나야만 떠나야만 하는가

냉정한 세상이야

아직 청춘 같은데 일하고 싶은데

등 떠밀려 편히 쉬라 하는데

어디가 내 쉴 곳이냐


이 곡은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여보 회사 그만뒀다면서"

"미안해 그렇게 됐네"

"아니야, 그 동안 고생 많았어요. 술한잔 받아요"

"그래 고마워 당신 밖에 없네"


백영규는 "직장 그만뒀다는 말에 고생했다며 술 한잔 받으라는 아내가 있다면 참 고마울 것"이라고 했다. 그 분위기를 살리고 싶어 특별히 곡 도입부를 드라마틱하게 구성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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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규는 이날 인터뷰에서 '슬픈 계절에 만나요'와 '술한잔'을 불렀다. /사진=김창현 기자


'엄마 그리워요'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곡을 썼다. 양하영이 함께 불렀다.

"제가 물레방아라는 혼성 듀엣 출신이라 하모니 앙상블을 음악적으로 상당히 좋아해요. 여자 가수랑 듀엣을 부르는 것도 좋아하죠. 제 음반에는 여자 가수들이 꼭 참여해요. 한마음에서 활동한 양하영씨의 목소리를 좋아했는데, '엄마 그리워요'에서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게 됐죠."

엄마 그리워요 주름진 그 얼굴이

그 미소가 그리워요. 어머니

엄마 들녘저편 곱게 웃음짓는

엄마 꽃이 피었어요 예쁜 꽃

햇볕 따스한 날 서러운 눈물 흘려요

내 어머니는 영원히

살아계실 줄 알았지.

그리 빨리 가실 줄은 정말 몰랐어

반지 하나 엄마 손에

끼워주고 싶었는데

끼워주고 싶었는데.

햇볕 따스한 날 서러운 눈물 흘려요

눈물 빛 사이로 그리운 엄마 오시네


그는 노랫말을 짓고 곡 쓰는 걸 모두 직접 한다.

"작품을 잘 쓰려고 하지는 않아요. 그때 그때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잘 표현하려 하죠. 제가 쓴 곡들을 쭉 돌아보면 지난 40년간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게 돼요. 60대 중반에도 곡을 쓰냐고 묻는데 글쎄요, 작품 쓰는 데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건방진 얘기 같지만 요즘엔 곡이 더 잘 써져요. 작품 쓸 때는 모든 분들이 고독하고 고뇌를 하는데 전 그런 시간까지 즐기죠. 그래서 설레요. 앞으로 또 어떤 곡들을 쓸지."

'인천사람' 백영규 감성의 바탕은 양평이다. 그의 고향이다.

"양평에서 국민학교 5학년까지 살았으니까. 지금의 감성은 그때 다 형성된 것 같아요.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 유년시절의 기억이나 추억이 평생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어린 시절 양평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좋은 곳이었어요."

그와 '슬픈 계절에 만나요'에 대해선 별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1980년이란 시간에 그를 박제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1980년의 백영규가 아닌 2017년 현재의 백영규를 얘기하고 싶어 했다.

"나를 비롯해 그 시절 가수들이 그때에만 멈춰있는 게 아니거든요. 늘 신곡을 내고 있어요. 근데 대중들이 그걸 몰라요. 신곡을 알릴 수 없거든요. 라디오가 죽어있어요. 예전 노래만 틀어요. 신곡을 소개하고 그 곡을 인기곡으로 충분히 만들 수가 있는 게 라디오인데 다 같이 예전 히트곡들만 들려주고 있죠. 과거에 멈춘 거예요."

그는 이걸 바꿔보고 싶었다. DJ를 하면서 일부러 옛 가수들의 신곡을 틀어보기도 했다. 스스로 의무감처럼 했다고 했다. 그런데 곧 이를 멈추고 말았다. 그는 "바꾸고 싶었지만 나 혼자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서울 중심의 문화 유통 추세에서 인천의 지역 방송 라디오 DJ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백영규는 무대에서 MR(반주음악)을 틀지 않는다. 기타, 키보드, 바이올린 등 세션들과 함께 한다. 고집과도 같은 것이라 했다.

"죽은 노래를 들려주고 싶지 않은 거죠. 작품 만들었을 때의 그 감성 그대로를 전달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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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백영규 /사진= 김창현 기자


그는 2007년 내놓은 '감춰진 고독'에 대한 애착이 컸다. '가수 백영규'를 잘 설명하는 곡이라 했다. 13집 'As First' 타이틀곡이다.

남의 등에 밀려 산다는 것이 너무 싫어서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힘들어도 의미가 있다 위로하지만

가끔 바보 같단 생각도 들어

내가 만든 공간 속에 스스로 갇혀 있어

벗어 나오질 못할 땐

그 감춰진 고독 한꺼번에 밀려와

감당하기 어려워

내 인생 삐꺽거리는 걸까 고비 넘는 시험인가

내가 만든 울타리 흔들린대도

가고 싶은 길에서 조금 높고 험한 산

만난 셈 치면서 호흡 한번 크게 쉰다


도입부 1분 5초가 반주로 시작하는 4분 26초짜리 곡이다. 그는 "전주만 1분이라 방송에서는 틀기 힘든 곡"이라며 웃었다.

"내 음악의 지향점이 포크냐 록이냐고 물으면 전 '감춰진 고독' 얘기를 해요. '감춰진 고독'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장르를 떠나 늘 도전하고 싶어요. 새로운 음악을 하고 싶고요. 남의 등에 밀려 사는 건 아니잖아요. 고독하지만 오늘도 숨 한번 크게 쉬고 험한 산 넘는 거죠. 그게 인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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