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사랑', 애틋함도 없는 시인의 짝사랑

[리뷰] 영화 '시인의 사랑'

이경호 기자 / 입력 : 2017.09.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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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시인의 사랑' 포스터


아내가 있는 한 시인이 사랑에 빠졌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감정이 사랑으로 바뀌었는데, 그 대상이 소년이다. 영화 '시인의 사랑'(감독 김양희)의 이야기다.

시인 택기(양익준 분)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아내도, 친구들도 관심이 없는 시를 쓴다. 시인이라고 하지만 좀처럼 재능을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택기는 자신만의 시 세계에 빠져 산다.


월 30만원의 수입이 고작인 택기지만 걱정도 없다. 자신보다 생활력도 강하고, 수입이 많은 아내 강순(전혜진 분)이 있기 때문이다. 택기와 달리 털털한 성격의 강순은 종종 남편을 무시하는 발언을 쏟아내지만, 그를 향한 마음은 진짜다. 아이를 갖고 싶지만 정자 수가 부족한 남편 탓에 임신도 쉽지 않아 인공수정을 하는 과정에서도 어르고 달래면서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택기는 아내의 그늘 속에서 자기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데, 흡사 한량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 쓰기에 매진하며 밝은 내일을 꿈꾼다. 언젠가는 시로 승화한 자신의 세계가 인정 받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영감이었다.

완전한 한 편의 시에 정점을 찍을 한 마디, 한 단어를 찾기 위해 애쓰던 택기는 어느 날 소년 세윤을 만나게 된다. 세윤이 던진 말 한 마디에 빠져버린 택기는 그 날부터 세윤의 주변을 맴돈다. 세윤이 어떤 말로 자신에게 시적 영감을 줄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이 호기심, 관심은 곧 사랑으로 번지게 된다.


시인의 사랑은 아슬아슬했고, 위태롭다. 여자도 아닌, 그것도 10대 소년을 사랑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년을 향한 택기의 마음을 아내 강순이 알게 되고, 세 사람은 대립하게 된다. 그렇게 세 사람은 각자 가야 할 길을 두고 갈림길에 서게 되고 만다.

시적 영감을 쫓는 시인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이 이야기는 '사랑'이란 주제에 조심스럽게 다가선다. 특히 동성애 코드를 영감이라는 것으로 포장해 놓았다. 또 예술이라는 대사를 사용해, 시인이 예술적인 사랑을 하게 된 것이라고 그럴싸하게 표현해 냈다. 그러나 그런 시인의 마음이 뜻 그대로 관객에게 가 닿는지는 의문이다. 소년을 만나고 설레 하고, 그가 애정행각을 벌이는 모습에 흥분하는 모습은 예술적 사랑이 아닌 본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택기의 이런 동성에 대한 일방적인 감정에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쉬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도화선에 불은 붙었지만, 터지는 게 없다. 택기는 떠나자는 제안을 소년이 따르지 않자 울분을 토해내듯 하지만, 순간적인 감정일 뿐이다. 앞서 이어온 감정선과 연결한다면 그저 그런 집착일 뿐이었다. 애써 애틋하게 그려낸 듯한 사랑은 이제 막 꽃잎을 틔운 꽃망울을 가위로 잘라 버린 느낌이다. 잘려나간 감정은 편집 당한 듯, 사라졌다. 결국 한때 일상에 반항한 애틋함 없는 시인의 짝사랑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강순에게 공감하고, 끌리는 부분이 더 커졌다. '아내의 사랑'이었다고 하면 이 이야기가 더 쉽게 와 닿았을 법 했다.

시인의 사랑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반항의 순간이었다.

9월 14일 개봉. 러닝타임 110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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