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참 다양하게 지고있는 다저스의 추락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9.12 08:54 / 조회 :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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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로버츠 감독./AFPBBNews=뉴스1


올 여름 내내 대부분 전문가들은 올해 월드시리즈 매치업이 LA 다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대결로 성사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조차 포스트시즌 시리즈의 예측 불허적인 성격을 감안해 예상한 것이었고 시즌 전체로 보면 다저스와 휴스턴이 최고의 두 팀이라는 사실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2~3주 정도 남짓한 시간동안 그런 생각은 완전히 쑥 들어갔다. 다저스(92승51패)는 아직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전적을 갖고 있지만 최근엔 16경기에서 15패를 당하며 마치 ‘타이태닉호’처럼 가라앉고 있다. 휴스턴(86승57패)은 그 정도까지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서서히 물에 잠겨간 끝에 아메리칸리그 톱시드 위치까지 빼앗긴 상태다.

실제로 지난 8월1일 이후 성적으로 범위를 넓히면 다저스는 18승20패, 휴스턴은 16승21패로 오히려 휴스턴이 더 나쁘다. 그럼에도 다저스의 상황이 더 나빠 보이는 것은 다저스가 계속 잘 나가다가 갑자기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처럼 수직 추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휴스턴의 경우는 지난 주말 오클랜드 원정에서 4연패 싹쓸이를 당했지만 그 직전엔 7연승을 거두는 등 후반기 내내 오락가락해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다저스와 휴스턴이 모두 포스트시즌을 눈앞에 두고 자신감과 추진력을 잃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면서 이번 포스트시즌은 그 어느 해와도 비교될 수 없는 완전한 예측 불허의 양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양대 리그 모두 정규시즌의 절대강자가 갑자기 추락한 가운데 AL에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87승56패)가 파죽의 18연승으로 휴스턴을 추월, AL 톱시드로 올라섰고 NL에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83승60패)가 지난 주말까지 구단 기록인 13연승 행진을 질주하며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당장 플레이오프가 시작된다면 AL에서는 클리블랜드, NL의 경우는 애리조나와 지난 주말 가장 먼저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은 워싱턴 내셔널스(88승55패)를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렇게 예측이 간단할 수만은 없다. 올 시즌 내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지난 주말엔 밀워키 브루어스에 싹쓸이까지 당했지만 디펜딩 월드시리즈 챔피언 시카고 컵스(77승66패)도 일단 플레이오프에 들어가기만 하면 ‘챔피언 프리미엄’으로 인해 그 누구라도 쉽지 않은 팀이 될 것이다. AL에선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 등 전통의 PO 터줏대감들이 절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번 포스트시즌은 그야말로 매 시리즈마다 예측불허의 초박빙 충돌이 펼쳐질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다저스와 휴스턴이 흔들리고 있다고 하나 시즌 내내 최강이었던 두 팀이 이런 식으로 그냥 주저앉을 것이라고 속단할 수도 없다. 이들이 반격에 나서면서 상승세를 되찾는다면 이번 포스트시즌은 더욱 흥미진진해질 수밖에 없다. 월드시리즈 역사를 살펴보면 시즌 내내 최강으로 군림하다 막판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가 포스트시즌에 정신차리고 우승을 차지한 팀들이 적지 않다. 순전히 시즌 막판 추세만 가지고 우승판도를 점칠 수는 없다. 이들이 더 늦기 전에 ‘제 정신’을 차린다면 정말 예측 불허의 흥미 만점 가을야구를 기대해도 좋을 성 싶다.

그렇다면 다저스와 휴스턴은 과연 늦기 전에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사실 다저스와 휴스턴 가운데 어느 쪽의 상황이 더 심각한지조자 분명치 않지만 제 정신을 차릴 필요성이 더 절실한 쪽은 분명히 다저스다. 1900년 이후 117년 동안 다저스가 지난 16게임보다 더 나빴던 적은 1944년 16연패를 당했던 딱 한 번뿐이었다고 한다.

현재 다저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대체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지 집어내기조차 힘들다든 사실이다. 요즘 다저스의 경기를 보면 참 다양한 방법으로 지는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선발투수가 흔들려 초반에 승부가 갈린 경우도 있었고 선발은 잘 던졌는데 불펜이 무너진 경우도 있었다. 타선이 침묵을 지키는 경우는 비일비재이고 결정적인 순간 수비실책이 터져 나와 진 경우도 여럿 있었다. 공통점은 계속 지고 있다는 사실일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런 요소들이 절묘하게 결합돼 정확히 지는 길만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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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튼 커쇼. /AFPBBNews=뉴스1

그런데 더욱 팬들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이런 슬럼프에 대한 선수나 감독의 반응이다. 지난 주 클레이튼 커쇼가 고전한 끝에 조기 강판된 뒤 전혀 그답지 않게 덕아웃에서 글러브를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긴 했으나 그 외엔 팬들이 보기에 대부분 선수들은 아직도 그렇게 심각하게 상황을 인식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속으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겉으로 비춰지는 모습은 “지구 우승은 떼놓은 당상인데 뭘 그렇게 걱정하느냐”는 인상이 강하게 풍겨온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위기에 대한 선수들의 인식과 팬들의 생각사이에 온도차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저스호 선장인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자세도 종잡기가 쉽지 않다. 팀은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고 있는데 침착한 것인지, 냉정한 것인지 모르지만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은 물론 최근엔 “(계속된 패배에 대해) 이젠 고개를 저으며 웃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일(추락)을 해내고 있다”는 식의 냉소적인 반응까지 내놓고 있는 것이 팬들에겐 불안하게만 느껴진다. 선수들에게 한 번쯤을 격노하면서 팀을 독려하는 모습이 나올 법도 한 데 정작 나온 감독의 분노는 오히려 홈 팬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요즘 마운드에 오르기만 하면 결정적인 실점을 했던 불펜투수 페드로 바예스에 대해 다저스 팬들이 야유를 쏟아내자 로버츠 감독은 팬들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내는 등 격노하며 “그(바예스)는 지금부터 시즌 종료 전까지 우리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이닝을 맡아줄 것을 내가 보장한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감독이 자기 선수를 방어하는 것에 대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로버츠 감독이 경기 인터뷰에서 부진했던 자기 선수들에 대해 적나라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저스 3루수 저스틴 터니는 11일 경기에서 10연패를 당한 뒤 “아직도 우리가 리그 최고의 팀이라고 말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우리 성적과 관계없이 지금 우리는 리그 최악의 팀”이라고 일갈하면서 “3개월 전에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는 지금 별 의미가 없다. 리그의 그 누구도 우리를 동정해 주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약간’ 피를 흘리고 있고 우리 주변엔 상어 떼들이 물려와 있다. 그들은 피 냄새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만에 다저스 선수가 작심하고 내놓은 현실 직시 발언이지만 그마저도 “‘약간’ 피를 흘리고 있다”는 표현에서 뭔가 절박함이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 다저스는 ‘약간’ 피를 흘리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긴급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피가 철철 흐르는 위기 상황이고 앞으로 더 피를 흘렸다간 중환자실로 직행해야할 처지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다저스가 정말 겁나는 상대로 떠오른 애리조나를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리그 톱시드 자리를 워싱턴에 내주고 싶어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그런데 지금 상황에선 어쩌면 애리조나를 워싱턴에 떠넘기고 대신 컵스를 만나는 것이 다저스 입장에서 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다저스가 어떡해든 더 늦기 전에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쨌든 올해 플레이오프는 역대 최고급 예측불허 전장이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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