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와 치욕의 역사' 역대 이란전 명경기 '베스트11'

김우종 기자 / 입력 : 2017.08.23 09:42 / 조회 : 6864
  • 글자크기조절
image
2000년 아시안컵 8강전에서 골든골을 성공시키고 기뻐하는 이동국.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9회 연속 월드컵 진출 여부를 결정짓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역대전적 9승 7무 13패. 한국과 이란은 어느덧 아시아의 동서를 대표하는 최고의 라이벌이 됐다. 8월 31일 이란전을 앞두고 60여 년에 걸친 대결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11개의 경기를 추려보았다.

#1. 깨지지 않는 최다 골 차 승리 - 1958년 5월 28일. 도쿄 아시안게임. 한국 5 : 0 이란

195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안게임에서 한국과 이란은 수십 년 간 지속될 라이벌전의 첫 대결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기는 한국의 5 : 0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전반 6분 이수남의 골을 시작으로 문정식, 최정민 등이 잇따라 득점했다. 다섯 골 차는 한국과 이란의 역대 최다 골 차 경기이자, 이란 대표팀의 역대 모든 경기를 통틀어도 최다 골 차 패배다.

#2. 아시안컵 첫 쓴잔을 마시다 - 1972년 5월 19일. 아시안컵 결승. 한국 1 : 2 이란

한국과 이란이 메이저 대회 우승을 놓고 유일하게 격돌한 것이 1972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결승전. 대회 2연패를 노리는 이란에 맞서 한국은 김호, 이회택, 그리고 19살의 신예 차범근을 앞세웠다. 팽팽한 접전을 벌이다 후반 초반에 한골을 허용한 뒤 박이천이 동점골을 넣어 연장까지 갔다. 그러나 연장 후반에 실점하는 바람에 정상 문턱에서 쓴잔을 마셨다.

#3. 이회택의 ‘항명 사건’ - 1977년 7월 3일 월드컵 최종예선. 한국 0 : 0 이란

월드컵 진출을 놓고 이란과 최초로 맞붙은 경기는 1977년 부산에서 열린 아르헨티나 월드컵 최종예선. 이 경기는 한국대표팀이 처음 지방에서 치른 A매치였는데, 이회택의 항명 사건으로 더 유명하다. 이회택이 전반전에 부진하자 최정민 감독은 하프타임에 교체 아웃을 지시했다. 당대 최고 스타로서 자존심이 상한 이회택은 축구화를 라커룸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나가버렸다. 이회택은 즉시 대표팀에서 방출됐고, 이란전은 그의 마지막 A매치가 되고 말았다.

#4. 아자디, 이리역 폭발, 이주일 - 1977년 11월 11일. 월드컵 최종예선. 한국 2 : 2 이란

한국 선수들이 아자디 스타디움의 10만 관중을 난생처음 경험한 경기다. 한국은 이영무가 환상적인 중거리 선제골을 넣으며 활약했지만 2 : 2로 비기고 말았다.

경기가 열린 그 시간에 한국에서는 58명이 숨진 이리역(익산역)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열렬 축구팬 코미디언 이주일은 축구중계도 못보고 이리역 부근 극장에서 가수 하춘화의 ‘리사이틀’(공연) 사회를 보던 중에, 무너진 천정에 맞고 쓰러진 하춘화를 등에 업고 탈출했다고 한다.

#5. 치욕의 ‘두바이 참사’ - 1996년 12월 16일. 아시안컵 8강전. 한국 2 : 6 이란

이란 팬들이 지금도 한국축구를 조롱거리로 삼는 경기. 전반엔 신태용과 김도훈의 골로 앞서 나갔다. 하지만 오버페이스를 한 탓인지 후반에 전열이 붕괴되며 알리 다에이에게 4골을 내주면서 2 : 6으로 대패했다. 4골 차는 지금까지 한국이 아시아 팀에 당한 최다 골 차 패배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한국과 이란은 이후 아시안컵 8강전에서만 5회 연속 맞붙게 된다. 국제대회에서 같은 팀끼리 잇따라 다섯 번 대결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더구나 8강전에서만 계속 만난 것은 세계 축구사에 유례가 없다.

image
1996년 아시안컵 8강전 경기 당시 김주성의 모습. /사진=AFC 제공


#6. 이동국 ‘투혼의 골든골’ - 2000년 10월 23일. 아시안컵 8강전. 한국 2 : 1 이란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전에서 양 팀은 4년 만에 다시 만났다. 후반 26분 나온 카림 바게리의 골로 이란의 승리가 굳어지던 순간, 김상식이 종료 휘슬 직전 동점골을 터뜨렸다.

사기가 오른 한국은 연장전반 10분 하프라인에서부터 치고나온 홍명보가 상대수비를 흔든 뒤, 노정윤의 크로스를 받은 이동국이 골든골을 터뜨렸다. 무릎을 다쳐 붕대를 칭칭 감은채 뛰던 이동국이 활짝 웃었다. 4년전 과 정반대로 이란 선수들은 모두 주저앉아 고개를 떨궜다.

#7. 카리미에게 당하다 - 2004년 7월 31일. 아시안컵 8강전. 한국 3 : 4 이란

다시 아시안컵 8강전. 장소는 중국 지난이었다. 양 팀을 대표하는 스타 박지성과 알리 카리미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이란이 선취하면 한국이 쫓아가는 형국으로 90분간 쉴틈없는 난타전이 이어졌다. 카리미-설기현-카리미-이동국-박진섭 자책골-김남일의 골로 3 : 3까지 갔다. 그러나 77분 카리미의 결승골로 이번엔 이란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표팀 막내 김진규는 흥분해 이란 벤치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다 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8. 조원희의 ‘쓰리쿠션 골’ - 2005년 10월 12일. 친선경기. 한국 2 : 0 이란

본프레레 후임으로 영입된 아드보카트 한국대표팀 감독은 첫 평가전 상대로 이란을 골랐다. 서울월드컵경기장 6만 관중의 환호를 등에 업은 한국은 킥오프 59초만에 골을 터뜨렸다. 김동진의 크로스를 받은 조원희의 슛이 이란 수비 3명의 몸을 차례로 맞고 골네트를 갈랐던 것. 이날이 A매치 데뷔전이었던 조원희의 일명 ‘쓰리 쿠션’ 골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골을 넣었던 한국은 끝나기 직전 김진규가 ‘징계 앙갚음’의 한골을 추가하며 시원한 승리를 거두었다.

#9. 이란엔 피눈물을, 북한엔 행운을 - 2009년 6월 17일. 월드컵 최종예선. 한국 1 : 1 이란

이미 남아공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은 한국과, 4위에 처진 이란이 상암에서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반드시 이겨야 본선 진출 희망이 있던 이란은 51분 쇼자에이의 골로 승리를 눈앞에 뒀다. 그러나 종료 9분을 남겨놓고 박지성이 상대 마크를 뚫고 기어이 동점골을 뽑아냈다. 박지성은 주먹을 불끈 쥐고 관중석을 향해 “컴온!”을 외쳤다. 한국이 이란의 승리를 막아주자 힘을 얻은 북한은 사우디와 비기며 최초로 남북한 월드컵 동반진출을 이뤄냈다.

image
2009년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에서 '영원한 캡팆' 박지성이 득점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10. ‘황태자’ 윤빛가람의 결승골 - 2011년 1월 22일. 아시안컵 8강전. 한국 1 : 0 이란

카타르에서 열린 2011 아시안컵. 8강전 단짝 한국과 이란은 다섯 번째 연속 대결을 펼쳤다. 몇 차례 아슬아슬한 기회를 놓친 양 팀은 90분을 무득점으로 보낸 뒤 연장전을 맞았다. ‘조광래호의 황태자’ 20살의 윤빛가람이 연장전 전반이 끝날 무렵 멋진 왼발슛으로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혈투의 여파로 일본과의 준결승에서는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아시안컵 8강전에서 상대를 이겨도 다음 4강전에서는 꼭 패한다는 양 팀의 징크스가 어김없이 재현됐다.

image
2011년 아시안컵 8강전에서 결승골을 넣고 달려가는 윤빛가람.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11. 케이로스의 주먹감자 - 2013년 6월 18일. 월드컵 최종예선. 한국 0 : 1 이란

4년 전에 이어 또 최종예선 마지막 관문에서 만났다. 한국은 브라질 월드컵 진출을 90% 확정한 상태였고, 이란은 지면 3위로 추락하는 상황이었다. 경기 전 양 팀 감독은 격렬한 도발을 주고받았다. 60분에 터진 구차네자드의 결승골이 울산 경기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경기 후 이란 감독 케이로스는 한국 벤치를 향해 주먹감자를 날리는 추태를 보였다. 한편, 같은 시간 우즈벡은 카타르를 5 : 1로 대파했는데, 두골만 더 넣었더라면 한국이 3위로 떨어질 뻔 했다.

기자 프로필
김우종 | woodybell@mtstarnews.com

안녕하세요. 스타뉴스 김우종 기자입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