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멜로로 웃어도 무서워하시면 어쩌죠?"(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8.23 06:23 / 조회 : 3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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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종석 /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길고 훤칠한 몸매, 모델 같은 옷발에 백옥같은 피부, 빨간 입술…. 배우 이종석(28)은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는 수식어가 꼭 들어맞는 배우다. 오죽하면 지난해 판타지 드라마 'W(더블유)'에선 문자 그대로 만화를 찢고 튀어나온 남자주인공을 연기했다. 아무 이물감이 없었다.

이종석에게 그 고운 외모는 자신만의 무기인 동시에 발목을 잡는 족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는 솔직했다. "제가 인상 쓰고 담배 피우며 으스대면 보기 따라서는 우스운 분도 있지 않겠나"라며 자신이 못 가진 '남자다움'에 대한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박훈정 감독의 범죄영화 '브이아이피'(VIP)는 이종석이 찾은 나름의 답으로 보인다. 이종석은 미국과 한국 정보기관의 기획귀순으로 한국으로 넘어온 북한 최고위층 자제이면서 극악무도한 살인 행각을 이어가는 사이코패스인 김광일 역을 맡았다. 이종석의 첫 느와르 영화이자 첫 악역이다.

꽃미남 청년의 말간 미소에 오만함과 뻔뻔함, 잔혹성과 광기를 담은 김광일은 그의 순정만화적 비주얼을 무기로 사용한 반전의 악당이다.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 나선 이종석은 "내가 지금껏 하지 않았던 것이라 불안했다"면서도 "80점은 되는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그리고 연기로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을 거듭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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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종석 /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어떻게 봤나.

▶저는 되게 재밌게 봤다. 되게 무서웠다. 연기를 해 놓고도 애초에 못 본 것도 있었고 보는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제 연기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이 됐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영어 대사 빼고는. 영어 대사 할 때만 조금 '피식' 했다. 옆에 매니저가 웃기에 '이상했냐?'라고 물어보니 '영어는 좀 이상한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 '너는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웃음)

-첫 악역 연기다. 어떻게 달랐나.

▶악역이 잘 맞는 옷은 아닌 것 같다. 선한 역할을 해오다 보니까 악역을 하면서도 그런 척을 하고 있더라. 더 나쁘게 나와야 하는데 본능적으로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싫어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 그런데 싫어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착각하고 '이게 아닌데' 할 때마다 감독님이 잡아주셨다. 악역이라는 것이 되게 신기했다.

미리 감정을 잡는다거나 하는 게 다른 작품과 대비해 거의 없었다.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 그때부터였다. 사실 뭔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나는 사이코패스 연기를 하면 이것 저것 할 수 있는 게, 소위 '연기질' 연기적으로 보여줄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보면 김광일은 모든 신에서 웃고 있다. 감독님도 입꼬리까지 디렉션을 해주시니 그저 따라가는 수밖에. 미소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멜로 드라마를 많이 해 왔는데 극악한 사이코패스 살인자가 됐다. 우려나 걱정은 없었나.

▶일단 작품을 결정하고 촬영할 때까지는 전혀 없었다. 연기적으로 다른 걸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그런데 막상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했다. 내가 해왔던 것과 완전히 다른 걸 해버리니까 그런 것이 불안했다. 보고 나니까 속이 좀 시원하다. 느와르라는 장르를 항상 해보고 싶었다. 제가 가진 이미지를 갖고 할 수 있는 영화여서 좋았다. 크게 변화하려 하지 않았다. 외적인 것을 되려 무기로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팬들이 보면 어떨까 둘다 걱정이 됐다. 팬들이 좋아할까 생각도 들고, 나이 어린 팬들은 충격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저는 배우고 다른 것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고, 모험을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좀 있으면 바로 드라마가 방영되는데 이거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다.' 영화를 봤던 사람이 드라마를 볼 때, 나는 멜로로 미소를 지었는데 무섭게 느끼면 안되지 않나. 그게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웃음)

-스스로 점수를 준다면?

▶80점은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8년 정도 연기를 하면서 내 작품을 보고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드물었다. 그래도 이번 작품에 잘 녹아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연기였으면 좋겠다. 나름 만족한다. 개인적으로 연기적으로는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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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종석 /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김광일은 어떤 인간이라 생각했나.

▶보통 연기할 때 캐릭터의 역사를 만든다. 하지만 이번엔 공감을 할 수도 없었고, 공감을 해서도 안 되는 캐릭터라 힘들었다. 감독님은 김광일이 귀족적으로 자라온 아이고, 모든 사람이 자기 발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극중 김광일은 피터 스토메어가 맡은 CIA 요원과만 길게 대화를 한다. 나와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초반 첫 살인 장면은 노출 수위도 높거니와 정서적인 충격도 상당하다.

▶저는 그 신을 찍고 진짜 힘들었다. 첫 촬영이었는데 현장에 피가 많았고 다들 나체로 있고, 그 비주얼이 현장에 들어가는 순간 충격이었다. 찍을 때는 긴장을 했었는데 찍은 다음에 처음 느끼는 감정을 느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안 좋았다. 불쾌하기도 했다. 힘들었다. 덕분에 그 다음 장면은 비교적 수월하게 찍었던 것 같다. 김광일 캐릭터가 웃는 장면이 많은데 그 장면이 없었다면 캐릭터가 유약해 보일 수 있다. 나를 볼 때마다 욕을 하고 때리게 만들려면 필요한 장면이었을 것 같다.

-변화에 대한 욕심이 느껴진다.

▶항상 있었다. 매 순간 있었다. 나이 서른이 넘어가면 내가 좀 더 남자다워져있지 않을까. 20대 초반엔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서른이 가까워지는데 그것이 아닌 것이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브이아이피' 시나리오를 봤다. 이건 내가 크게 인상을 쓰고 남자다우려고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좋았다. 연기하는 내내 진짜 새로운 느낌이었다.

당시 국내에서 한 1년의 공백이 있었고 중국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빨리 한국에서 뭔가 해야겠다 생각했고 이것저것 제안이 있었지만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었다. '브이아이피'의 김광일은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보고 싶은 역할일 것이다. 그래서 감독님을 찾아뵈었다.

-장동건 김명민 박희순 등 선배들과 함께했는데.

▶선배님들 계시면 슥 가서 늘 붙어있었다. 늘 '안 이상했어요?' '괜찮았어요?' 여쭤보기도 하고. 후배의 질문을 그냥 떠넘기실 수도 있는데 실제로 제가 쓸 수 있는 답을 많이 주셨다. 세 분 모두 감사했다. '관상' 때, 선배님들 톤에 비해 제가 훅 떨어지는 게 겁이 났다. 제가 등장하면 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누가 되고 피해가 되는 게 아닐까, 그 때 죄책감이 아직도 남아있다. 대사 톤은 물론이거니와 상대 배우로서 감정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 반대가 되면 안되니까.

-박훈정 감독은 그 제목의 브이아이피가 김광일이고 이종석의 원톱 영화라고 하더라. '이종석의 영화'인 셈이다.

▶'이종석의 영화'라는 부담감은 없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제 눈에는 장동건 선배님, 김명민 선배님이 맡은 역할이 더 커 보였다. 제목이 '브이아이피'지만 김광일은 극의 장치 같은 느낌이었다. '조연이라도 괜찮으니까 같이 하시죠'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흥행도 잘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이종석이 연기도 좀 하는 애구나'하고 관객들이 느껴주셨으면 한다. 그게 목표였다.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어'하고 보여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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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종석 /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이른바 '남자 영화' 혹은 '남자다움'에 대한 갈망도 진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작품에서도 남자 느낌이 물씬 나고 함께 하신 선배들도 남자 느낌이 물씬 난다. 비주얼만 해도 (김)우빈이도 제 친구지만 부러운 게 많았다. 이번에 장동건 선배님을 보면서도 '우와, 남자라면 저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남자다움에 대한 갈망과 욕망이 있다. 남자다움이라는 게 외적으로만 완성되는 건 아니겠지만 제가 못 가진 것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셈이다. 제가 인상 쓰고 담배 피우며 으스대면 보기 따라서는 우스운 분도 있지 않겠나.

-드라마용 배우라는 선입견을 깨고 싶을 것도 같다.

▶선입견을 깨고 싶다기보다, 그게 사실이니까. 이렇게 이야기해도 될까. 사실 드라마를 더 재미있어 한다. 1회부터 20회까지 인물의 감정이 죽 이어진다. 연기할 때는 그런 드라마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우로서 영화도 하고 싶고, 이제 시작할 때가 됐다는 생각도 든다. 3년 만에 영화를 하는데, 예전에 비해서는 제 나이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든 것도 같다.

-그런 점에서 입대 문제로 박훈정 감독 '마녀' 출연이 불발된 게 아쉽기도 하겠다.

▶아쉽기도 하다. 여자 원톱물인데 재미있게 시나리오를 읽었고 현장이 좋고 츤데레 스타일인 박훈정 감독님이 좋았다. 당시 실제 입대를 고려하고 있었기에 감독님에게 피해가 될까봐 말씀을 드리고 하차했다. 지금은 입대가 연기됐다. 이제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기는 또한 애매한 상황 아니겠나. 군대는 실질적으로 생각을 못 하고 있다가 영장을 받고 나서야 조금씩 생각하게 됐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다. 군보다도 나이 서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서른이 되면 되게 남자다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른이 가까워오며 느낀 것은 서른이 되어도 많이 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였다. 잘 모르겠다. 그저 연기를 잘 하면 되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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