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택시운전사' 제작사 대표가 마약검사 받은 이유는?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8.19 09:00 / 조회 : 24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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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가 올해 첫 천만 관객을 동원합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가 천만명을 동원하다니,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택시운전사'를 기획할 때도, 세상에 알려질 때도, 굉장히 조심스러웠으니깐요.

사실 '택시운전사'를 '택시운전사'라는 제목으로 처음 알린 건 기자였습니다. 2016년 1월7일이었습니다. 당시 '택시운전사'는 영화계에 '택시 드라이버'라는 제목으로 알음알음 알려졌습니다. 가제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그 유명한 '택시 드라이버'가 있죠. 시나리오를 어찌어찌 구해 읽었습니다. 만드는 사람의 용기가 느껴졌습니다.

제작자인 박은경 더램프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장훈 감독이 '고지전' 이후 다시 메가폰을 잡는 데다 송강호랑 호흡을 맞추고, 거기에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를 만든다니 어찌 관심이 가지 않았겠습니까.

쓰겠다는 기자와 주저하는 박 대표 사이에서 여러 말들이 오갔습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합의했습니다. 하나는 제목을 '택시운전사'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박 대표는 '택시 드라이버'가 너무 마틴 스콜세지 영화를 연상시키니, 다른 제목을 놓고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택시 운전사'와 '택시 운전수'가 최종 후보였습니다. 기자와 박 대표는 제목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다가 '택시 운전사'로 쓰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과거에는 '택시 운전수'라는 말을 주로 쓰기는 했지만 운전수는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에 '택시 운전사'라고 하자고 입을 맞췄습니다. 그게 영화 취지와도 닿아 있기도 하구요.

두 번째는 영화 설명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빼고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박 대표의 요구였습니다. 엄혹한 시절이었습니다. 송강호가 '변호인'에 이어 '택시 운전사'를 한다는 것만으로 어떤 낙인이 찍히는 게 아닐지, 조심스러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기사에는 정확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절절한 마음이 느껴져 동의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기사에는 "'택시운전사'는 1980년대 우연히 광주에 간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를 다룬다"라고만 썼습니다. 이 간단한 문장을 놓고서도 여러 번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80년 5월'이라는 표현조차 힘들어해서 '80년대'라고 절충을 했습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시절에 '택시운전사'가 탄생했습니다.

영화 촬영을 마칠 즈음 촛불 시위가 시작되고, 편집을 마무리할 즈음 탄핵이 이뤄지고, 개봉을 할 때는 다른 대통령이 있을 것이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결기가 없다면 시작도 못했을 일이었습니다.

이런 영화를 만들면 흔히 외압은 없었는지를 묻곤 합니다. 감독도 그렇고, 제작자에게도, 비슷한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외압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엄혹한 시절을 보냈다는 뜻입니다.

박은경 대표는 딱히 그런 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마약 검사는 받았다고 했습니다. 영화 제작사 대표가 마약 검사라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을 안다면 그리 놀랍거나 새로운 건 아닙니다. 격발이 되는 모형총을 영화에서 사용할 경우엔 제작사 대표가 마약 검사와 정신 감정 등을 받아야 합니다. 총포,도검, 화약류 소지허가를 받기 위해서 제출해야 하는 서류에 필요합니다.

한국은 총기류 관리가 엄격합니다. 그래서 격발이 되는 모형총을 영화에서 사용하려면, 홍콩에 있는 회사에서 수입해야 합니다. 수입이라기 보다는 임대입니다. 렌트비를 주고 사용한 다음 다시 돌려줘야 합니다. 한국에선 격발이 되는 모형총 제작이 불법입니다.

수입하기 전에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고 서울경찰청에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안전협회 검사도 받아야 하구요. 영화사를 대리해 모형총을 수입하는 회사가 따로 있습니다. 공포탄은 부산화약저장소에 입고를 합니다.

그렇게 들어온 모형총은 제작사가 위치한 관할 경찰서 무기고에서 보관합니다. 더램프 사무실이 강남에 있어서 '택시운전사'에 쓰인 총들은 처음에는 강남경찰서에서 보관했습니다. 그러다가 촬영이 있는 곳의 관할 경찰서로 다시 그 총들은 옮겨집니다. 매일 아침 촬영을 할 때마다 총기휴대증이 있는 사람이 관할 경찰서에서 총을 받아옵니다. 총기휴대증이 있는 프리랜서가 따로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해당 총을 사용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현장에 상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촬영이 끝나면 다시 관할 경찰서에 반납을 해야 합니다. 모든 촬영이 끝나면 다시 홍콩 회사로 돌려줘야 하구요.

박 대표는 "이 일 외에는 정말 별일이 없었어요"라고 했습니다. '변호인'도 영화가 개봉하고 난 뒤에야 별일이 있었습니다. '택시운전사'도 만들 때보단 개봉하고 난 뒤에야 별일이 생겼을지 모를 일입니다.

박 대표에게 '택시운전사'를 왜 만들었냐고 물었습니다. '택시운전사'는 박 대표가 먼저 기획하고 연출을 장훈 감독이 한 경우입니다. 박 대표는 쇼박스에서 퇴사한 뒤 '동창생', '쓰리섬머나잇', '해어화'를 만들었습니다. '택시운전사'와 사뭇 결이 다른 영화들입니다.

박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쇼박스에서 근무할 때 동티모르에서 찍고 있던 '맨발의 꿈' 촬영장에 간 적이 있어요. 어느 날 누가 흉기를 들고 촬영장에 난입한 거에요. 나름 용기도 있고, 의식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허겁지겁 민가로 도망을 갔어요. 거기서 숨어있는데 나처럼 그곳으로 도망쳐 온 다른 스태프와 눈이 마주쳤어요. 정말 부끄럽고 창피했어요. '택시운전사' 모티프가 된 힌츠페터 기자의 기사를 볼 때 그 생각이 나더라구요. 도망쳤다가 돌아온 이야기. 그래서 만들어보자고 마음 먹었죠."

도망쳤다가 돌아온 이야기. '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건, 도망 쳤다가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을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치공학적 계산을 했다거나, 이것저것 따지고 했다면, 그런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화계에선 천만영화는 하늘에서 내린다고들 합니다. 왜 '택시운전사'에 하늘이 천만을 허락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도 올 여름 극장가를 갈무리하는 데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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