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아이피' 불쾌하거나 감탄하거나 박훈정표 문제작

[리뷰] 브이아이피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8.17 16:50 / 조회 : 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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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고위 인사(VIP)가 남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이 VIP가 끔찍한 연쇄살인범이다. VIP 기획 입국을 추진했던 국정원은 어떻게든 이 사실을 숨기려 한다. 경찰은 무조건 범인을 잡으려 한다. 그리고 그를 잡으려 북에서 한 사내가 넘어왔다. 영화 '브이아이피'는 이 석줄 짜리 하이 콘셉트로 두 시간이 넘도록 긴장감과 불쾌함과 막막함으로 끌고 간다.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 CIA 요청으로 급하게 홍콩에 날아온다. 더러운 건 한국 국정원에 떠넘기려는 CIA 요청에 박재혁은 이를 간다. 그래도 건넨 총을 잡는다. 그가 총을 잡는 건 한 남자와 만나기 위해서다.

북한 최고위 인사의 아들 김광일(이종석). 그는 똘마니들과 사람 죽이는 게 일이다. 여자를 납치해 고문하고 죽이는 걸 즐긴다. 죽기 전 내는 소리에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다. 그를 잡으려던 북한 보위부 요원 리대범(박희순)은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을 넘본 죄로 숙청된다.

그랬던 김광일은 어느새 한국에서 잘 살고 있다. 한국에서도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똑같이 벌이고 있다. 연쇄살인범을 어떻게든 잡으라는 여론의 압박으로 수사팀장이 자살까지 하고 만다. 자살한 수사팀장 뒤를 이어 강압수사로 물을 먹었던 채이도(김명민)가 범인을 쫓는다. 채이도는 수사 결과 김광일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체포하려 한다.

박재혁은 그런 경찰의 움직임을 막으려 한다. 기획 입국시킨 북한 VIP가 연쇄살인범이란 사실이 알려지면 국정원 위상이 추락할뿐더러 프로젝트를 기획한 자신과 직속상사가 물을 먹을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 이 실랑이는 각 기관끼리 알력 다툼으로 비화 된다. 김광일은 이런 실랑이를 비웃듯 미소만 띤다.

그리고 북에서 온 리대범이 은밀하게 움직인다. 이제 CIA까지 다시 김광일을 탐한다. 과연 김광일은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을까.

박훈정 감독은 일찍부터 조직 간의 갈등과 암투를, 캐릭터로 함축해 충돌시키는 걸 즐겼다. 시나리오를 쓴 '부당거래'에선 경찰과 검찰이, 연출한 '신세계'에선 경찰과 조폭이 부딪혔다. 호랑이를 쫓았던 '대호'에서도 일본 군인과 조선인 사냥꾼을 대비시켰다. 그는 이런 조직 간의 충돌에서 오는 긴장감을 즐긴다. 조직 싸움 애호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브이아이피'는 그런 박훈정 감독이 그리는 조직 간 싸움의 정점을 찍을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미국 CIA, 한국 국정원, 한국 경찰. 경찰은 국정원과 힘겨루기에서 밀리고, 국정원은 다시 CIA에 밀린다. 이 조직 간 힘의 역학 관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연쇄살인범을 잡는 게 목적이 아니라, 연쇄살인범을 둘러싼 암투가 영화의 목적이다. 박훈정 감독은 조직의 역학 관계를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을 은유한다. 이 역학 관계야말로 '브이아이피'의 요체다. 범인을 쫓는 스릴러가 아니라 범인을 둘러싼 조직들의 암투가 핵심이다.

캐릭터는 전형적이다. 열혈형사, 눈치 보는 국정원 요원, 비열한 CIA요원, 비장한 북한 보위부 요원 등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들은 전형적이다. 각 조직을 대표하는 얼굴들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인물들은 다시 VIP인 연쇄살인범과 관계에서 긴장감을 드러낸다.

아무리 노력해도 VIP는 건드릴 수 없다. 아무리 때려잡고 싶어도 북한 고위층 자제인 VIP는 처벌할 수 없다. 각 기관, 각 나라의 이해가 다른 탓이다. 마치 핵과 미사일로 난장을 치고 있어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지금 북한과 한반도 정세를 은유한 듯하다.

문제는 이 VIP이자 연쇄살인범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악마를 보았다' 시나리오를 쓴 박훈정 감독답게 지독하게 그렸다. 여인을 고문하고 죽이는 장면을 마치 스너프 필름처럼 적나라하게 담았다. 공분을 자아내기보다는 혐오가 앞선다. 등장하는 모든 여성 캐릭터들은, 심지어 국정원 요원까지, 여성은 피해자로서만 기능한다. 언제까지 한국 스릴러영화에서 여자는 범죄의 대상이자 공분을 일으키는 원인으로만 쓰여야 할지, 심히 안타깝다.

박훈정 감독은 이 지독한 묘사를, 프롤로그에 배치했다. 그리하여 에필로그까지 한 덩어리로 불쾌함을 유지한다. 이 불쾌함으로 각 단락의 긴장감을 붙든다. 그리하여 처단할 수 없는 답답함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끌고 간다. 이 불쾌함은 '브이아이피'에 대한 반응을 수박 쪼개듯 둘로 나뉠 것 같다.

불쾌함을 받아들이는 관객이라면 '브이아이피'는 '신세계'를 넘어서는 박훈정 감독의 최고작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 불쾌함이 몸서리쳐진다면 '브이아이피'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브이아이피'가 박훈정 감독의 영화들 중 최전선에 있으며, 집대성인 건 분명하다. 조직 간의 암투, 남자들의 고뇌, 스크린 가득 담아내는 얼굴 클로즈업 등등 박훈정 감독의 인장이 곳곳에 가득하다. 늘 기시감을 주는 이야기를 풀어냈던 박훈정 감독은 '브이아이피'에선 익숙한 이야기에 시간을 재배치하는 플롯으로 새로움을 더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평면적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장동건과 김명민, 박희순 등은 전형적인 캐릭터를 익숙하게 끌고 간다. 오히려 조연들이 도드라진다. 음험한 너구리 같은 CIA 요원 역으로 출연한 피터 스토메어, 뺀질뺀질한 검사 역의 조우진, 사내 정치만 신경 쓰는 국정원 요원 역의 박성웅이 차라리 인상 깊다.

연쇄살인범 역을 맡은 이종석은 그의 출연작 중 가장 색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맑고 흰 얼굴에 붉은 입술. 그 입술에서 자아내는 비웃음은 공포를 불러오지는 못해도 분노를 자아내기에는 충분하다.

'브이아이피'는 불쾌하다. 여성 피해자를 그렇게까지 묘사해야 했나 싶을 정도다. 이 불쾌함은 '브이아이피'에 양날의 검이다. 이 불쾌함은 처단할 수 없는 VIP에 암담함을 가져온다. 이뤄지지 않는 정의에 대한 무력함을 느끼게 만든다. 사적 복수의 쾌감 따위는 없다. 그리하여 영화에 거리를 두게 한다. 이 거리감이 '브이아이피'의 미덕이다. 그렇지만 이 불쾌함은 자칫 128분짜리 스너프 필름을 보는 듯한 고통으로 영화마저 멀리할 수 있을 듯하다.

이래저래 문제작이다.

8월24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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