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의미와 재미가 충돌하는 류승완표 엑소더스 ①

[리뷰] 군함도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7.20 10:42 / 조회 : 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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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는 엑소더스다. 탈출영화다. 탈출의 스릴과 쾌감을 외피에 두른 영화다. 그래서 아쉽다.


19일 서울 용산CGV에서 '군함도'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무려 22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올 여름 한국영화 최대 기대작인 만큼, 2000여명이 넘는 관계자들이 몰렸다. 한류스타 송중기, 소지섭을 보려는 팬들도 장사진을 이뤘다.

'군함도'는 일본제국주의가 무너지기 직전인 1945년 하시마섬 탄광에 강제 노역을 하고 있는 조선인들의 탈출을 그린 영화다. 1341만명을 동원한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에 황정민 송중기 소지섭 이정현 등 화려한 출연진, 군함도라는 아픈 역사를 담은 만큼 일찍부터 엄청난 관심이 쏠렸다.

패전의 소식이 커질수록 일제의 발악이 거세지던 1945년.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강옥(황정민)은 여전히 한량이다. 이 여자, 저 여자, 열심히 건드린다. 하나뿐인 딸 소희(김수안)는 그런 아빠가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사랑한다. 같이 춤과 노래로 매일을 보낸다. 강옥은 강제징집을 피하려 경시청 경사에게 와이로(뇌물의 일본표현)를 먹인다. 자신과 악단 단원들은 가급적 안전한 후방으로 배치되려 애쓴다.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주먹 칠성(소지섭), 일제 치하에서 종군위안부로 강제로 온갖 고초를 겪었던 말년(이정현), 각각 다른 사연을 지닌 사람들은 의도치 않게 지옥섬 군함도에 끌려온다. 돈을 준다는 건 말 뿐, 이것저것 다 뜯기고 지하 1000미터 막장에서 죽을 고생을 한다. 그들을 괴롭히는 건, 일본인뿐 아니다. 조선인이면서 일제의 앞잡이가 된 노무반장의 횡포가 말도 못한다.


강옥은 어떻게든 딸 소희만이라도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시키려 일본인들의 온갖 비위를 맞춘다. 첫 만남부터 어그러졌던 칠성과 말년은 서로에게 어깨를 기댄다. 각각의 사연의 틈바구니에 광복군 소속 OSS요원 무영(송중기)이 접근한다. 그는 군함도에서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독립운동 주요인사 구출을 지시받고 잠입했다.

일본은 패색이 짙어지자 군함도의 만행 증거를 없애려 조선인들을 모두 갱도에 몰아놓고 폭파시키려 한다. 이를 눈치챈 무영은, 그곳의 모든 조선인들을 데리고 탈출을 시도하려 한다. 마침내 목숨을 건 탈출이 시작된다.

'군함도'는 탈출이라는 줄기에 각각의 사연을 담은 사람들이 가지를 치는 플롯이다. 강옥 부녀가 그 가지 중 가장 두텁다. 류승완 감독은 이 지옥도에 경성제대 출신의 인텔리부터 딴따라, 위안부, 조직폭력배, 독립운동가, 어린아이 등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다양한 군상들을 넣었다. 악역을 일본인 소장과 일본 군인 등 일본인뿐 아니라 조선인 변절자 등으로 구색을 맞췄다. 그리하여 '군함도'를 일제 강점기 조선의 축소판으로 만들려고 했던 듯 하다.

이런 구성은 군함도라는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 의미를 더한다. 다만 민중에 힘을 쏟다 보니 탈출의 동력을 이끄는 인물이 없다. 이 동력을 외부에서 잠입한 무영에게 맡긴다. 악역이 산재돼 있다 보니 오히려 뚜렷한 악이 사라졌다. 그 탓에 탈출과 진압의 긴장이 떨어진다. 류승완 감독은 변절자들을 악역으로 묘사한 데 대해 "착한 조선인, 나쁜 일본인이란 이분법으로 영화를 만들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분명 선의다.

하지만 이런 선의에도 불구하고, 아니 이런 선의 탓인지, '군함도'는 영화 안에서 인물들 간의 긴장으로 탈출과 진압의 밀도를 높인다기보다는 영화 밖의 아직도 진행 중인 군함도라는 역사에서 긴장감을 가져온다. 그리하여 제작진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도구로 삼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군함도'는 반일 영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 일본제국주의 영화다. 군함도라는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부터, 반 일본제국주의라는 함의는 피할 수 없다.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를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반일 영화라는 규정에서 벗어나려 여러 장치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하얀 짬뽕이라고 짬뽕이 아닌 건 아니다. 반 일본제국주의 영화가 아니라면 굳이 욱일승천기를 잘라 탈출의 도구로 삼을 이유가 없다. 악이 강할수록, 탈출의 쾌감이 더해지는 법인데, 너무 조심스러웠다.

류승완은 공간의 활용에 아주 능한 감독이다. 이 장기는 '군함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지하 막장의 활용법은 드라마와 맞물려 기대 이상이다. 세트의 활용도 뛰어나다. 군함도라는 공간을 분할하고, 각각의 공간에서 드라마를 쌓고, 포갠다. 광장의 함의, 막장의 함의, 술집의 함의, 창고의 함의, 막사의 함의, 군함도 소장 간사의 함의가 다 다르다. 이 함의들은 각각의 드라마로 감동과 웃음, 용기와 희망, 절망과 좌절을 안긴다. 이렇게 쌓인 드라마는 탈출이란 하이라이트에서 폭발한다.

문제는 이 폭발을, 문제 해결을, 송중기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장치의 신. 문제의 해결을 신적인 존재에게 맡긴다는 뜻)에게 맡긴 데 있다. 송중기는 '군함도'에서 잘생김과 멋스럼을 뿌린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위기의 순간에, 가장 적절하게 등장한다. '태양의 후예'와 큰 차이 없는 송중기의 연기력도 한몫한다. 명백히 반민특위의 은유인 장면에서, 찬과 반이 부딪혀 감정을 고조시켜야 하는 데도, 송중기는 그저 잘생김과 멋스러움으로 대리만족의 쾌감만 준다. 세 가지 동력으로 진행되는 탈출 시퀀스에서 유독 송중기만 '캡틴조선' 마냥 활약하는 건, 그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탓이다.

자칫 파편화될 수 있었던 인물들에 중심을 잡은 건 황정민과 김수안이다. 황정민은 전형적인 역할이지만 연기 9단의 노련함으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황정민이 기모노를 입은 딸을 봤을 때의 표정은, 이 전형적인 캐릭터를 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오롯이 배우의 힘이다. 김수안은 '군함도'의 활력소다. 이 뛰어난 연기천재는 황정민이 깔아준 판에서 이야기를 자유롭게 이완하고 조인다. 최고다.

이정현은 피해자로, 또는 남성을 위해 희생될 수 있었던 캐릭터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만들었다. 류승완 감독이 가장 공을 들인 캐릭터 같다. 소지섭은 묵직하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잘려나갔을 그의 사연이 아쉽다.

'군함도'에는 류승완 감독의 분노가 담겼다. 한국과 일본의, 청산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그의 분노가 짙게 깔렸다. 촛불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천벌과 미래에 대한 응시로 끝나는 마지막은 류승완 감독이 '군함도'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미덕이 분명하다. 선한 의도들이 켜켜이 쌓였다. 그 덕에 의미가 강하다. 그 탓에 재미는 줄었다. 그래서 아쉽다.

7월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오프닝 크레딧에 줄줄이 실리기 마련이던 투자자 명단이 없다. '군함도'의 미덕이다. 시작할 때 CJ 로고가 여느 영화와 다르다. '군함도'와 결을 맞췄다.

추신2. 기자시사회를 막 재개장한 용산CGV에서 했다. 화장실 대란이 벌어졌다. 관객의 동선을 위한 배려는 적고, 팝콘 파는 매장은 넘친다. 메인 상영관인 4관은 스피커 탓인지 사운드가 뭉개져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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