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웅-장유정 "평창서 '별에서 온 그대들'과 온기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D-200 특별대담]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7.07.22 06:22 / 조회 : 7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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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반다비와 수호랑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있는 양정웅 총연출(왼쪽)과 장유정 연출.


“지금 저희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시간입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 연출을 각각 맡은 양정웅(49) 총연출과 장유정(41) 연출의 이구동성이다. 개막 D-200일을 즈음하여 이 두 사람이 그렇게 무서워하는 시간을 근 1시간 반이나 뺏어 인터뷰를 한 것이 지난 11일. (다행히 뒷일정엔 차질이 없었고 두사람 모두 유쾌한 시간이었다고 평해줬다. 다만 점심을 허겁지겁 때웠으리라 추정된다.)

두사람은 IOC와의 비밀유지계약 때문에 개폐회식에 대해선 콘셉트정도만 얘기해줄 수 있다고 먼저 운을 뗐다. 개폐회식이 궁금은 한데 자세한 설명은 들을 수 없고.. 그걸 만드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조금 윤곽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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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 양정웅 총연출은 경계없는 삶을 지향한다고 한다. 스스로 집시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고도 덧붙인다. 그가 만든 극단 이름이 ‘여행자’인 것도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그는 25살 무렵 불현듯 스페인으로 떠나 현지 극단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3년간을 유럽을 떠돌며 연극단원 생활을 했다. ‘외국어 잘하세요?’라 묻자 ‘아뇨 그저 서바이벌 영어정도였죠’한다. ‘본인이야 무대책으로 지원했다쳐도 극단은 뭘보고 받아줬을까?’란 질문엔 “자유롭고 오픈된 사고를 높이 산 듯합니다. 말은 안통하지만 제 몸의 언어에 공감해준게 아닌가 싶어요”라고 나름의 해석을 전해준다.

그에게 ‘아이덴티티’란 평생의 화두를 던져준 이는 1997년 세계연극제를 국내서 처음 개최했을 때 내한한 거장 에우제니오 바르바 (Eugenio Barba)라고 한다. 당시 바르바는 강연에서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17세에 스칸디나비아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수많은 나라, 수많은 극단에서 거절당하면서 아웃사이더로 머물수밖에 없었던 경험,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웃사이더들을 모아 ‘오딘 떼아트렛’(Odin Teatret)을 설립했고 덴마크 홀스테브로에 정착해 40여년이 흐른 현재는 세계 최고반열의 극단으로 만들어낸 경험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 강연을 통해 청년 연극인 양정웅은 ‘연극이란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임을 깨닫고 자신만의 연극을 위해 그해 극단 ‘여행자’를 만들어 20년째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중이라고 밝힌다. 그의 아버지는 소설가 양문길씨고 어머니 역시 소설가 김청조씨다. 가죽점퍼를 전당포에 맡기고 연극을 관람할 정도였다는 그의 부친은 그가 미술을 전공하려할 때 마뜩찮아하다가 연극을 한다하니 쌍수들고 환영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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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 연출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출과를 졸업도 하기전에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사이’같은 자작 대본을 갖고있던 이다. 대본쓰기부터 연극연출, 뮤지컬 연출, 영화연출까지 자신의 영역을 쉴틈없이 확장해왔다. 그리고 그의 이런 쉼없는 도전의 배경엔 양정웅 총연출이 있었다고 한다. 한때 그녀도 장르를 넘나드는 도전하는 삶을 살까, 한 장르를 천착할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도전이 좋은데 도전하는 삶은 콤플렉스를 주저리주저리 달고사는 삶이 될 수밖에 없어 주저됐다고 고백한다. “그때 양연출님이 그러셨어요. 유정이는 캔디잖아. 잘할거야. 잘 할 수 있어. 참 따뜻했던 그 격려 덕에 도전하는 삶을 살게된 것 같아요”한다.

그 역시도 여행을 좋아한다. 22살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1년 연수를 다녀온 직후 다시 인도여행을 계획하자 그의 아버지가 만류했다. “넌 예뻐서 안돼” “제 어디가 예쁜데요?” “그 탐스럽고 긴 머리” 바로 다음날 빡빡 삭발한 그는 인도로 떠났고 그 여행길은 에스토니아-모로코-슬로바키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러시아-몽골로 해서 두달반이나 이어졌다. 그 여정에서 그녀가 쓴돈은 220만원이었단다.

-두사람 인연은?

양총연출이 공연장 혜화동 1번지에서 ‘서울의 착한여자’를 공연하던 2003년 12월. 대학 졸업후 남들이 기피하던 조연출로 공부를 더하고 싶었던 장유정 연출이 한예종 최준호 교수의 소개로 혜화동1번지를 찾았다. 그렇게 만나 의기투합한 두사람은 2004년 3월 세익스피어의 ‘멕베드’를 양정웅 총연출이 각색한 ‘환(幻’에서 연출과 조연출로 작업한다.

(장) “그때 대학 갓졸업한 신출내기 조연출한테 군중씬을 직접 연출해보라고 던져주시는 거예요. 감격이었죠. 제 재능을 높이 사주시고 기한번 안죽이시고 잘한다 잘한다 격려해주며 동등한 작업자로 대우해주셨어요. 요즘도 제가 조연출들한테 야단칠 때 양연출님 생각이 절로 나요. 그때 내가 잘해서가 아녔을텐데.. 하면서 반성하게 되죠”

(양) “될성부른나무의 떡잎였어요. 뜨거운 열정이 있었고 A형이라선지 놓치는 것 없이 꼼꼼했어요. 배우나 다른 스태프들과 융화도 잘되고.. 아티스트로서의 욕망과 힘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두 사람은 그 후 약 2년간 여러 작업을 같이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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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웅 총연출이 맡은 개회식의 주제는 ‘피스 인 모션(Peace in Motion)’이다.


-두사람과 올림픽의 인연

(양)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회식을 보았을 때 감동받았어요. 31살의 프랑스 안무가 필립 드쿠플레가 연출했는데 연극, 무용, 마임이 어우러지고 스토리가 흐르고.. 그 아름다움이란 것이 가슴을 울렸죠. 알베르빌이 올림픽 개폐회식에 예술성이 가미된 첫발로 기억합니다. 그때 이후 ‘저런 연출 나도 한번 해봤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살아왔는데 25년 걸려 그 꿈을 이룰 기회를 맞았죠.

(장) 초등학교 6학년때 1988년 서울올림픽을 보며 ‘아 국가가 나에게 자긍심을 주는구나. 내가 이 나라 국민이란게 자랑스럽다’고 느꼈어요. 매스게임을 보면서 한 픽셀, 픽셀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풍차라던가 하는, 사람들의 일사불란함이 만들어내는 우아함에 반했죠. 운동장의 사람들이 다음씬으로 넘어갈 때면 패러글라이딩을 등장시켜 관중들의 시선을 어수선한 운동장으로부터 하늘로 옮기는 발상이 너무 재밌었고요. 당시 막연히 ‘저런걸 해보고싶다’ 맘먹었는데 결국 그 인상이 저를 연출의 길로 이끈게 아닌가 합니다.

-두사람이 만드는 올림픽은?

(양) 개회식 주제는 ‘피스 인 모션(Peace in Motion)’ 입니다. 전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우리 현실에 걸맞는 주제죠. 우리 안엔, 그리고 인류 안엔 언제나 평화를 갈망하는 인자가 있어요. 88올림픽도 냉전종식, 동서화합의 장으로서 ‘평화올림픽’으로 평가받았고요. 아울러 굳이 한국적인 것을 고집할 생각은 없어요. 이제는 글로벌하고 코스모폴리탄적으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시대니까. 또한 이번 개폐회식에서 유념할 점은 무대가 직경 72m의 원형무대라는 점입니다. 기존 스타디움 규모와는 차별화된 공간에서 ‘공연’의 색채가 훨씬 부각되리라 봅니다.

(장) 폐회식 주제는 ‘넥스트 웨이브(Next Wave)’예요. 그렇다고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구현하지는 않아요. 지향점은 제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낼 세부종목의 표현이 아닌 그 정신의 이야기죠. 기존의 틀을 깨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려고 하는 인간의 도전정신이 넥스트 웨이브고 그런 도전정신을 아날로그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올림픽이죠.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뛰어넘는 숭고하고 감동적인, 인간의 존재가치를 보여주는 장 말입니다. 그에 천착했더니 융합-조화와 연결-소통이란 두 부분의 키워드를 발굴했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어요. 아울러 폐회식은 축제여야 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장이기 때문에 좀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재미와 신명을 위트있게 결합해 보려 합니다.

-현재까지의 진행상황과 앞으로의 일정은?

(양) 캐스팅의 큰 부분들은 끝났고 세부 캐스팅을 논의하고 있어요. 부분 연습은 9월 말이나 10월 초에 들어가는 것도 있는데 개회식 연습이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11월이죠. 11월 28일 일산 킨텍스에서 전체연습을 시작합니다. 폐회식은 더 늦어져 내년 1월로 예정돼있어요. 개회식은 1600~1700명, 폐회식 인원은 500~600명 정도입니다. 시간이 무섭다는 주된 이유는 예산 때문이에요. 개폐회식 합쳐 528억 예산 중 실제 공연을 만드는데 100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요즘 뮤지컬 한편 만드는데도 그 정도는 듭니다. 역대 최소 비용일 겁니다. 리우 같은 경우는 인건비도 낮고 도시 자체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어 해결될 부분이 많았어요. 평창의 경우는 사람들을 운송하고 재우고 하는 비용이 만만찮게 발생합니다. 군인들이나 자원봉사자들로 해결 안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죠. 예산 부족으로 인해 아이디어를 제대로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장) 영화만 해도 낮촬영-밤촬영, 여름촬영-겨울촬영, 세트촬영-야외촬영, 서울촬영-지방촬영의 비용 차가 엄청 커요. 단적으로 의상만해도 벌 수가 다르죠. 우리는 세트없는, 지방의, 야외, 겨울, 밤 촬영을 해야 돼요. 비용이 만만치않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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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연출이 만드는 폐회식 주제는 ‘넥스트 웨이브(Next Wave)’다.


-어쨌거나 전 세계 몇억명이 보는 쇼를 만드는데

(양) 앞서 말한대로 25년 해묵은 꿈을 이루는 작업입니다. 부담감도 크지만 솔직히 기쁨이 더 크죠. 어려움을 뚫고 나가려는 의욕과 도전의식에 고양돼있고 크리에이티브한 기획을 위해 골몰하는 순간이 너무 기쁘고 재밌습니다.

(정) 너무 영광스럽죠. 저희는 매일매일 오늘 최선을 다해 산다고 살다보니 이게 어마어마한 일이란 부분을 잊고 지내요. 그러다 문득 ‘아 이게 올림픽이지’ 생각하면 살 떨리죠. 다행인 게 일하다 보면 그걸 잊는다는 거예요. 매 순간 그걸 의식해선 살 수가 없죠.

-스태프와의 호흡은?

(양) 연출은 어찌보면 오케스트라의 컨덕터와 흡사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확 끌고나가는 이들도 있는데 저는 한사람의 완벽한 결정보다는 많은 이들의 합의에 방점을 두는 편이죠. 그럴 경우 시작은 분명 더딥니다. 하지만 과정에 과정이 쌓이다 보면 의사결정이 빨라지죠. 20세기가 히어로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모든 이들의 시대가 아닐까요?

(장) 우리 스태프 회의엔 ‘당신의 다른 생각은?’ 이란 코너가 있어요. 스태프 한 명의 다른 의견이 관중 1000명의 의견, 100만 시청자의 의견일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 반대하는 부분은 안합니다. 더욱이 이건 자유로운 예술활동이 아녜요. IOC, OBS, 조직위에 나랏일이다 보니 나라 입장까지 예술이란 그릇 속에 녹여내야 합니다. 촘촘한 그물을 짜내기 위해 전 스태프가 지리할 수도 있는 작업을 감당하고 있는 중이죠.

2018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은 각각의 주제를 갖고 진행되지만 공통된 화두를 갖고 있다. 바로 ‘융합’이다. 융합을 전면에 내세운 폐회식은 물론, 개회식의 인사이드 컨셉트도 ‘조화와 융합’이다. 장유정 연출은 이 융합에 대해 ‘별에서 온 그대를 만나는 일’이라 표현했다. 매일 부대끼는 사람사이에도 행성간처럼 거리를 느낄 때가 있다. 제각각 팔짱 끼고 ‘그러시든가’하는 태도를 취할 때 물리적으론 지근거리라도 결코 만날 수 없는 관계일 뿐이다. 양정웅-장유정 두사람의 작업을 통해 지구촌의 무수한 ‘별에서 온 그대들’이 융합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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