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특집] '택시운전사' 송강호가 안내하는 그날의 광주 ①

[리뷰] 택시운전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7.1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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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는 실화다. 1980년 5월의 광주. 그곳의 이야기를, 그곳의 사람들을, 세상에 알린 사람들의 실화를 극화한 영화다. 실화이기에 뜨겁고, 실화이기에 조심스럽다. 실화이기에 뻔하고, 실화이기에 울린다.

10일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택시운전사'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참석한 기자 좌석수만 1100여개. 올여름 기대작 중 한 편이기에 구름 같이 취재진과 영화 관계자들이 몰렸다.


알려졌다시피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세계로 알린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광주까지 태워다주고 데리고 온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인이 된 힌츠페터 기자가 마지막까지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던 택시운전사. 역사의 숨은 인물을 조명했다.

만섭은 오늘도 열심히 택시를 몬다. 군부독재 물러가라는 학생들 데모 때문에 공치기가 일쑤다. 투덜투덜 되면서도 그래도 열심히 택시를 몬다. 엄마 없이 홀로 커가는 세상 하나밖에 없는 딸, 그리고 4달째 밀려있는 사글세를 내야 하기 때문.

그런 그에게 단숨에 사글세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물정 모르는 외국 손님을 광주까지 데리고 갔다가 돌아오면 거금 10만원을 받기로 한 것.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면서 그냥 목돈 만질 수 있다는 데 신이 났다.


독일 공영방송 ARD의 일본 특파원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피터). 그는 광주에서 큰일이 벌어졌는데 확인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을 찾는다. 친분이 있는 한국기자 도움으로 광주까지 잠입 취재를 하려 한다. 그는 택시를 타고 광주까지 가면 될 것이라고 마음먹는다.

동상이몽인 두 사람. 광주로 가는 길목은 이미 군인들이 막고 있었다. 총구를 들이대며 돌아가라 말한다. 잔뜩 겁이 나 서울로 돌아가려는 만섭에게 피터는 광주에 가야 택시비를 준다고 한다. 만섭은 골이 날 때로 났지만 어찌어찌 기지를 발휘해 광주까지 들어는 간다. 그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폭도가 날뛰고 있다는 보도와 달리 평범한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르며 군사정권 물러가라를 외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군인들이 총으로 쏘고, 곤봉으로 내리치고, 최루탄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빨리 이곳을 뜨자는 만섭, 이곳의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피터. 두 사람에게 대학가요제에 나가려 대학생이 됐다는 청년 재식이 통역으로 가세한다. 광주에서 택시 모는 태술도 가세한다. 기사를 써도 신문에 실리지 못하는 분함을 품고 있는 광주 기자도 피터를 돕는다.

홀로 집에 있을 딸 걱정이 앞서는 만섭은 광주의 하루가 미칠 것 같이 겁난다. 그의 속도 모르는 피터는 만섭이 돈만 밝힌다고 여긴다. 광주 사람들은 피터에게 이곳의 진상을 세상에 알려달라고 말한다. 그런 그들을 쫓는 사람들이 점점 더 조여오기 시작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대개 정해진 길을 걷는다. 일상과 위기, 그리고 각성과 성장에 이은 결말. '택시운전사'도 이런 길을 걷는다. 그럼에도 실화 영화가 울림이 큰 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인 이야기라 그렇다.

'택시운전사'는 두 외부인의 시선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바라본다. 하루벌이가 소중한 평범한 소시민. 대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나 한다는 중년 남성. 대한민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데 배가 불러서 그런다고 생각하는 서울 아저씨. 송강호가 맡았다. 사건이 있는 곳에 기자가 있다고 믿는 독일 사람. 지루한 일본 특파원 생활보다 더 극적인 일이 벌어지는 곳을 찾는 기자. 토마스 크레취만이 맡았다.

'택시운전사'는 이 두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날의 광주를 조명한다. 평범한 소시민에게 그날의 광주를 목격하게 해, 관객을 그날의 광주로 같이 안내한다. 진실을 알리려는 기자를 통해, 그날의 광주를 세상에 알리려 한 사람의 노력에 동참하게 만든다. 이 두 사람으로 그날의 광주를 지금으로 잇는다.

'택시운전사'는 버디물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여행을 통해 동지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장훈 감독은 이 여정을 유턴으로 그렸다. 직선으로 가다가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 이 유턴은 도망갔던 만섭의 유턴과 겹쳐지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돌아보게 만든다.

'택시운전사'는 선과 악이 분명하다. 선량한 사람들과 그들을 탄압하는 사람들. 이 이분법적 구조는, 전형적인 캐릭터는, '택시운전사'의 한계다.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현대사를 배경으로 했기에 조심스런 결과다. 이 조심스런 접근을 빛나게 한 건, 배우들이다. 뻔한 구조와 뻔한 인물에 감정을 이입시키는 건 오롯이 배우들의 공이다.

송강호는 관객을 단숨에 그 현장으로 끌고 들어간다. '변호인'에서 잘 나가던 변호사가 하루아침에 인권변호사로 변한 논리의 도약을 송강호였기에 믿게 만들었듯, '택시운전사'에서 도망치려 했던 평범한 사람의 갑작스런 변신을 송강호이기에 믿게 만든다. 토마스 크레취만은 송강호의 역이 더 중심이기에 상대적으로 활약 폭이 적다. 여느 영화라면 그의 역할이 주인공이었겠지만, 이 영화가 '택시운전사'인 탓이다. 둘의 화학반응도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그는 이방인이었을 그곳에서 의인으로 무게추 역할을 잘 소화했다. 광주 택시기사단의 중심인 태술 역의 유해진, 광주 대학생 재식 역의 류준열.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선택에 동의하도록 했다.

'택시운전사'는 그날의 광주를, 시민들에게 총을 쏜 그날의 광주를, 적나라하게 담는다. 역사의 아픔을 도구로 삼았다. 슬로우와 클로즈업, 긴 분량으로 묘사했다. 긴 묘사와 성긴 호흡으로 다소 튄다. 그럼에도 이 시퀀스가 의미가 있는 건, 아직도 그날의 광주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이다. 영화의 부족함을, 실화가 덮는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역사가 덮는다.

'택시운전사'는 실화다. 허구가 더해진 실화다. 이 실화에서 허구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말이 안될 것 같은 느닷없는 전개가 실화고, 논리가 이어지는 부분이 허구다. 그날의 광주에선 실제 택시운전사들이 쉬지 않고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을 병원으로 날랐다. 그런 택시에 주유소에선 공짜로 기름을 줬다. '택시운전사'에서 가장 초라하고 가장 용기 있는 택시들의 카체이싱은 그래서 허구지만 그래서 진심으로 와닿는다. 특별출연한 엄태구의 선택도 실화다. 때로는 거짓말 같은 진실들이 역사를 움직인다. '택시운전사'는 그런 사실들을 전한다.

8월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여느 영화와 달리 에필로그가 남다르다. 진심이 전하는 감동을 준다. 영화 속에서 박수 받는 기자를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슬프고 아프다.

추신2. 송강호가 운전하는 오늘의 택시는 광화문으로 간다. 그렇게 과거와 지금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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