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AB가 내놓은 '60분 축구'안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사진은 이명주의 플레이 모습. |
오래 전 일이다. 축구 보러 온 팬을 야구장으로 모시려고 갖은 수를 써봤지만 실패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두 종목 팬의 소비성향이 확실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게임의 승패가 갈리는 걸 즐긴다는 것 외에는 비슷한 점을 찾기가 어렵다.
한쪽은 공을 따라 22명이 뒤섞여 한꺼번에 움직이는 게임에서 묘미를 느끼는 팬이고 다른 쪽은 수비 팀 9명만 공을 따라 움직이며 펼치는 플레이에서 보는 재미를 붙여온 팬이다. 심지어 양 종목 팬은 서로 다른 종목을 재미없는 경기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 규칙이 만든 선수들의 플레이가 팬의 취향을 가른 가장 큰 요소인 건 분명하지만 두 종목에는 경기시간이라는 또 다른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팬이 한 경기를 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비즈니스 측면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축구는 90분 안에 승패가 정해지지만 야구는 27명이 죽어야 끝나 약 3시간 가까이 걸린다. 두 종목의 짧거나 긴 경기시간은 비즈니스측면에서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짧고 자극적인 볼거리를 추구하는 요즘 소비추세에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지루한 상품’인 야구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90분이라는 축구의 정해진 시간은 상대적으로 강점이 된다. 그런데 경기침체기가 오면 같은 돈으로 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야구가 잘 팔리는 경향이 있다. 전반적으로 여가오락비가 줄면 소비자들이 찾는 대표적인 불황상품 중의 하나가 바로 야구다.
27명이 죽어야 끝나는 야구는 여가오락비가 주는 경기불황때 소비자들의 수요가 늘어나는 종목이다. LG 이천웅의 주루플레이 모습. |
축구의 규칙을 다루는 IFAB가 이달 중순 축구경기시간을 90분에서 60분으로 줄이는 방안을 내놓은 것을 보고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라는 게 첫 느낌이었다. 요즘 소비추세를 따르는 전략적 발상일 뿐만 아니라 축구의 흠인 시간 끌기나 할리우드 액션을 줄이는 절묘한 한 수로 보인다. 통상 ‘아파트(APT)’로 불리는 ‘공이 살아있는 시간(Actual Playing Time)’도 60분에 채 못 미치는 실정이니 아예 공이 죽은 지루한 30분을 없애자는 취지이다. 아직 축구 보는 묘미를 잘 모르는 초보 팬들에게는 역동적인 60분이 지루한 90분보다는 오히려 어필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FIFA나 각 대륙의 연맹이 60분짜리 상품을 수용할 때 이 신제품이 출시되겠지만 제품의 본질에 변화를 주는 파격적인 아이디어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줄어든 경기시간이 축구비즈니스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잘 조정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비즈니스측면에서 이 신제품의 출시는 몇 가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관중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60분짜리 신제품이 초보 팬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티켓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스포츠 판의 큰 손인 방송사가 1/3이나 시간이 줄어든 프로그램을 과연 예전가격으로 살 것인가에 있다. 물론 두고 봐야겠지만 시청률만 확보된다면 킬러 콘텐츠를 놓고 방송사가 큰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경기장 매점사업도 영향을 받겠지만 원래 축구는 매점을 들락날락하면서 보는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본다. 설사 수입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이를 보충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축구선수의 노동시간이 1/3이나 줄어든다면 대가(연봉)도 줄일 수 있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