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박열' 고증은 韓관객 아닌 日관객 위한 것"(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6.19 15:36 / 조회 :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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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이준익 감독이 '박열'로 돌아왔다. '동주'로 박제됐던 윤동주 시인을 되살리더니, '박열'로 잊혀진 아나키스트 박열을 조명한다. '박열'은 일본 황태자 암살 기획 모의로 사형이 선고됐던 인물. 그는 오히려 법정에서 일제가 관동 대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 사건을 조장했다며 당당하게 맞섰다. 일제가 말 안 듣는 조선인을 일컬어 만든 말인 불령선인을, 아예 불령사라는 단체이름으로 만들 만큼 패기가 있던 문제적 인물이다.

그런 박열이 잊혀졌던 건, 한국전쟁 때 납북된 탓이 크다. 이준익 감독은 22살 청년으로 일본 제국주의 심장에서 제 목소리를 낸 박열을 되살려 요즘 젊은 세대에게 할 말이 많았던 듯 싶다.

-'동주' 차기작으로 원래 다른 영화를 준비했었는데. 왜 '박열'로 방향을 틀었나.

▶원래 하기로 했던 영화에 투자금이 입금되는 날, 없던 걸로 하기로 했다. 머리 속에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않았는데 그 영화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없더라. '박열'은 2000년 '아나키스트'를 제작했을 때 그 삶을 알게 됐다. 언젠가 꼭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다. 시놉시스만 있었는데 작가를 섭외해 따로 시나리오를 부탁했다. 그러다가 잊고 있었는데 '동주' 작업 중에 초고가 왔다. 맥락이 있었다. 할 만 하더라.

-어떤 맥락이 있었나.

▶아나키스트를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감시킨다는 게 난해한 작업이다. '동주'로 어느 정도 그 시대상을 관객에 전할 수 있었기에 '박열'도 가능했다. '동주'는 윤동주 뿐 아니라 송몽규가 없었다면 만들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박열'도 박열 뿐 아니라 그의 연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가 없었다면 만들 수 없었다. 그런 맥락이 있었다. 다행히 '동주'가 욕을 안 먹게 돼서 '박열' 작업이 가능했다.

-'사도'에 이어 '동주', 그리고 '박열'까지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일단 '동주'가 5억원, '박열'을 27억원 정도 저예산으로 만든 건 망하지 않으려고 계획한 것이다. 최소한의 제작비로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으로 했다. 다만 꼭 이 시대 젊은이들만 타켓으로 한 건 아니다. 일본제국주의라는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일본을 일본제국주의 프레임으로만 보는 걸 깨고 싶었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우리는 일본과 일본제국주의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선량한 조선인, 나쁜 일본인, 이런 틀을 깨고 싶었다. 그래서 박열이었다. 박열은 독립운동가 중 권력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권력을 잡기 위해 권력에 저항한 사람이 아니다. 박열은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했지만 한편으론 일본 노동자들과 연대했다. 그게 아나키스트다.

-과거 열혈 독립운동가로 아나키스트를 그렸던 '아나키스트'와 달리 '박열'에선 아나키스트를 권력에 저항하는, 하지만 뚜렷한 목적 없는 낭만적인 기질로 그렸는데.

▶김산의 삶을 담은 '아리랑'을 보면 당시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오늘을 낭만적으로 사는, 내일이 없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않는 지금의 다양한 젊은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특목고 못 가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그런 요즘 젊은들이 이봉창이고 박열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박열'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했다고 적었는데.

▶이 영화의 고증은 한국 관객이 아닌 일본 관객을 위한 것이다. 고증에 흠집 잡히지 않으려 당시 일본 신문, 조선 신문 등을 철저히 찾았다.

-검사의 취조 장면과 법정 장면이 '박열'의 주요 뼈대다. 한정된 공간이 계속 이어진다. 흔히 독립 운동가를 다룬 영화들이 보여주기 마련인 스펙터클이 없는데.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그랬다. 법정 장면이 이야기의 핵심이자 목표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관동 대지진 장면은 4시간 만에 찍었다. 조선인 학살 사건 묘사도 살짝만 담았다. 스펙터클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활극이 아니니깐.

-많은 기록이 없는 박열 보다 자서전이 있는 가네코 후미코 캐릭터가 더 입체적인데.

▶그렇다기 보단 박열보다 가네코 후미코의 내러티브로 영화가 구성됐기 때문이다. 내레이션도 가네코 후미코가 하고. 씬의 배열도 박열 취조 장면 다음에 가네코 후미코를 넣었다. 그건 둘의 하모니가 결국 '박열'의 본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열을 맡은 이제훈의 리액션과 디테일이 아주 좋았다. 일본어를 해도 단어 하나하나에 감정을 정확히 실어서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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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영화를 박열의 시 '개새끼'로 시작하는데.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그 시에서 박열을 읽으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왕의 남자'를 하면서 장생(감우성)이란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그 기질과 박열의 기질이 맞닿아 있다. 그건 조선인의 기질이기도 하다. 권력의 억압에 무릎 꿇기보다 조롱하는 그런 기질. 노마드(유목민)적인 기질. 그런 기질이 아나키스트고, 박열이다.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은 최희서를 '동주'로 발탁한 데 이어 '박열'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박열'에선 최희서가 모든 배역을 잡아먹었다고 할 정도로 인상적인데.

▶최희서는 '동주'에서 비중은 적지만 이미 잠재력이 검증 됐다. 가네코 후미코 역을 최희서 외에 할 배우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디테일은 감독이 만든 게 아니다.

-가네코 후미코가 옥중에서 쓴 안경도 고증인가.

▶그렇다. 테 없는 안경.

-고증에 완벽을 기했다고 했는데. 박열은 한국어로, 일본인 검사는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도 그런가.

▶그건 아니다. 그건 관객을 위한 것이다. 다만 박열이 한 이야기와 태도는 최대한 고증을 살렸다.

-카메라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같은 눈높이에서 잡는데. 보통 영화에선 남자 주인공보다 여자 주인공을 눈높이를 낮게 잡기 마련인데.

▶박성주 촬영감독의 공이다. 난 아나키즘이 현대에 페미니즘, 환경운동, 동물운동 등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남성의 권력을 뺏으려 하는 운동이 아니다. 억압된 권력 구조에 저항하는 운동이다. 가네코 후미코의 삶 또한 그랬다.

-감옥에서 '인터내셔널'을 부르는데. 한국영화에서 일본어로 부르는 '인터내셔널'이 등장하는 게 '박열'과 닿아있다는 생각도 들던데.

▶'인터내셔널'은 영화 '레드', '랜드 앤 프리덤' 등에서 나왔었다. 물론 '박열'에서 옥중에서 '인터내셔널'을 부른 건 영화적인 삽입이다. 그래도 그 노래의 가사가 이 영화의 주제와 닿아있다고 생각했다.

-최승희의 '이태리 정원'을 주제곡으로 쓴 것도 인상적인데.

▶방준석 음악감독에게 1920년대 재즈송을 찾아봐 달라고 했다. 그런데 최승희 노래인 '이태리 정원'을 찾아왔더라. 무용가 최승희가 노래도 불렀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이태리 정원'은 먼저 죽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중에 오길 기다리는 내용이다. 박열보다 먼저 죽은 가네코 후미코의 마음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데.

▶일제에 의한 타살인지, 자살인지, 여러 설들이 있다. 그건 영화를 본 관객들이 판단했으면 싶다.

-암살 모의 만으로 사형이 선고된다는 건 통진당 해산과 일제가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면서 곧 잊혀질 것이라고 한다는 건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랑 닿아있는데. 그렇게 '박열'이 현재성을 얻기도 하고.

▶의도하진 않았다. 의도는 감독이 부여하는 게 아니라 관객에게 부여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같이 찍은 사진을 전면에 부각했는데.

▶지금이라도 가능할까 싶은 사진이다. 사형 선고를 앞둔 남녀가 그렇게 사진을 찍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은데 그런 자세로 찍었다는 게. 그게 박열의 본질이자 아나키스트의 본질이다. '박열'에 찍어놓고도 안 넣은 장면이 있다. 그 사진이 유출되고 난 뒤에 당시 일본 내각이 발칵 뒤집어졌다. 야당의 청문회 요구로 3일 동안 내각이 정지됐었다. 그 장면까지 넣으면 뒤 이야기가 너무 늘어지는 것 같아서 뺐다.

-다음 작품도 일제 강점기 이야기인가. '동주' '박열'에 이어 일제 3부작으로 만들려 하나.

▶아니다. 현대물을 찍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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