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슈퍼루키 애런 저지, 그 인성까지 알아본 양키스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6.13 08:25 / 조회 : 14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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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의 '슈퍼 루키' 애런 저지. /AFPBBNews=뉴스1






13일(한국시간)은 2017 메이저리그(MLB) 아마추어 드래프트가 실시되는 날이다. 드래프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무리 트레이드가 흔하고, 필요한 선수를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사올 수 있다고 해도 팀의 가장 기본인 팜 시스템이 자리를 잡지 못해 취약하다면 트레이드와 FA계약은 빛 좋은 개살구이자 사상누각일 뿐이다.

팜 시스템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것은 쓸 만한 유망주가 부족하다는 뜻이기에 사실 큰 트레이드도 하기 힘들다. FA시장에서 엄청난 돈을 쓰고 슈퍼스타 몇 명을 데려온다고 해도 기초가 취약한 팀이 갑자기 우승 팀이 될 수는 없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각 플레이오프 경쟁에 나서 있는 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팀들이 그 중심에 직접 드래프트를 통해 키워낸 핵심 유망주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올해 돌풍의 팀으로 떠올라 아메리칸리그(AL) 동부지구 선두를 질주하는 뉴욕 양키스의 ‘슈퍼 루키’ 외야수 애런 저지(25)다. 지난 2013년 드래파트에서 1라운드 32번으로 양키스에 지명된 저지는 지난해 빅리그에 데뷔했지만 올해가 아직 루키시즌인데 현재 타율 0.344, 21홈런, 47타점으로 모두 AL 1위에 오르며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WAR(Wins Above Replacement) 순위에서는 4.1로 MLB 전체 1위이고 현재 올스타전 투표에서 득표 순위도 1위다. 지금 추세라면 AL 신인왕은 물론 MVP까지 집어삼킬 기세다. 저지의 이 맹활약이 양키스의 시즌 돌풍에 있어 가장 큰 동력이 되고 있음은 자명하다.

6피트7인치(201cm), 282파운드(128Kg)의 NBA 포워드급 체격을 자랑하는 저지는 지난 19일 양키스테디엄에서 벌어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6회말 장장 496피트짜리 초대형 홈런을 터뜨려 메이저리그를 경악시켰다. 이미 그의 어마무시한 파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의 동료선수들도 덕아웃에서 그 타구를 보고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496피트는 지난 2009년 ESPN이 홈런 비거리를 측정하기 시작한 이후 역대 최장거리 신기록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홈런이 벌써 그의 시즌 20호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날 7회엔 라인드라이브로 우중간 팬스를 넘어가는 401피트짜리 홈런을 보태 시즌 21홈런을 기록했다. 양키스 역사상 만 25세 이하의 선수가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에 20홈런을 넘어선 것은 1960년 로저 모리스 이후 저지가 처음이다.

사실 저지가 지난해 빅리그에 데뷔한 뒤 올린 성적은 올해의 신들린 맹위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지난해 그는 27경기에서 타율 0.179에 4홈런, 10타점에 그쳤고 특히 84타석에서 삼진이 42번으로 삼진 비율이 무려 50%에 달했다. 그랬던 그가 올해는 파워 면에서 전설적인 슬러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엄청난 맹위를 떨치고 있을 뿐 아니라 타율에서도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루키로 올해 메이저리그 최저연봉인 53만5천달러를 받는다. 연봉과 상관없이 올해 최고의 선수 중 하나지만 가성비로는 아예 비교할 대상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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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의 '슈퍼 루키' 애런 저지. /AFPBBNews=뉴스1





이런 엄청난 ‘보물’을 양키스는 과연 어떻게 32번째 지명권으로 얻을 수 있었을까. 지금 저지의 모습을 보면 4년전 드래프트에서 그를 뽑지 않은 다른 팀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가 궁금할 지경이다. 2013년 드래프트에서 저지보다 먼저 호명된 31명 중 현재까지 잠깐이라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선수는 단 13명뿐이다. 이중에서 전체 2번으로 시카고 컵스에 지명된 크리스 브라이언트를 제외하면 지금의 저지만큼 엄청난 임팩트를 안겨준 선수는 없다. 겨우 4년 전 드래프트 결과를 평가하기엔 너무 성급하지만 현재까지 결과만 놓고 보면 브라이언트를 잡은 컵스를 제외하곤 저지를 잡을 찬스를 놓친 구단들은 모두 아쉬운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재능의 선수를 몰라본 구단들을 한심하다고 몰아치기 전에 실제로 유망주들을 판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는 양키스조차 그해 드래프트 첫 번째 지명권(전체 26번)으론 저지가 아닌 내야수 에릭 재지엘로를 뽑았다. 양키스 역시 저지에 대한 ‘미래의 빅리거’라는 100%의 확신은 없었던 셈이다. 아롤디스 채프먼 트레이드 때 신시내티로 간 재지엘로는 올해로 3년째 더블A에 머무르고 있다.

‘머니볼’로 유명한 오클랜드의 빌리 빈 부회장도 저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빈은 저지의 큰 체격을 위험요소로 생각하지 않았고 실제로 지난 2010년 드래프트 때 고교 졸업반이던 저지를 31라운드에 지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지는 프레즈노 스테이트로 진학했고 3년 뒤 드래프트에서 24번째 지명권을 들고 있던 빈은 저지를 다시 뽑는 대신 고교생 외야수 빌리 맥키니를 선택했다. 맥키니는 아직 더블A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빈은 “저지의 장점은 정말 엄청났다. 하지만 볼을 배트에 꾸준히 맞추질 못했다. 이는 18세 고교생 시절에도 걱정되는 사안인데 그는 3년간 대학생활에서도 특별히 나아진 모습이 아니었다”면서 “대학시절에도 그는 가공되지 않은 원석, 아주 거친 원석이었다.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양키스의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 역시 “분석 자료만으로 판단했더라면 너무 큰 체격과 높은 삼진 비율 때문에 그를 뽑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통산 1,000타석 이상을 기록한 선수 가운데 키가 6피트6인치(198cm) 이상이었던 선수는 단 12명뿐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 상대적으로 큰 스트라이크존으로 인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거구의 선수가, 더구나 저지처럼 삼진 비율이 높을 경우 빅리그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는 것이 선입견이 있었다. 물론 명예의 전당에 오른 데이브 윈필드처럼 큰 키에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예외 케이스도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하지만 양키스가 소중한 1라운드 지명권을 저지에게 쓰는 모험을 단행한 것에선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체적인 그의 엄청난 잠재력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그의 더 뛰어난 인성과 성숙함을 발견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양키스는 드래프트에 앞서 추리고 추린 약 125명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인성을 측정하는 심층 인터뷰를 실시하고 이 인터뷰 결과를 드래프트에 반영한다. 만약 선수가 이 인터뷰를 거부하면 그 선수는 자동으로 팀의 드래프트 후보에서 제외시킨다. 그리고 이 인터뷰에서 양키스는 뭔가 특별하고 강렬한 인상을 저지에게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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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의 '슈퍼 루키' 애런 저지. /AFPBBNews=뉴스1





저지는 출생 하루 뒤에 교사인 패티와 웨인 저지 부부에게 입양됐는데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모에게서 그 역시 깊은 신앙을 물려받았다. 저지는 “부모님은 내가 어려서부터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쳤고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면서 “또 운동과 비디오게임 등을 하는 것은 모두 내 권리가 아니라 특권임을 이해할 수 있게 했고 여러 가지 룰은 지키고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운동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프레즈노 스테이트 감독인 마이크 베이트솔은 “저지는 정말, 정말 특별한 아이”라면서 “그 정도로 깊이 있고 실질적인 인격은 그의 부모가 그를 정말로 바르게 키웠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지에겐 역시 입양된 형 존(30세)이 있는데 존은 현재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키스는 저지가 지나치게 큰 체구로 인해 올 수 있는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을 지녔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은 옳았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양키스의 관계자들은 최근 저지에 대한 언급하면서 팀의 영원한 캡틴으로 불리는 데릭 지터와 그를 비교하고 있다. 경기력이 아니라 그의 인성과 경기를 대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조 지라디 감독은 “내가 보기에 그는 지터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항상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고 경기를 즐긴다. 그가 필드 안이나 밖에서 모두 옳은 일만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캐시먼 단장은 “저지는 자신의 능력에 매우 자신감을 갖고 있지만 그에게 거만함이란 전혀 없다”면서 “경기 자체를 존중하는 것은 물론 상대팀과 프론트오피스, 구단주 등에 대해서도 진정한 존중 의식을 갖고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지터에게서 발견한 특징들”이라고 밝혔다. 사실 양키스에서 젊은 선수가 지터와 비교된다면 그 이상의 칭찬은 있을 수가 없다.

이미 ESPN은 저지의 맹렬한 급부상이 오는 2018년 시즌이 끝나면 FA가 되는 브라이스 하퍼가 장차 양키스 유니폼을 입는 것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예상하고 나섰다. 저지가 지금의 맹렬한 상승세를 이어가 양키스의 핵심 스타로 성장한다면 양키스가 4억달러 이상 계약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하퍼를 잡는데 그리 절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지가 이끄는 양키스 타선이 이미 102개의 홈런으로 메이저리그 1위에 올라있는 상황에서 찬문학적 돈을 주고 하퍼를 또 데려오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훨씬 더 필요한 선발진 보강 쪽으로 돌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최소한 하퍼의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와 협상에서 양키스가 상당히 유리한 입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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