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가 빠진 '옥자' 논란..멀티플렉스의 '내로남불'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6.07 14:12 / 조회 : 4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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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의 봉준호 감독, 틸다 스윈튼, 안서현, 제이크 질렌할 /AFPBBNews=뉴스1


지난해 정초 BBC드라마 '셜록'의 특별판 '셜록:유령신부'가 극장에서 개봉했다. 배급사 메가박스는 언론배급시사회도 없이 영국 BBC 방영일에 맞춰 특별 상영을 시작했고, '셜록:유령신부'는 마침 '히말라야'와 '내부자들' 감독판이 몇 주째 득세하는 사이 별다른 신작이 없던 극장가에서 스크린을 890개까지 늘리며 제대로 실속을 챙겼다. 무려 127만 관객을 모았다.

수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는 나름의 배급전략은 일단 그렇자 치자. 더한 문제는 콘텐츠였다. 극장에서 상영됐을 뿐 '셜록:유령신부'는 브라운관 방영이 목표인 게 자명한 영상물이었고, '셜록 극장판'인가 싶은 착각을 부르는 미필적 고의에 가까운 포스터를 걸고 관객을 낚았다. 고대하던 '셜록' 신작을 극장에서 본 팬들은 반가웠을지 모르겠으나, 보는 내내 불쾌했다. 화면의 구도도, 장면의 전환도, 영상의 어느 하나 대형 스크린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게 분명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개봉을 앞두고 영화계가 시끌시끌하다. 글로벌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댄 이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최초로 지난달 열린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입성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극장에서 안 트는 영화를 칸에 초청한다며 프랑스 극장들이 반발했다. 한 달 뒤 한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는 6월29일 넷플릭스-극장 동시상영 방침을 두고 CGV와 롯데엔터테인먼트, 메가박스가 반발했다.

가입자 서비스가 메인인 넷플릭스로선 오리지널 콘텐츠를 한국에 한해 극장에서 동시에 선보이는 자체가 나름의 파격인 터라 '동시개봉' 방침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옥자'의 한국 배급사 NEW는 "극장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멀티플렉스 3사 개봉이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기엔 이른 시점"이라는 입장이나, 한국 스크린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멀티플렉스 3사에서 '옥자'를 보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기와 신뢰를 두루 쌓은 봉준호 감독을 앞세워 한국 극장을 파고든 스트리밍 공룡 넷플릭스에 맞서 극장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지사다. 이같은 갈등이 한국에서만 벌어진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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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옥자' 포스터


이 가운데 유독 아쉬운 점이 있다. '옥자'라는 콘텐츠 자체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기자는 지난달 28일 폐막한 칸 국제영화제를 현지에서 취재하면서 '옥자'를 뤼미에르 극장의 초대형 스크린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현지를 찾은 한국 기자들만을 대상으로 열린 특별 시사회에서 한국어 자막이 더해진 버전을 한 번 더 봤다.

'옥자'는 사랑스러운 거대 동물과 소녀의 우정과 사랑을 담은 온가족용 어드벤처 영화이면서도 무자비한 자본주의와 공장형 축산을 꼬집는 신랄한 작품이기도 했다. 뭐라 꼬집어 정의할 수 없는 장르와 곳곳에 더해진 유머에선 봉준호 감독의 인장이 제대로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관람했던 많은 이들이 동의했듯, '옥자'는 커다란 스크린에서 관람하기에 최적화 된 '영화'였다. 100% CG 캐릭터인 옥자의 특수효과는 물론이고 종으로 횡으로 깊이 뻗은 스펙터클 모두 대형 스크린으로 보기에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인간의 시선에 맞게 와이드한 극장 화면을 즐기는 데 최적화된 비율이라는 2.35대1 시네마스코프 화면비 역시 '극장용'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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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의 봉준호 감독 / 사진제공=넷플릭스


봉준호 감독도 이 점을 수차례 밝혔던 터다. 그는 스크린에서 선보인 이전 영화를 만들던 방식 그대로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과 의기투합해 '옥자'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도 '옥자'를 촬영할 때 알렉사65라는 카메라를 사용했다면서 "디지털 버전의 70㎜ 같은 카메라인데, 엄청난 역량으로 시네마틱한 아름다움을 구현해낸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전작 '설국열차'를 기어이 필름으로 촬영해 냈던 봉준호 감독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전액 투자받아 신작을 만들면서 한국 관객을 위해 극장 개봉을 약속받고 또 그것이 제대로 성사되지 않는 현재의 상황은 봉준호 감독 영화의 웃픈 아이러니들을 연상시킨다. 손해볼 것 없는 넷플릭스야 희희낙락일 것이다. 이미 '옥자' 제작비로 한국 및 글로벌 홍보비를 뽑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극장도 제 밥그릇을 지켜야 한다. 봉준호 감독이 화려한 스타들과 함께 돌아오는 초대형 신작을 '셜록:유령신부'와 파급력 차원에서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노릇이긴 할 거다. 그러나 1년반 전 BBC 드라마를 영국 방영일에 맞춰 별말 없이 개봉해놓고 이제 와서 안면몰수하는 멀티플렉스 3사들이 극장 생태계를 운운하는 게, 이해는 되어도 달갑지 않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만고의 이치는 넷플릭스와 극장 간의 줄다리기에서도 통한다.

'옥자'에 별 다섯개 만점을 준 영국 가디언의 기자는 흥분된 어조로 "이 영화의 제작자가 어떻게 소형 스크린용 콘텐츠를 선보이는 넷플릭스일 수 있느냐"며 "'옥자'를 아이패드용으로 줄이는 건 끔찍한 낭비"라고 안타까워했다. 같은 마음이다.
'옥자'를 멋진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없는 건 끔찍한 낭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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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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