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군'정윤철 감독 "이정재는 태양, 그 빛 여진구가 받았다"(인터뷰)③

[★리포트]

이경호 기자 / 입력 : 2017.05.30 09:40 / 조회 : 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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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철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이후 9년 만에 정윤철(46) 감독이 새로운 이야기로 대중과 만난다. 이번엔 조선시대의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대립군'이다.

'대립군'은 1592년 조선에서 발발한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했다. 당시 명나라로 피란한 임금 선조를 대신해 임시조정 분조를 이끌게 된 광해(여진구 분)와 살기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이 전쟁에 맞서 운명을 나눈 이야기다.

영화는 광해와 대립군 수장 토우(이정재 분)을 내세워 '진정한 리더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정치, 민생, 외교 등 국정 운영에 대한 다양한 소재들이 극 전개에 따라 등장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칫 ''대립군'=정치 이야기'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에 정윤철 감독은 "완전한 정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다"고 답했다.

"영화에서 다룬 대립군은 저도 사실 몰랐었어요. 시나리오 초고를 보고 알게 됐었죠. 보면서 '남을 대신해 허깨비처럼 사는 사람들이구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으로 치면, 비정규직 혹은 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었죠. 그래서 조선시대 비정규직 이야기를 하면, 요즘 우리 삶을 투영시켜서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시작을 하게 됐죠."

공감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정윤철 감독. 그런데 왜 하필 광해를 내세웠는지 궁금해 하자 "팔자 고치고 싶은 민초(백성)들"이라고 말을 꺼냈다.

"먼저 영화는 임진왜란을 소재로 했지만, 전쟁 액션 영화는 아니예요. 쉽게 말하면 정규직이 되어서, 팔자 고치고 싶은 비정규직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사람들이 당시 최고위층인 왕세자를 만나 팔자 고치려 해보려 한다면 어떨까 싶었죠. 그리고 또 하나, 왕도 대립군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광해도 사실 당시 계약직 왕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원군 요청을 하러 가는 아버지(선조)를 대신해 조선에 남아 왕으로 조정을 이끌고,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 말이죠. 그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대립군과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설정이지만 대립군 역시 광해와 같은 마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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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철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감독이 의도한, 관객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했다. 그러나 정치색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영화를 통해 전하는 진정한 리더 찾기가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탄핵 되는 일련의 상황들을 예상하고 영화를 기획했는지 묻자 손사래를 쳤다.

"와, 진짜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2년 전 영화 기획을 할 때 '리더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한 나라를 이끄는 리더로 인해 국민들이 힘들기도 하고, 상처도 받았죠.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대립군'에서 다룬 리더에 대한 이야기에 저도 끌렸죠. 나약한 존재가 진정한 리더로 발전해 가는 모습을 잘 그려내면 관객들에게 위안이 되겠다 싶었어요."

'대립군'에서 리더인 광해는 유약하고, 나약한 존재였다. 17세의 나이에 원하지 않았던 왕을 대신하는 왕세자의 자리를 억지로 받아야 했다. 여러 드라마, 영화에서 그려졌던 폭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덕분에 '대립군'은 '광해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이 될 광해의 탄생, 성장기에 초점을 뒀어요. 훗날 왕이 된 그가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치려 했고, 명·청 교체기에서 줄타기 외교를 했던 것도 어린 시절 전쟁을 직접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았거든요. 대립군과 함께 자신이 만날 군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선의 백성, 산과 땅에 대한 애착이 생기면서 이로 인해 나중에 왕이 된 후에 어떻게든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고도 생각하거든요. 물론 광해가 재위기간 동안 다 잘한 것은 아니지만요."

광해와 함께 왜군의 추적을 피하고, 전쟁의 한 가운데 서야 했던 대립군. 토우와 그의 동료들은 광해를 통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팔자를 고치려 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숨겨진 의미가 있을까 궁금했다.

"대립군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사람들이었죠. 광해와 약속했던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고 팔자 고치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광해와 함께 생사를 함께 하면서 변하게 돼요. 그게 '이 사람이라면 성군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죠. 대립군은 사실 가족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고 대립질을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팔자를 고치려 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왕세자를 만나고 자신들의 팔자는 못 고쳐도 가족들을 지켜줄 수 있는 왕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거죠. 백성들이 직접 왕을 만들고, 백성이 나서서 세상을 만들어 간 것이죠."

'대립군'은 감독의 말처럼 대립군, 광해가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통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과 리더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케 했다. 또 그것은 배우들이 캐릭터에 잘 녹아든 덕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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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철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정윤철 감독은 광해 역을 맡은 여진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병헌만큼이나 훌륭한 배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여진구는 20대 또래 배우들 같지 않아요. 작품 해석이나 감정 표현이 뛰어나죠. 스스로 중학생 때 연기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벌써 매너리즘을 고민하는 배우에요. 대개 아역 출신 배우들이 (연기) 성장이 멈추는 경우가 많은데, 여진구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드라마에서 특화된 모습만 보여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배우로 스펙트럼을 넓혀서 좋은 것 같아요."

정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 이정재에 대해서도 "최고"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정재가 영화에 제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가 워낙 럭셔리하고 멋있는 이미지다보니 조금 더 서민적이고, 거친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찾고 있었죠. 그러다 그에게 제안을 했는데, 흔쾌히 받아줘서 뜻밖이었어요. 그리고 배우는 제 몫을 잘 해줬어요. 전에 '관상'에서 수양대군 역을 맡아 최고위층이었는데, 이번엔 최하층민이 돼서 숨겨져 있는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매력을 보여줬죠. 세련되고, 매너 있는 본능적인 야성이었어요. 태양이 되어 빛나고, 그 빛을 여진구가 잘 받았죠. 그래서 '대립군'이 배우가 돋보이는 영화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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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철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앞서 '대립군'에 출연했던 이정재, 여진구, 김무열 등은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통해 '산에 가마 메고 오르는 신'을 가장 힘든 촬영 장면으로 손꼽기도 했다. 정윤철 감독은 이 신에 대해 "배우들에게 말하지 않은, 숨은 뜻이 있다"고 밝혔다.

"배우들이 잘 해줘서 일단 고맙죠. 이 장면은 사실 백성과 국가라는 상징이 있어요. 왕세자가 탄 가마를 대립군이 짊어진 것은 국가를 짊어진 백성들이란 의미가 있죠. 그리고 산을 타던 중 토우가 가마를 절벽 밑으로 밀어버리는데, 이것은 권위를 깨버린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하나 더 있는데, 광해가 세상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하는데 이를 계기로 바깥 세상으로 나온다는 뜻도 있어요. 광해가 직접 조선의 땅을 밟으면서 '내 나라다. 이 나라를 왜군에게 뺏길 수 없다'는 지점이 되는 거죠."

'대립군'은 420년이 지나도 '진정한 리더'를 찾는 백성들의 이야기임은 분명했다. 정 감독은 이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대립이 남을 위해 사는 삶을 이야기 했지만, 자립의 삶을 가자는 게 영화를 통해 진정 하고 싶었어요. 미생에서 완생이 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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