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했던 칸의 70돌..韓영화는 뜨거웠다

[제70회 칸국제영화제 폐막]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5.29 08:00 / 조회 : 2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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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 전경 /AFPBBNews=뉴스1


70살 칸영화제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지난 17일 개막한 세계 최고의 영화 축제는 떠들썩한 70살 맞이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비교적 차분했다. 원인은 크게 둘이다. 테러 위협 등으로 가라앉은 분위기, 그리고 화제작의 부재.


2015년 11월 파리 연쇄테러와 2016년 7월 니스 트럭 테러 이후 열리는 70회 칸영화제는 유럽, 특히 프랑스를 둘러싼 테러 위협 속에 긴장된 분위기에서 손님을 맞았다. 칸의 총아들이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성대한 기념식을 열었지만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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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메인 행사장 '빨레 드 페스티벌' 입장객의 몸을 수색하는 보안요원들의 모습


몇 번씩 가방을 뒤지는 겹겹의 보안검색은 어느 때보다 삼엄했고, 사적인 파티조차 영화제 측이 꼭 입장객을 확인하라는 주의를 내리고 살폈을 정도다. 지난 20일에는 의문의 가방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드뷔시 극장 관객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 22일 맨체스터 공연장 폭탄테러가 터졌고, 칸영화제까지 덩달아 분위기가 굳었다. 애도 성명까지 낸 칸영화제는 진행하려던 기념 불꽃놀이까지 취소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 해외영화제 관계자는 "칸영화제에의 분위기가 예년 같지 않다. 영화제 참가자나 취재진도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유럽의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테러의 위협을 실질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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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옥자' 포스터


이 와중에 초청작 중 별다른 화제작, 논란의 영화들이 많지 않았다는 점도 영화제의 가라앉은 분위기에 한 몫을 했다. 거장보다는 주목받는 중진들의 영화들이 두루 경쟁부문에 포진했지만, 대부분 무난해 강렬한 표현, 수위, 주제의식 등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들을 찾기 힘들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공개 이후 화제와 논의를 선도해간 영화들도 많지 않았다.

이 가운데 칠순을 맞은 칸을 내내 달군 것은 넷플릭스라는 뜨거운 감자였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그 중심에 있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옥자'는 '더 메예로위츠 스토리스'와 함께 스트리밍 기반 기업이 제작한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이는 영화라는 매체의 정의, 현실에 대한 다각도의 논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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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의 봉준호 감독, 틸다 스윈튼, 안서현, 제이크 질렌할 /AFPBBNews=뉴스1


초청이 발표되자 프랑스 극장협회가 반발했고, 이에 칸영화제는 내년부터 넷플릭스 영화의 경쟁 진출을 금지하는 방침을 급조해야 했다.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에 황금종려상이 돌아가면 거대한 모순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비록 오해라고 해명했지만 넷플릭스 논란은 내내 영화제를 뜨겁게 달궜다.

화제성이 떨어진 올해의 칸에서 넷플릭스 자체가 화제작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옥자'가 호평에도 불구하고 수상까지는 이루지 못했지만 넷플릭스로서는 초청 자체가 큰 성과였을 뿐더러 영화제를 통한 마케팅 효과까지 톡톡히 누렸다. 영화제 메인 행사장인 빨레 드 페스티벌 건너편에 굳건히 자리잡은 '옥자'의 대형 옥외광고물은 시대의 변화 앞에 망설이는 칸영화제에 던지는 넷플릭스의 선전포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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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의 봉준호 감독, 틸다 스윈튼, 안서현, 제이크 질렌할 /AFPBBNews=뉴스1


한국영화의 뜨거운 기운은 차분히 가라앉은 칸영화제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넷플릭스를 떠나서도 돋보인 작품이었다. 100% CG 캐릭터가 등장하는 제작비 600억원의 SF 어드벤처 무비는 사실 작은 규모의 예술영화를 즐겨 선보이는 칸의 경쟁부문에 초청됐다는 것 자체가 놀랍게 느껴질 정도로 칸과 이질적이었다. 그 자체가 봉준호란 감독에 대한 칸의 기대감과 애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됐다. 공개 이후 '옥자'는 자본주의, 공장형 축산업에 대한 날선 비판의식을 담은 감독의 메시지는 높은 평가를 받았고, 넷플릭스 영화로 재단하기 아쉽다는 평가까지 이끌어냈다. 13살의 여주인공 안서현 또한 놀라운 발견이란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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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0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불한당'의 공식상영에 참석한 배우 설경구 임시완 김희원 전혜진이 관객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 사진=스타뉴스


홍상수 감독의 '그 후' 또한 올해 칸에서 주목받았다. 시작은 창대하지 못했다.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클레어의 카메라'와 함께 홍상수 감독의 영화 2편이 동시에 올해 칸에 진출했지만, '그 후'의 경우 공개 당시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다. 언론시사회는 뤼미에르 극장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 작은 상영관 바진에서 이뤄졌고, 여타 작품들에 비해 상영관 수도 적었다. 그러나 공개 직후 유럽 평단을 중심으로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비록 수상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번으로 4번째 칸의 경쟁부문에 진출한 홍상수 감독은 베를린에서 김민희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데 이어 이번 작품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더욱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 영화계에 분명한 인상을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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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AFPBBNews=뉴스1


칸의 밤을 깨운 '악녀'(감독 정병길), '불한당'(감독 변성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여전사 김옥빈의 강도 높은 액션을 앞세운 '악녀'는 10분 가까운 롱테이크 오프닝만으로도 시선을 붙들었다. SNS 논란 끝에 감독의 칸영화제 참석이 불발된 '불한당'은 우여곡절 끝에 진행된 공식상영에서 무려 8분의 열띤 기립박수를 끌어 내며 칸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설경구 임시완 김희원 전혜진은 칸의 열기를 기꺼이 즐기며 감격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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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으로 영화제를 두루 누비는 가운데서도 한국영화, 한국 영화인들을 살뜰히 챙긴 박찬욱 감독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경쟁부문 초청작인 '옥자', '그 후'는 물론 '박쥐'로 함께 했던 '악녀'의 김옥빈이나 감독 없이 칸에 온 '불한당'의 네 배우를 응원하기 위해 기꺼이 늦은 밤 뤼미에르 극장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하며 훈훈함을 더했다.

지난 18일 갑작스러운 비보로 한국은 물론 세계 영화계를 슬픔에 잠기게 했던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를 추모하는 한국영화의 밤 행사에 그를 비롯한 600여 명의 세계 영화인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기렸던 일 또한 올해 칸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차분함과 뜨거움, 기쁨과 안타까움이 함께했던 제 70회 칸영화제가 이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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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추모공간이 마련된 영화진흥위원회 부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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