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은퇴순간 오면 그냥 죽겠다는 이치로와 야구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5.26 07:37 / 조회 : 5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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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입성이 기정사실화된 이치로 /AFPBBNews=뉴스1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현역선수 가운데 명예의 전당 입성이 가장 확실한 선수는 누구일까. 미래의 일이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가 뉴욕 쿠퍼스타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만큼은 이미 기정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문제는 과연 그것이 언제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1973년 10월 22일생인 이치로는 올해로 만 43세다. 그와 동년배 선수들은 이미 은퇴한 지 오래고 메이저리그 감독 중에서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A.J. 힌치(1974년생)와 탬파베이 레이스의 케빈 캐시(1977년생),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앤디 그린(1977년생) 등 3명이 그보다 어린 ‘동생’들이다. LA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1972년생)은 그보다 딱 한 살 위다. 한마디로 연륜과 경력에서 ‘감독급’ 선수다.

사실 어쩌면 더 놀라운 것은 이치로가 현역 최고령 메이저리거가 아니라는 사실일지 모른다. 그 영예는 지난 오프시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한 투수 바톨로 콜론이 갖고 있다. 똑같은 1973년생이지만 콜론의 생일이 51일 빠르다. 이치로의 장구한 커리어에도 불구, 아직까지 최고령 메이저리거 타이틀은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1991년 일본프로야구(NPB)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치로는 9시즌 동안 일본무대를 완전히 평정한 뒤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해 메이저리그에 진출, 첫 해에 타격왕(타율 0.350), 안타왕(242안타), 도루왕(56도루)에 오르며 AL 신인왕과 MVP를 휩쓸고 전설적인 메이저리그 커리어의 막을 올렸다. 2004년에는 시즌 262안타로 1920년 조지 시슬러가 기록했던 257안타의 기록을 84년만에 갈아치웠다.

이후 뉴욕 양키스를 거쳐 2015년부터 마이애미에서 뛰고 있는 이치로는 지난 2016년 메이저리그 통산 3,000안타 고지에 오른 것은 물론 일본에서 9년간 기록한 1,278안타를 합치면 피트 로즈의 역대 최다안타기록(4,256)도 추월했다. 현재까지 메이저리그 안타 수는 3,039개로 역대 랭킹 24위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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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치로의 위대한 커리어가 저물어가고 있다.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17년, 일본 경력을 합치면 26년째 뛰고 있으니 커리어가 저물지 않았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이치로지만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과 ’아버지 시간‘(Father Time)의 법칙을 끝까지 거스를 수는 없다.

문제는 이치로가 그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치로는 종종 자신은 50세까지 현역으로 뛸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면서 “(50세까지 뛰겠다는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단호한 의지가 담긴 표현이다.

그리고 이치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면 그의 말이 절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은 그냥 알게 된다. 4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그의 몸 상태는 아직도 경이적인 수준이다. 거의 1년 내내 쉬는 날이 없는 그의 훈련 량은 지구상의 어떤 선수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치로는 “육체적으로 부상이 없다면 휴식은 필요 없다”면서 “물론 정신적으론 가끔 휴식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은 훈련을 하지 않으면 몸에 스트레스가 와 더 피곤해진다. 하루라도 소파에서 뒹굴고 나면 밖에 나가 훈련을 한 것보다 훨씬 더 피곤하다. 그렇기에 하루도 훈련을 쉴 수 없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그는 오프시즌에도 휴가를 가지 않는다. 그는 올해 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휴가를 간 것이 2004년 또는 2005년에 일주일동안 이탈리아 밀라노에 다녀온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여행기간 중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 여행 후 2~3주 동안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면서 다시는 여행 같은 것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할 일이 없는 시간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쿠퍼스타운을 찾아가 명예의 전당에 담긴 야구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고 한다. 오프시즌도 그에게 오프시즌이 아니다. 그의 통역인 앨런 터너는 “그가 쉬는 날이 1년 동안 많아야 3~4일”이라면서 “이 세상에 일 년 동안 그보다 많은 스윙을 하는 선수는 없다. 내가 보장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치로는 시즌 중 경기가 없는 휴식일에도 구장에 나와 트레이닝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사람이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다. 사실 이치로가 선수로서 퇴보 징후를 보인 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더욱 뚜렷하다. 올해 이치로는 38경기에서 59타석에 나서 타율 0.153, 1홈런, 3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59타석 가운데 거의 절반인 27타석이 대타로 나선 것인데 대타로서의 성적도 타율 0.148(27타수 4안타), 9삼진으로 극도로 부진하다.

주전으론 거의 뛰지 못하고 대타로서 성적도 이 정도라면 사실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남아있기가 민망한 수준이지만 마이애미의 돈 매팅리 감독은 이치로의 전설적인 커리어에 대한 예우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그에게 꾸준하게 출장기회를 주고 있다. 24일과 25일에는 이틀 연속으로 그를 선발 출장시켰고 이치로는 13경기 만에 선발 출전한 24일 경기에선 5타수 1안타 2타점 1득점을 기록, 메이저리그 통산 96번째로 통산 1,400득점 기록을 채우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치로는 출전 기회가 없어 자신의 고전이 깊어지고 있다고 불만이다. 25일 일본 스포츠 매체 스포니치 아넥스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치로는 “(불규칙한 출전으로) 체력이 다 떨어졌다”면서 “스프링캠프에서 시즌을 준비하며 만든 체력이 무용지물이 됐다. 연습을 계속하고 있지만, 경기에 출전해서 유지할 수 있는 체력과는 다르다”고 한탄했다.

50세가 될 때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겠다는 이치로 입장에서 보면 출장기회만 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사실 그는 지난해 143경기에서 타율 0.291(327타수 95안타)로 직전 6년간 최고 타율을 기록하며 회춘조짐까지 보인 바 있었다. 그러면서 ‘50세 현역 커리어’를 향한 그의 자신감은 더욱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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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까지 현역으로 뛰겠다"는 만 44세의 이치로./AFPBBNews=뉴스1


하지만 이미 미 현지 언론이 보는 시각은 전혀 이치로와 다르다. 이미 평균적인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패스트볼에도 눌리고 있으며 타석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지만, 실제로 할 수는 없는 선수가 됐다고 꼬집고 있다. 특히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내야안타가 거의 사라졌고 도루도 아직 하나도 없는 것으로 인해 그의 효율성도 추락했다면서 기본적으로 그가 로스터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고 그 때문에 젊은 선수의 빅리그 진출까지 가로 막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하지만 아무리 마이애미라도 이치로 같은 전설급 선수를 방출하거나 마이너로 보낼 수는 없으니 이젠 이치로가 스스로 ‘50세까지 선수생활’ 고집을 꺾고 제2의 커리어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치로가 최소한 당분간은 선수 유니폼을 벗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언론과 인터뷰에서 “미래의 일이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몸 상태라면 50세까지 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은퇴하면 죽을 때까지 쉴 수 있다”면서 전혀 쉴 생각이 없다고 밝혔고 ‘마침내 은퇴할 시간이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엔 “그냥 죽을 것”(I think I’ll just die)라고 답했다.

마이애미는 지난해 시즌 종료 후 이치로에 대한 계약옵션을 행사하면서 내년(2018년)에도 연봉 200만달러에 구단 옵션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라면 그 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그렇게 돼도 이치로는 새로운 팀을 찾을 것 같다. 그것이 메이저리그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그리 쉽게 유니폼을 벗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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