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야구'의 퇴장에 부쳐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7.05.2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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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팬이 24일 서울 한화 본사 앞에서 김성근 감독의 영입을 원하는 1인 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사진=김우종 기자


2014년 10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로에 위치한 한화 본사앞에 피켓 시위자 2명이 등장했다. 그들의 손에 들린 피켓에는 '한화 팬, 7년의 한(恨). 회장님, 김성근 감독 영입으로 (한을) 풀어주세요'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야구감독 김성근. 그의 KBO 복귀는 그렇게 센세이셔널했다. 팬들의 손에 의해 김성근 감독 영입을 청원하는 동영상도 만들어졌다. 무기력한 한화의 성적이 ‘보살’이라 놀림받는 한화팬들을 움직인 것이고 그들의 선택은 김성근 감독였다. 그리고 구단주 김승연회장의 직접 지시로 화려하게 한화에 입성했다.


팬들은 당시 왜 김성근 감독을 원했나? 그가 못하는 팀을 맡아 성적내는데 대단히 유능한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본인 자서전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에서 밝힌 그의 야구관 ‘일구이무 (一球二無)’처럼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야구지도자 김성근을 평생 쫓아다닌 단어가 ‘지옥훈련’였다. 팬들은 그런 김성근이야말로 패배에 익숙한 한화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라고 평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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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88년 7개 구단 중 최하위를 기록했던 태평양 돌핀스를 맡아 다음해 정규시즌 3위로 인천 연고팀 역사상 최초의 포스트시즌및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켰다.


1994년과 1995년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쌍방울 레이더스를 맡아선 해태(현 KIA)에 이어 2위로 1996시즌을 마감한후 플레이오프에서 현대에 먼저 2승을 거두고 3연패했다. 이같은 선전으로 전주구장을 찾은 경기당 관중이 전년도 대비 1천여 명이 늘어나기도 했다.

2001년 감독을 맡은 LG에서도 그의 역량은 발휘됐다. 2002년 시즌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비록 패했지만 6차전까지 삼성과 역전 재역전을 거듭하는 명승부를 펼치기도 했다.

2006년 6위로 시즌을 마감한 SK를 맡아서는 2007년 창단이후 첫 정규시즌 1위를 이끌어낸데 이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SK왕조의 서막이었다. 준우승에 그친 2009년 외에 2008시즌과 2010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을 추가했다. 팬들도 호응했다. 2007년 인천 연고지 팀 사상 최초로 60만 관중 돌파에 성공한데 이어 2008년 70만, 2009년 80만을 돌파했고 2010년 9월 7일 문학 두산전에선 홈 61경기 만에 총 관중 90만 7천380명을 기록했다.

이같은 그의 이력에는 언제나 ‘지옥훈련’이 전제되어 있었다. 있는 자원을 가지고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맡은 한화 역시 달라졌다. 매경기 한국시리즈처럼 끝까지 포기않는 그의 야구는 ‘마리한화’ ‘약속의 8회’같은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한화야구를 재밌는 야구로 변모시켰고 팬들은 열광했다. 2015시즌 전반기를 44승 40패 (승률 0.524) 5위의 성적으로 마쳤다. 이와중에 전반기 최다인 27회의 역전극을 펼쳐냈다. 그야말로 불꽃 투혼이였고 ‘최강한화’란 육성응원에 개연성을 안겼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힘이 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9월 8일부터 20일까지 치른 12경기에서 단, 3승밖에 챙기지 못했다. 순위도 8위까지 추락했다. 그 무렵 ‘혹사논란’이 불거졌다. 불펜진 권혁, 송창식, 박정진과 '고졸 루키' 김민우의 과다등판과 특타가 비판적으로 거론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는 최종전까지 치열한 5위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3년연속 최하위 한화는 김성근 첫해인 2015년 6위에 올랐다. 그 와중에 홈 최다 매진(21회) 신기록도 달성했고 특히 원정 경기 관중 수에서는 99만7528명의 관중을 동원, 10개 구단 중 1위에 오르며 전국구 구단으로 우뚝섰다.

2016시즌은 시작부터 안좋았다. 선발 로테이션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즌을 맞이했다. LG와의 개막 2연전에서 연장 승부 끝에 모두 패했고 결국 최하위로 추락한채 좀처럼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선수단이 단체로 삭발까지 했다. 그러나 투수 혹사 논란, 선수 기용 방식 및 잦은 투수 교체에 대한 팬들의 반발이 거세지며 김성근 감독 퇴진 요구 시위가 일었다. 김 감독은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받았다. 결국 7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시즌후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김성근 감독에 대한 경질론이 터져나왔고 한화구단은 이례적으로 계약기간이 남은 감독에 대한 유임결정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임 박종훈단장으로의 일정부분 권력이양등이 전제돼 있었다. 그리고 5월23일 김성근 감독과 한화는 결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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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한화 김성근 감독(오른쪽)이 구단을 찾아 선수들과 인사를 한 뒤 밝은 표정으로 떠나고 있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비판했지만, 그래서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긴 했지만 그는 언제나 김성근였다. 야구에 대한 신념이 있었고 그 신념은 트렌드를 쫓아가기엔 너무 오래됐는지도 모른다. 한때 첨단 ‘데이터 야구’의 신봉자였지만 시나브로 그의 야구가 구식으로 평가받는 시절이 왔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KBO리그에서 김성근이란 물결도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어쨌거나 KBO리그사상 그처럼 주목받은 인물도 흔치않다. 그의 공과는 KBO의 의미있는 역사로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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