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만루 고의사구'까지 고민케한 트라웃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5.23 08:33 / 조회 : 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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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트라웃. /AFPBBNews=뉴스1


지난 주말 LA 에인절스와 대결한 뉴욕 메츠의 테리 콜린스 감독은 지난 21일 경기에서 7-2로 앞서가던 9회초 에인절스 공격에서 2점을 내줘 7-4로 쫓긴 무사 만루 상황에 마이크 트라웃이 타석에 들어서자 그를 고의사구로 내보내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털어놨다.

고심하던 그는 결국 클로저 애디슨 리드에게 트라웃을 상대시키기로 결정했고 리드가 트라웃을 희생플라이로 유도해내 결국 7-5 승리를 지켜냈지만 경기 후 이 만루상황에서 트라웃을 고의사구로 내보내는 것을 정말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털어놔 주목을 받았다.

만루에서 상대타자를 고의 사구로 내보낸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지난 1998년 당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이던 벅 쇼월터 감독(현 볼티모어)이 2점차 리드를 지키던 상황에서 홈런왕 배리 본즈를 고의 사구로 내보낸 것이었고 10년 뒤인 2008년엔 당시 탬파베이 레이스의 조 매든 감독(현 시카고 컵스)이 4점차 리드에서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 슬러거 조시 해밀턴을 고의사구로 내보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9년 만에 다시 역사가 되풀이될 뻔 했다.

지난 5년간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트라웃이다. 트라웃이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거둔 성적을 살펴보면 정말 ‘경이적’이라는 탄성 밖에 나오지 않는다. 트라웃은 지난 5년간 아메리칸리그 MVP 투표에서 두 차례 MVP로 뽑혔고 나머지 3번은 2위를 차지했다. 빅리거가 된 이후 가장 ‘못했던’ 시즌이 MVP 순위 2위였던 셈이다. 사실 2위를 한 3번의 시즌도 따져보면 그가 1위를 차지했어야 옳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5년간 트라웃이 기록한 WAR(Wins Above Replacement) 수치를 살펴봐도 이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다음 도표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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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WAR라는 통계는 트라웃이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현 시대 최고의 선수를 꼽으라면 트라웃과 함께 바로 거론되는 브라이스 하퍼(워싱턴 내셔널스)가 지난 2015년 타율 0.330, 출루율 0.460, 장타율 0.649에 42홈런, 99타점, 118득점이라는 신들린 성적을 기록했을 때 딱 한 번 근소한 차로 WAR 타이틀을 내줬을 뿐 그 나머지 시즌에선 메이저리그 최고선수의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뛴 첫 5년간 거의 한 해도 빠짐없이 리그 최고의 선수였다는 말이다.

트라웃이 어느 정도의 선수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와 거의 동시대를 뛰고 있는 두 명의 영 슈퍼스타 하퍼와 매니 마차도(볼티모어 오리올스)의 WAR 수치를 트라웃과 비교해 봤다. 트라웃(25)과 마찬가지로 하퍼(24)와 마차도(24)도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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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치를 놓고 보면 트라웃의 생애 통산 WAR 합계가 하퍼와 마차도의 수치를 합친 것보다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수치는 하퍼와 마차도가 능력이 트라웃의 절반도 못되는 선수라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하퍼의 지난 2015년 시즌이 말해주듯 이들은 충분히 트라웃을 능가하는 성적을 올릴 잠재력을 갖고 있는 장래의 명예의 전당급 선수들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트라웃의 경이적인 꾸준함이다. 하퍼와 마차도가 1~2점대 WAR를 기록한 시즌이 여기저기 있었던 반면 트라웃은 딱 한 번 하퍼의 ‘미친’ 시즌에 근소한 차로 2위로 내려간 것을 빼면 지난 5년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5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기복 없이 꾸준하게, 단순한 정상급도 아니고 압도적인 최정상을 지킨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전설적인 레벨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의 나이는 이제 겨우 만 25살이다. 앞으로 그가 어디까지 갈 지를 생각하면 탄성이 절로 나오는 수준이다.

사실 트라웃은 그동안 하퍼와 비교하면 꾸준함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지만 순간적인 폭발력에선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그런 트라웃이 올해 들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믿어지지 않지만 오히려 지난 5년보다 더 진화돼 꾸준함에다 가공할 폭발력까지 보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부터 11일까지 햄스트링 부상으로 5경기에 결장한 뒤 13일 경기부터 22일까지 벌어진 9경기에서 트라웃은 타율 0.384에 6홈런, 13타점과 OPS가 무려 1.686을 기록하는 신들린 맹위를 떨치고 있다. 현재 트라웃은 올 시즌 출루율 1위(0.466), 장타율 1위(0.757)로 OPS는 당연히 1위(1.223)을 달리고 있으며 홈런 2위(14), 타점 7위(34), 타율 7위(0.350), 득점 9위(31), 도루 9위(9) 등도 모두 리그 정상급이다. 이제 겨우 5월인데 빅리그 6년 만에 3번째 MVP를 예약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과연 지난 5년간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였던 트라웃이 올해 들어 정말로 예전보다 더 뛰어난 선수로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다음 도표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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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지금까지의 성적을 살펴보면 모든 수치의 차이가 너무도 뚜렷하게 올라가 있어 올해의 트라웃은 지난 5년간 메이저리그 넘버 1이었던 슈퍼스타 트라웃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선수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마지막 수치인 ISO(Isolated Power)는 타자의 파워를 측정하는 수치로 장타율에서 타율을 빼서 계산하는데 0.140이 메이저리그 평균이고 0.200 이상이면 최고의 슬러거로 분류된다. 그런데 그의 올해 ISO는 최고 슬러거 레벨의 두 배가 넘는 0.407에 달한다. 그의 지난 5년간 0.255보다도 훨씬 높다. 한마디로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수치들이다. 그가 때린 마지막 8개의 홈런은 모두 비거리가 400피트(122m) 이상이었고 그의 14홈런은 이미 그가 5월까지 기록한 생애 최고 기록인데 아직도 5월에 10경기를 더 남겨놓고 있다. 지난 2015년 기록한 자신의 생애 최다홈런기록(41)은 가뿐히 넘길 페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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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만(좌)과 함께 웃고 있는 트라웃./AFPBBNews=뉴스1


과연 그가 이런 어마무시한 페이스를 시즌 내내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꾸준함에 있어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레벨에 있었던 트라웃이기에 어쩌면 메이저리그 역사에 기록될 역사적인 시즌이 만들어 질수도 있다는 흥분감이 감돌고 있다. 미키 맨틀의 1956년, 칼 애스트렘스키의 1967년, 조지 브렛의 1980년, 배리 본즈의 2001년 시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라웃의 슈퍼시즌이 터질 수도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올해 트라웃과 지난 5년간 트라웃의 가장 뚜렷하게 감지되는 차이는 타석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방망이가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 2014년과 2015년 초구에 스윙확률이 10%에 불과하던 그가 올해는 초구에 25%나 방망이를 내고 있다. 과거 그가 타석 초반에 잘 스윙을 하지 않는 패턴을 이용해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간 뒤 유인구로 승부를 했던 투수들이 올해는 유인구를 사용할 찬스조차 별로 얻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그의 삼진비율은 올해로 3년째 계속 떨어지고 있다.

트라웃은 이미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다. 이미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최정상의 위치에 있던 그가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단계를 넘어 이처럼 오히려 더 뛰어난 타자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극강의 꾸준함을 넘어 또 하나의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그에게서 오직 하나 아쉬운 사실은 그의 소속팀 에인절스의 전력이 보잘 것 없어 올해도 그의 활약을 포스트시즌에서 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 뿐이다. 그는 지금까지 2014년 딱 한 번 포스트시즌에 나가봤고 그때 에인절스가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3연패로 탈락하면서 3경기에서 12타석에 나서본 것이 포스트시즌 경험의 전부다. 포스트시즌 성적은 12타수 1안타로 그 1안타는 홈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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