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어 와이낫?" 배정남의 긍정에너지(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6.0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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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남 / 사진=김휘선 기자


"안될 게 뭐가 있습니까. 슈어, 와이 낫?(Sure, Why not?)"

배정남(34)이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날, 한참 배꼽을 잡았다. 긍정의 에너지로 무장한 정 많은 의리파 사내의 이야기는 대사도 별로 없었으면서 막강한 존재감을 발휘했던 영화 '보안관'(감독 김형주) 속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쳤다. 촌스럽기 짝이 없는 오지랖 넓은 부산 아저씨들이 벌이는 엉성한 수사극을 담은 이 허허실실 코미디는 흥행에 성공하며 개봉 한 달이 훌쩍 지나서도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배정남은 에어컨 기사 춘섭으로 활약했다. 숨이 막힐 만큼 탄탄한 쫄티와 한껏 올려 입은 배바지는 모델 출신 패셔니스타의 스타일과 딴판이지만, 영화와는 기막히게 어우러졌다. 예능 대박에 이어 영화까지 흥행하면서 배정남은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됐다.

"'라디오스타'보다 인터뷰가 더 떨린다"며 마주앉은 배정남은 진한 부산 사투리가 녹은 말투 그대로 "'너는 딴 생각 하지 말고 너대로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한 걸 좋게 봐 주셨더라"라며 수줍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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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남 / 사진='보안관' 스틸컷



"원래 70~80%가 남자 팬이었거든요. 그런데 여자팬이 생기더라고요. 인스타 하면 댓글 당연히 확인 한 합니까. 보통 '형님 멋있어요' 하는데 '오빠' 하는 글이 보여요. 요즘엔 지나가다 저를 보는 분이 웃어요. 내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된 게 뿌듯하더라고요."

'보안관'에서 바다보다 넓은 오지랖을 발휘하는 것으로 모자라 '라디오스타' 녹화장에도 불쑥 나타나 '동생'들을 부탁하고 홀연히 떠난 선배 배우 이성민은 배정남에게 더욱 특별하다.

"제일 고마운 게, 연기 티칭도 많이 해 주시고 최근에는 오디션 가기 전에 대본을 읽어보라고 2시간 동안 맞춰주시고 그랬어요. 진짜 영광이고 감사하지 않겠어요. 오디션에선 떨어졌지만 되든 안되든 형님이 해준 것이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이성민 형님 자체가 든든하고 아버지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혼자 살아 티는 안 내도 제가 혹으로는 외로움을 많이 느낀 편이에요. 형님이 구수하시잖아요. 설날에도 혼자 있으니 떡국 먹으러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형수님이 한 상을 차려주셨어요. 정말 가족같더라고요. 저희 팀에선 제가 막내였는데 다들 삼촌이나 작은아버지 같았어요. 다들 예뻐해 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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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남 / 사진=김휘선 기자


'보안관'이 배우로서 배정남을 주목하게 한 작품이라지만, 사실 그는 모델로 이미 잔뼈가 굵다. 모델로는 단신인 177cm의 키지만 2002년 패션모델로 먼저 데뷔해 수많은 화보와 런웨이를 누볐다. 데뷔와 성장 과정 또한 드라마틱하다.

"어릴 적에 부산 옷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모델이던 김민준 형님이 모델 할 생각이 없냐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생각이 없었죠. 그런데 주위 형들이 '아니면 말고 해보라'고 해 일을 시작했어요."

마침 소개받은 소속사가 당시 강동원 이천희 임주환 등 장신의 꽃미남 모델들이 포진해 있던 더맨이었다. 그러나 키가 작다며 오디션도 보기 전에 탈락하는 일이 허다했고, 배정남은 오기가 생겼다. 마침 운 좋게 디자이너 송지오의 쇼에 설 기회가 생겼고, 배정남은 '마음대로 걸으라'는 주문에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모델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뽐냈다. 이국적인 외모에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모델이 등장하자 일본 사람인 줄 아는 사람들도 생겼다. 몇 달간 만든 몸과 강렬한 눈빛이 두번째 무대에선 더 주목받았다. 결국 그는 패션쇼 메인 모델이 됐다.

"그렇게 되니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게 되더라고요. 한동안 제 별명이 '호빗족의 희망'이었어요. 제 키가 177cm예요. 속인 적 없고요, 깔창도 안 씁니다. 사람이 당당해지요."

당시 인연을 맺은 강동원은 지금도 한 주에 두 번은 만나는 절친이다. 강동원도 연예계의 유일한 절친으로 주저 없이 배정남을 꼽을 정도. 배정남은 "처음 봤을 때 살다살다 그렇게 잘생긴 사람을 처음 봤다"고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서도 "같이 고생을 참 많이 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성민이 '작은 아버지'라면 강동원은 '작은 삼촌' 느낌이란다. '보안관'과의 인연도 강동원 덕에 시작됐다.

"작년 이맘때 강동원 형님이랑 텐트 치고 피크닉을 갔는데 거기서 만난 제작사 대표님이 '춘모라고, 말하면 깨는 캐릭터가 있는데 딱이네' 하시는 거예요. '좋지요' 했지만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 진짜 연락이 왔어요. 감독님 미팅 때도 강동원 형님이 대본을 보면서 하나하나 잡아줬어요. 엄청 도움이 되더라고요. 제가 캐스팅 되고 형님이 진심으로 좋아하셨어요. '보안관'이 잘 되고 하니 형이 더 흐뭇해 하더라고요. 이렇게 고마운, 잘 되면 빚 갚아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2008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이언(본명 박상민)도 그 중 하나다. 단돈 30만원을 들고 부산에서 상경한 배정남을 위해 같이 지내자며 반지하 자기 방을 선뜻 내줬던 고마운 형이다. 배정남은 "그 형에게 보답하지 못한 게 진짜 너무 한이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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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남 / 사진=김휘선 기자


위기의 시간도 있었다. 2005년께 주연을 맡기로 했던 드라마가 무산되고 의리로 함께하기로 했던 매니저가 도망가면서 좌절도 맛봤다. 원룸에 친구 다섯과 모여 살며 쇼핑몰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다행히 이는 그가 재기하는 버팀목이 돼줬다. 배정남은 "당시의 좌절이 저에게 큰 힘이 됐다"면서 "남들 겪을 것을 일찍 겪어 다행이었다. 돈 주고 못 하는 경험을 했다"고 도리어 웃었다. 모델 마르코와 관련한 폭행시비에 휘말려 억울하게 회자되며 일이 끊기는 경험도 했지만 "잘 살고 있는 마르코 형님에게 미안하다"며 도리어 민망해 했다.

택시강도를 직접 잡아 나라에서 주는 상을 받아 화제에 오르는 등 연기 외적인 화제를 몰고다니는 배정남이지만, 이젠 배우로서 더욱 도약하고 싶다. '보안관'에서 진짜 시골 느낌 나는 캐릭터로 반반한 모델 이미지를 깨뜨린 건 그 시작이다. 이미 2012년 독립영화 '가면무도회'에서 망사스타킹에 브래지어까지 착용하고 접객에 나서는 파격적인 캐릭터를 소화했던 그는 "그걸 해보고 나니 못할 건 없더라. 오히려 춘모는 노멀한 느낌"이라며 의욕을 드러냈다.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이고 싶었다. 내가 잘 하는 건 입지가 다져지면 그 때 하면 된다"는 배정남은 이제 '보안관' 이후를 준비하며 다시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중이라며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꾸밈없는 모습에 그 긍정의 기운이 전염되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슈어 와이 낫?" 배정남에게 안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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