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테임즈, 한국에서의 3년이 안긴 것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5.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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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테임즈 /AFPBBNews=뉴스1


“에릭, 테임즈 날려라~”

“에릭, 테임즈 날려라~”


“에릭, 테임즈 홈런, 오오오 오오오 오오오 오~”

KBO리그 NC 다이노스에서 활약할 당시 마산 창원구장 팬들을 열광시켰던 에릭 테임즈의 응원가가 마침내 그를 따라 태평양을 건너가 밀워키에 울려 퍼졌다. 밀워키 브루어스는 지난 10일(한국시간) 밀워키 밀러파크에서 펼쳐진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홈경기에서 테임즈의 KBO시절 응원가를 밀워키 홈팬들에게 선보였다.

그리고 테임즈는 이날 첫 타석에서 메이저리그 홈런 공동선두로 올라서는 시즌 13호 결승 투런홈런을 터뜨려 팀의 11-7 승리를 이끌며 자기 응원가의 미국 데뷔를 자축했다. 테임즈의 응원가는 미국인들도 바로 이해가 가능한 심플한 가사와 한 번 들으면 계속 귀에서 맴도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인해 현지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팬들은 물론 동료선수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4월 한 달 간 11홈런을 때려내며 맹렬하게 출발했던 테임즈는 4월말부터 9경기 연속 무홈런으로 다소 기세가 꺾인 모습을 보이다가 최근 12, 13홈런을 터뜨리며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러면서 미 언론 매체들의 그에 대한 관심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ESPN은 이번 주 보스턴과 밀워키의 시리즈를 맞으면서 주포 데이비드 오티스가 은퇴한 뒤 타격 부진으로 고민 중인 보스턴이 한때 그의 대안으로 테임즈를 검토하기도 했으나 결국 포기했었다는 일화를 소개했고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세이버 매트릭스 사이트인 팬그래프닷컴은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타자였던 테임즈가 한국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선수로 탈바꿈했는지를 테임즈와 직접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기도 했다. 이중 팬그래프에 실린 테임즈의 한국 시절 스토리가 매우 흥미로워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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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임즈의 타격./AFPBBNews=뉴스1


지난 2014년 NC와 계약해 경남 창원에서 살게 된 테임즈는 매일 보통 오전 11시 정도에 일어나면 자기 아파트에서 한동안 스트레칭을 한 뒤 점심식사를 위해 집을 나선다. 창원 구장에서 약 1마일 거리에 있는 아파트 인근에는 햄버거집과 이탈리아, 멕시칸 레스토랑 등이 있었다. 그는 대부분 혼자서 킨들이나 아이폰을 통해 기사를 읽으면서 혼자 점심을 먹은 뒤 걷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마산구장으로 일찌감치 출근했다. 아직 아무도 없는 구장에서 그는 약 30~40분 정도 타격 훈련을 한 뒤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남은 시간은 클럽하우스에서 책을 읽으면서 보냈다.

NC에서 뛰는 동안 테임즈는 미국인 동료선수가 두 명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왔기에 경기 후 그들과 어울리기는 힘들었고 한국에서 보낸 3년간 시간의 상당부분을 혼자서 보내야 했다. 그는 “다른 미국선수들은 모두 가족과 아이들이 있었다”면서 “지독히 심심했다. 한국말을 한마디로 못하는 내게 언어장벽은 정말 힘들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많았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그는 “그때 난 15타수 무안타의 슬럼프에 있어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남는 시간이 너무 많으니 그 문제를 풀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디오를 찾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뒤 일본에서조차 아무런 계약오퍼를 받지 못하고 한국으로 갔던 테임즈의 변신은 이처럼 차고 넘치는 혼자만의 심심했던 시간을 채우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됐다. 그는 책을 파고들었고 명상을 했다. 그는 “난 즐거움을 얻으려는 목적의 독서가 아니라 어떤 가치관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책을 읽기를 원했다”면서 그런 독서가 자신이 더 좋은 선수로 만든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에서의 첫 해인 2014년 시즌이 거의 끝나갈 무렵 테임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유투브를 뒤지다가 배리 본즈의 비디오를 찾아냈다. 지난 2001년 본즈가 그해 70호부터 73호 홈런을 치는 과정이 담긴 비디오였다. 본즈의 비디오는 많이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홈런을 치는 장면만 담겼고 테임즈가 원하던 본즈의 전체 타격과정이 모두 담긴 비디오는 거의 없었는데 이 비디오에는 그것이 포함돼 있었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본즈가 스트라이크 존 근처로 들어오는 유인구에 끌려가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중에서도 본즈가 당시 LA 다저스 소속이던 박찬호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신기록인 시즌 71, 72호 홈런을 터뜨리는 장면이 그의 시선을 끌었다.

테임즈는 “박찬호는 그에게 엄청나게 까다로운 체인지업을 던졌다. 스트라이크존 아래쪽에 꽂히는, 누구라도 스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피치였는데 본즈는 마치 그냥 ‘노’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그때 ‘도대체 어떻게 저런 공에 끌려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라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나는 스트라이크존에 대응하는 자세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볼이 (내가 노리는) 구역으로 올 때만 좋은 스윙을 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걱정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욕심내는 스윙으로 스스로 내 자신을 아웃시키는 일은 그만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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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임즈의 홈런 세리머니./AFPBBNews=뉴스1


테임즈는 “한국에 갔을 때 난 예전과 똑같은 타자였다. 홈런을 쳐야 한다고 생각해 땅에 떨어지는 슬러이더 3개에 잇달아 헛스윙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첫 해에 37홈런을 때렸지만 125게임에서 삼진도 99회나 당했다. 한국에 오기 전해인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삼진비율은 30%에 달했다.

더구나 그가 엄청난 파워를 지녔지만 아무 볼에나 쉽게 스윙을 한다는 약점을 간파한 한국 투수들이 그와의 정면승부를 피하고 대신 유인구를 던지기 시작했다. 테임즈도 달려져야만 했다. 그는 어두운 자신의 아파트 안에서 본즈의 ‘3.5인치 존’ 타격 방식을 시도하고 따라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태블렛 PC를 테이블 위에 놓고 투구를 보면서 볼이 홈플레이트를 향해 어떻게 들어오는 지를 관찰했고 머리 속으로 피치를 그리면서 스윙을 할지, 아니면 그냥 볼을 보낼지를 순간적으로 결정하는 훈련이었다. 팀 동료들과 베팅 케이지에서 타격할 때도 같은 시각훈련을 계속 했다.

배트를 손에 들고 머리로 투구를 그리면서 스윙을 하는 훈련도 했다. 그의 창원 아파트는 넓고 천정이 높은데다 특히 바닥에 카펫이 아니라 하드우드(나무)가 깔려 있어 아파트 안에서도 스윙을 할 수가 있었다. 그는 “카펫 바닥에서 계속 스윙을 하면 카펫이 찢어지는데 나무 바닥이어서 운이 좋았다”면서 “아파트 안에서 정말 많은 드라이 스윙(볼 없이 그냥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메이저리그에 온 지금도 베팅 케이지나 대기타석, 호텔방을 가리지 않고 이런 시각훈련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노력의 결실은 한국에서 2년차인 2015년에 나왔다. 그는 출루율 0.497과 OPS 1.288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볼넷(103) 수가 삼진(91) 수보다 많았다. 홈런은 47홈런을 때렸고 도루도 40개를 기록해 KBO 사상 최초의 ‘40-40’ 대기록도 세웠다.

테임즈는 자신의 프리-스윙 루틴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가 스윙을 하려고 손을 모으고 발을 내딛지만 실제로 스윙을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난 이 자세를 반복하면서 계속 자신에게 ‘스트라이크인가’를 묻는다”면서 “이런 훈련을 하다보면 경기 도중에 정말 놀랍게도 내 몸이 무의식적으로 그 습관을 따라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몸 쪽으로 떨어지는 볼이 올 때 계속 ‘볼, 볼, 볼’을 생각한다. 이런 식의 정신적 준비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공개했다.

테임즈는 올해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볼에 대한 스윙비율이 17.6%로 현재까지 규정타석을 채운 모든 메이저리그 선수들 가운데 가장 낮다. 그가 한국으로 가기전인 2012년과 2011년엔 그 비율이 두 배가 넘는 35.6%와 36.8%였다. 완전히 달라진 타자가 된 것이다.

테임즈는 올해 초 신시내티에서 홈런을 친 기억을 소개했다. 신시내티의 왼손 강속구 투수 완디 페랄타를 상대로 그는 강속구를 노리지 않았다. 대신 어느 지점으로 볼이 들어오느냐에 집중했다. 페랄타는 그에게 첫 3구를 슬라이더로 던졌고 그중 두 개를 헛스윙해 볼카운트 원볼 투스트라이크가 됐다.

불리한 볼카운트였지만 테임즈는 여전히 빠른 공을 노리지 않았다. 대신 로케이션(위치)에 집중했다. “내 손 쪽으로 96마일짜리 강속구가 날아왔는데 곧바로 정통으로 받아쳤다”면서 “(내 자신도) 너무나 놀랐다. 그 피치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는데 몸이 저절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난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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