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제 감독이 전하는 스포 가득한 '특별시민' 뒷이야기(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4.28 10:53 / 조회 : 6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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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제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2011년 '모비딕'을 내놓은 지 6년이 흘렀다. 박인제 감독은 새로운 영화 '특별시민'으로 돌아왔다. '모비딕'이 거대 권력과 맞서 싸운 기자의 이야기였다면 '특별시민'은 거대 권력이 되려는 사람의 이야기다. '모비딕'이 대리 만족 시키는 사이다 같은 영화였다면, '특별시민'은 적나라한 현실로 관객을 밀어넣는 고구마 같은 영화다. 그는 왜 권력 안의 이야기로 파고 들어갔을까?

'특별시민'은 3선을 노리는 서울시장 변종구의 선거전을 그린 영화다. 26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 중이다. 박인제 감독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이 인터뷰는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모비딕' 이후 '특별시민'까지 6년이 걸렸는데. 그간 어떤 작품들을 준비했는가.

▶'빅클락'이란 50년대 하드보일드 소설이 있다. 미국에선 '노웨이 아웃'이란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거대 언론재벌의 여인과 탐정잡지 편집장이 밀회를 하다가 그 여인이 죽자 편집장이 살인범으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준비하다가 잘 안됐는데, '특별시민'과도 궤를 같이 한다. 거대 언론재벌을 서울시장으로 바꿨다고 할까. '모비딕'이 권력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특별시민'은 권력 이야기다. 그렇게 관심이 끌려 가는 것 같다.

-왜 서울시장 선거인가. 대선이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대선에 관한 영화는 할리우드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 한국에서 대선으로 영화를 만들면 좀 더 가짜 같아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가장 주목도가 높고, 늘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서울시장 선거를 하면, 현실에 뿌리를 디디면서도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글 제목이 '특별시민'인데. 영어 제목은 'Mayor'고. 시민과 시장의 간극이 꽤 큰데.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시민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사실 특별시라는 용어 자체가 영어로 설명이 힘들다. 일본에서 넘어온 개념이라. '스페셜 시티즌'이라는 아이디어 등 별의별 말들이 나왔다가, 그냥 시민에서 시장으로 정리하면 뜻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최민식이 맡은 서울시장 역의 이름이 변종구인데. 상대 후보인 라미란 이름은 양진주이고. 지독한 권력욕을 갖고 있는 주인공 이름을 변종구로, 상대 후보를 양진주로 한 까닭은. 영화 안에 "선거는 똥 속에서 진주를 캐는 것"이란 대사가 있기에 변과 양진주, 둘 다 상징하는 바가 있을 것 같은데. 변은 똥, 양진주는 가짜 진주 같기도 하고.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변종구는 무조건 성은 변씨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진주는 그 나이 또래에 유행하면서도 기억에 박히는 이름을 찾았고. 시나리오 쓸 때 이름 만드는 게 늘 어렵다. 그래서 뉴스를 볼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울림 있는 이름이 있으면 늘 메모장에 저장을 해놓는다. 그런 식으로 이름을 지었다.

-"약점 잡힌 놈이 잘한다" "선거는 똥에서 진주를 캐는 것" 등 인상 깊은 대사들이 많은데.

▶이름들처럼 평상시 인상 깊은 문장을 접하면 늘 메모한다. 그렇게 탄생한 대사들이다.

-심은경이 맡은 26살 선거 전문가 박경은 원래 남자 역할이었는데.

▶그렇다. 원래 이름은 박일이었다. 염두에 둔 남자배우가 있었는데 다른 영화 스케줄 때문에 무산됐다. 그 배우가 아니면 굳이 그 배역이 남자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예 성(性)을 바꾸는 다른 방식을 생각했다.

-선거전을 그리는데, 상대 진영과 전략과 싸움을 그리는 선거전 이야기가 아니다. 최민식이 맡은 변종구 이야기로만 집중하는데. 선거전이 더 장르적이고, 그렇지 않다 보니 후반에 갈수록 호흡이 느려지는데.

▶맞다. 선거전 이야기가 더 장르적이다. 느려진다는 지적도 맞다. 그래도 더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 '귀여워'를 만든 김수현 감독님과 만나서 "왜 영화를 안 만드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김 감독님이 "영화는 영화적 스킵이 있는데, 요즘 영화들은 너무 논리적이어서 재미가 없다"고 하시더라. 현실이란 게, 그리고 영화적 현실이란 게, 앞뒤가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그런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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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제 감독(모니터 앞 모자 쓴 사람)과 최민식, 심은경, 곽도원/사진출처=특별시민 스틸


-최민식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탁월한 연기자이긴 하지만, 영화가 최민식에 집중하다보니 쉴 틈이 없는데. 그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데. 마지막 최민식 클로즈업은 명 연기지만 사족 같기도 하고. 오히려 앞의 장면인 심은경으로 끝나는 게 더 적합하지 않나 싶기도 한데.

▶'친절한 금자씨'를 보면 최민식이 몇 장면 등장하지 않는데도 강렬함을 더하지 않나. 최민식은 그런 배우다. 권력을 탐하는 남자로 최민식을 선택한 만큼, 그걸 피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처음부터 그렇게 끝내야 한다고 결정하고 시작한 것이다. 아쉬울 순 있지만 그래야 변종구의 이야기로 막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별시민'은 변종구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는 심은경이다. 화자를 정치에 참여하는 26세 여성으로 선택한 건 이유가 명확한데. 그렇기에 심은경의 마지막 선택에 관객의 호오가 갈릴 수도 있고, 그렇기에 심은경의 선택이 중요했는데.

▶관객이 심은경의 선택에 동화되기 보다는 관객이 심은경의 선택에 대해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심은경에게 열변을 토하지도, 울지도 말고, 중간 즈음의 감정을 요구했다. 그 감정과 그 선택을 보면서 관객이 정치를, 선거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랐다.

-최민식 캠프의 광고전문가가 심은경이고, 라미란 캠프의 광고전문가가 류혜영이다. 둘은 여러모로 대비되는데. 둘이 만나는 장면도 원래 있었는데 왜 편집했나.

▶TV토론 장면에서 둘이 서로를 의식하며 노려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선택의 문제였다. 시간의 문제고. 선거 지원단으로 나오는 박병은 같은 경우는 대사들이 모두 짤리기도 했다.

-마지막 부분에 변종구 사무실로 들어가는 사람이 현재는 기자 역인 문소리인데. 원래는 상대 캠프의 선거 전문가인 류혜영이었는데. 왜 바꿨나.

▶TV토론 장면을 촬영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이야기가 더 쌓여야 했는데, 그 선택이 기자여야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민식의 정치 파트너로 나오는 곽도원 연기는 매우 좋았다. 그렇지만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란 것도 그렇고 많이 익숙한데. 사실 곽도원도 처음에는 그래서 고사했다가 최민식의 설득으로 참여했는데.

▶'범죄와의 전쟁'도 그렇고, '변호인' '아수라'까지 곽도원의 강한 연기가 사람들에게 각인돼서 클리셰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걸 버리고 굳이 피해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또 내 입장에선 같은 연기가 아니다. 무엇보다 촬영팀이 곽도원의 액팅을 좋아했다. 같은 전화를 받는 장면이라고 해도, 곽도원이 전화를 받을 때는 어떻게 받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촬영팀이 그의 액팅을 따라가고 기대하고 박수를 쳤다.

-최민식을 비롯해 곽도원, 라미란, 문소리 등등 출연배우들이 명연기 퍼레이드를 한다. 연기 보는 맛이 명확한 반면 전부 '나가수'처럼 3단 고음을 시전하다보니 쉴 틈이 없기도 한데.

▶그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그 연기들을 안 보게 하는 건 오히려 무책임한 게 아닌가 싶다. 배우들에게 최대한 현실에 발을 붙인 연기를 요구했다. 캐스팅 자체가 명확한 색깔을 필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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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제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카메라 활용법이 매우 좋다. '명량' '터널' '끝까지 간다' 등을 한 김태성 촬영감독이 참여했는데. 카메라의 상하 구도로 권력의 위계를 구분하고, 광장은 넓게 넓게 평면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러다가 내밀한 이야기에는 좁게 들어오면서도 거리를 두는데. 각 인물마다 감정을 대입시킬 수 있게 한 아나모픽 렌즈 사용도 적합했고.

▶가급적 클로즈업을 배제하고자 했다. 후반에는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땅겼지만, 다른 영화 클로즈업이 얼굴이라면 '특별시민'은 바스트가 클로즈업이라고 생각하자고 김태성 촬영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감정이 깊어지면 클로즈업으로 무조건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 영화와 TV드라마는 클로즈업이 전하는 감정이 다른데, 그렇게 영화에서 클로즈업을 남발하면 관객들에게 감정을 강요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거리감을 두는 게 '특별시민'의 톤앤매너라고 생각했다.

-선거 사무소 세트가 절묘하다. 위층과 아래층, 권력구도가 명확하고 카메라 동선 위치까지 계산이 됐다. 실제 선거 사무소와는 다를텐데.

▶독일 메르켈 총리 선거 캠프를 참고했다. 좀 다르긴 한데 2층으로 돼 있더라. 그걸 참고해 권력에 대한 은유를 하고 싶었다. 자발적으론 못 가고, 부르기 전에는 위로 갈 수 없는 구조. 2층 곽도원 사무실 창을 가만히 보면 최민식의 눈이 있다. 사무실 밖에 드리워진 최민식 포스터 중 눈이 곽도원 사무실 창문에 놓여있는 셈이다. 그렇게 은유에 상징을 더하려 했다.

-USB가 결정적인 역할로 쓰인다. 기획할 때는 USB가 그런 식으로 쓰인 영화들이 별로 없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이에 다른 영화들에서 USB를 증거로 많이 활용하면서 신선함이 크게 줄었는데.

▶'내부자들'을 보고 시나리오를 고쳐야 하나란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답이 없더라. 어쩔 수 없는 '특별시민'의 운명인 것 같다.

-주요 설정 중 하나인 도청은 현실이 영화적 상상력을 압도하다보니 아쉽던데.

▶그렇다. 요즘 현실이 워낙 엄청나니, 현실을 이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곽도원이 중간에 갑작스럽게 퇴장한다. '특별시민'은 상대인 라미란과의 싸움이라기 보단, 내부의 곽도원과 싸움이기도 한데. 가장 극악한 인물을 갑작스럽게 퇴장시키니 후반에 힘이 빠지기도 하는데.

▶맞다. 구멍이다. 심혁수(곽도원)를 죽이느냐 마느냐가 이 이야기의 큰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이 인물의 의도치 않은 죽음을 변종구란 인물이 어떻게 대처하는 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의 안위보다는 자신에게 그 사건이 어떤 영향을 줄지를 계산하는 모습. 그게 있어야 마지막 최민식 상추 장면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곽도원이 맡은 심혁수 의원은 구두에 집착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남자가 구두에 집착한다는 설정이 이채롭던데.

▶구두에 집착하고, 그 구두에 깔려죽는 걸로 그리고 싶었다. 욕망에 의해 죽는 모습을 담으려 했다.

-대선 정국이다보니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현실 정치인과 비교하게 되는데.

▶일부로 그 누구도 연상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래야 그 인물들을 관객이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어떤 현실 정치인도 대입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게 정치적인 환멸을 갖고 올 수도 있지만,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가 중요한지를 묻고 싶었다.

-음악의 중단이 절묘하다. 배우들의 연기에 빠지다보면 어느 순간 음악이 사라지는 듯 하다. 실제로 음악을 줄이면서 아예 없앤 장면들도 많고.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하면 음악이 오히려 감정을 전달하는 데 도움을 못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음악감독님과 음악이 방해되지 않도록 줄이고 줄이자고 이야기했다.

-첫 장면, 서울시장 관사로 들어가는 최민식과 군인들의 장면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데.

▶1회차 때 찍은 장면이다. 동이 트는 매직타임을 담기 위해 새벽3시에 모두 집합했다. 인왕산을 올라가며 찍었다. 오랜만에 현장이고, 첫 촬영이라 긴장도 많이 됐다. 여러 상황도 생각했는데 찍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동이 트는 시간이 넘어가니깐.

-결국 '특별시민'은 현실정치를 엿보는 관음증 같은 이야기인데.

▶영화는 꿈이기도 하고, 보기 싫은 내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이기도 하다. 또는 보고 싶은 내 모습을 보는 것이기도 하고. '특별시민'으로 그런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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