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싱글A→빅리그' 단 3개월..앤드루 톨스 이야기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4.14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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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의 승리요정 앤드루 톨스./AFPBBNews=뉴스1


LA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가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나흘동안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3게임 시리즈로 맞붙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에서 충돌했고 올해도 또 거기서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은 두 팀답게 시리즈 내내 팽팽한 승부가 펼쳐졌다.

지난 11일 벌어진 1차전에선 컵스가 2-2로 맞선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앤서니 리조가 다저스 마무리 켄리 잰슨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터뜨려 짜릿한 3-2 승리를 따냈다. 하루를 쉬고 13일에 벌어진 2차전에선 다저스가 2-0 승리로 응수, 이날 다이아몬드 108개씩이 박힌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받은 컵스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다저스는 경기 시작과 함께 터진 1회초 1번타자 앤드루 톨스의 좌월 솔로홈런으로 리드를 잡은 뒤 선발 브랜든 맥카시(6이닝 4안타 무실점)와 불펜투수 3명이 합작해 컵스 타선을 영봉시켰다. 14일 벌어진 3차전은 류현진이 나섰지만 시즌 두 번째 등판에서도 아웃카운트 하나 차로 5회를 마치지 못했고 다저스는 타선마저 침묵을 지키면서 0-4로 패해 시리즈를 내줬다. 류현진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상대가 최강팀인 컵스고 시즌도 아직 시작단계인 만큼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컴백의 단계를 밟아나간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저스에서 이번 시리즈에서 유일한 승리를 따낸 2차전에서 선제 결승홈런을 터뜨린 다저스의 1번 타자이자 좌익수 톨스(24)의 존재가 눈에 띈다. 전혀 풀리지 않았던 경기를 승리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만들어낸 준 선수였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리 구단 내 유망주 명단을 줄줄 꿰고 있는 다저스의 광팬이라고 해도 지난해 이맘때쯤엔 톨스가 누군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톨스란 이름은 아예 다저스 유망주 명단에 올라 있지도 않았기에 그 누구의 레이더에도 잡힐 수가 없었다.


지난 2015년 한 해동안 야구계를 떠나있었던 그는 그해 9월 말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한 선수다. 그리고 지난해 4월 다저스의 싱글A팀인 랜초 쿠카몽가에서 시즌을 시작, 단 3개월 만에 싱글A, 더블A, 트리플A를 거침없이 통과해 7월초에 빅리그에 입성했고 또 3개월 뒤엔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0.364를 기록한 다저스의 주축타자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시즌을 싱글A에서 출발한 무명의 선수가 3달 뒤엔 메이저리그까지 오르고, 6달 뒤엔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한, 그야말로 믿기 힘든 초고속 승진이었다. 시작부터 구단의 주목을 받는 초특급 유망주였다면 모를까 톨스처럼 철저한 무명이 그런 사건을 만들어낸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겐 과연 어떤 스토리가 숨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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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톨스./AFPBBNews=뉴스1


사실 톨스에게도 ‘유망주’로 주목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지난 2012년 신인 드래프트 때 3라운드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에 지명됐다. 당시 그를 뽑은 탬파베이의 단장이 현 다저스의 사장인 앤드루 프리드먼이었다. 톨스는 이듬해인 2013년 싱글A에서 121경기에 나서 타율 0.326과 함께 무려 62개의 도루를 뽑아내 탬파베이 구단의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기대가 높아지면서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과 부담감으로 인해 ‘불안 장애’(Anxiety disorder)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불안 장애는 경기장 안에서의 퍼포먼스는 물론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태도 문제’로까지 비화됐고 결국 그는 2014년 52경기에만 나선 뒤 2015년 시즌을 앞두고 방출됐다. 방출의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부상도 없이 개인적인 사유로 두 달을 쉬면서 단 52경기밖에 뛰지 않은 것과 그의 2014년 성적이 바로 방출될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비춰볼 때 태도 문제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의 부친인 알빈 톨스는 풋볼(미식축구) 스타 출신이었다. 1985년 NFL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뉴올리언스 세인츠에 지명된 알빈은 NFL에서 4년을 뛴 뒤 무릎부상으로 은퇴했고 이후 장거리 화물운송 트럭 드라이버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평소에 아들에게 “인생을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해온 그는 2015년 시즌 개막전 탬파베이에서 방출된 뒤 집에 돌아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던 앤드루에게 그해 6월 자기와 함께 앨라배마에서 캔자스,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를 도는 장거리 여행에 함께 가자고 말했다. 거대한 트레일러를 끄는 트럭을 몰고 수 십 여일에 걸쳐 수천마일을 운전하며 냉장식품을 배달하고 그동안 고속도로변에서 먹고 자야하는 고된 삶의 강행군을 하다보면 아들이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적중했다. 앤드루는 수 십 여일 밤을 트럭 안에서 떨면서 잠을 자고 휴게소에서 샤워를 하는 힘겨운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런 직업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지만 내게는 맞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야구)을 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애틀랜타 집에 돌아온 뒤 그해 여름을 온통 체력단련과 배팅 케이지에서 보냈다. 또 비디오로 자신의 스윙을 분석하는 것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며 야구에 복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의 어머니이자 학교 선생님인 비키는 “뭔가를 해야지 집에서 놀고만 있어선 안된다”면서 계속해서 그에게 직장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결국 톨스는 인근 쇼핑센터의 크로거 그로서리마켓에 취직을 했고 냉동식품 파트에 배정됐다. 그의 근무시간은 새벽 4시에 시작됐다. 아침형인 아닌 그에겐 또 다른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는 “너무 힘들었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야하는 것은 물론 매일 낮에는 잠을 자야 했다”면서 “이것도 내가 할 일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래도 톨스는 힘겨운 시급 7불50센트(8,500원)짜리 직장을 때려치우지 않고 계속 다녔고 그것은 그때까지 그의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태도에 익숙해져 있던 가족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줬다. 그가 마침내 철이 들었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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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톨스./AFPBBNews=뉴스1


그리고 그가 새 직장에서 채 한 달도 지나기 전에 훨씬 더 매력적인 잡 오퍼가 들어왔다. 다저스의 마이너리그 선수 개발 총괄책임자인 게이브 케플러가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 다저스의 교육리그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어온 것이다. 탬파베이 시절 호타준족의 유망주였던 톨스를 기억한 케플러는 톨스가 당시의 커리어를 중단시켰던 문제가 해결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탬파베이 시절 톨스를 직접 뽑았고 그를 잘 알고 있던 프리드먼 사장은 기꺼이 그에게 마이너리그 계약을 내줬다.

세컨드 찬스를 얻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 톨스는 2016년 싱글A에서 출발한 이후 펄펄 날았다. 싱글A에서 첫 22경기 동안 타율 0.370을 기록한 톨스는 바로 더블A 털사로 승격, 43경기에서 타율 0.314에 13도루를 기록했고 곧이어 트리플A 오클라호마시티에서 17경기 동안 타율 0.321을 친 뒤 다저스의 콜업을 받는 전광석화 같은 승격행진을 이어갔다. 4월초 싱글A에서 출발, 7월8일 샌디에고 파드레스전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딱 석 달이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2루타를 때리며 출발한 톨스는 8월말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경기에서 팀이 6-8로 뒤진 9회초 2사 후 역전 결승 만루포를 쏘아 올리는 등 정규시즌 48경기에서 타율/출루율/장타율 0.314/0.365/0.505에 3홈런, 16타점, 19득점으로 WAR 1.4를 기록하며 다저스가 4년 연속 NL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는데 스파크플러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또 플레이오프에서도 11경기에 출장, 타율 0.364에 2타점 6득점을 올리며 다저스의 확실한 주전급 선수로 입지를 굳혔다.

모든 외야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톨스는 올 시즌 안드레 이티어가 허리부상 재발로 결장한 사이 다저스의 플래툰 왼손타자 외야수, 주로 좌익수로 나서고 있다. 또 그는 선발로 출장한 경기에서 거의 모두 1번 타자로 나서고 있다. 그가 2013년 무려 62개의 도루를 기록한 사실은 그의 출중한 도루 능력을 말해주고 있지만 그는 지난해 딱 두 차례 도루를 시도해 한 번 성공한 것에 그쳤고 올해도 첫 8경기에서 아직 도루 시도조차 없는 등 아직까지는 그 능력을 활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를 합친 생애 통산 타율이 0.309, 출루율이 0.349에 달하는 톨스가 본격적으로 도루에 나서기 시작한다면 다저스는 오랜만에 확실한 도루 능력을 갖춘 선두타자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는 또 슬러거는 아니지만 컵스와의 2차전에서 거센 바람이 홈 플레이트 쪽으로 몰아치던 밤에 강풍을 뚫고 총알처럼 라이트펜스를 넘어간 선제 솔로홈런으로 결승점을 뽑아낸 것이 보여주듯 무시할 수 없는 파워까지 갖고 있다.

톨스는 탬파베이 시절 겪었던 어려움이 이 같은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불안 장애 증상을 약물치료와 상담으로 극복한 그는 “내 증상은 10대 후반~20대 초반 때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것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면서 “이젠 내게 성공에 대한 걱정은 문제가 아니다. 이제 난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구나 자신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게 마련”이라면서 “난 그저 팀의 또 다른 선수 중 한 명일 뿐”이라면서 자신의 급부상에 대해 흥분하거나 들뜨지 않는 자세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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