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인으로 살다가 하늘로 돌아간 故김영애를 기리며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4.1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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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사진=임성균 기자


2006년 11월쯤이었습니다. KBS 2TV 드라마 '황진이'를 보던 중이었죠. 김영애가 새하얀 옷을 입고 곱게 춤을 추다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흘러나왔습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배우의 절절한 심경이 브라운관 너머로 전해졌습니다.

타이틀롤인 하지원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김영애 선생님 연기에 눈을 뗄 수 없다"고 말이죠. 그전에도 그 후에도 배우가 TV에서 연기하는 걸 보고, 당사자도 아닌, 같이 연기하는 동료에게 그렇게 연락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하지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하지원도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던 중"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심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같은 감동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한밤중 뜬금없는 문자에, 답 문자도 아닌 전화를 했겠지요. 오열하지도 않고, 폭발하지도 않고, 고운 선을 담담하게 흩날리면서, 그렇게 감정을 뒤흔들 수가 있다는 걸, 같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김영애를 기억하는 모습이 다 다를 것입니다. 오랜 세월, 정말 다양한 모습들로 시청자와 관객을 찾았던 분이니깐요.

저에겐 김영애는 '황진이'의 백무로 한동안 기억됐습니다. 그랬던 김영애를 가까이에서 다시 본 건, 영화 '변호인' 때였습니다. 2013년 11월29일 기자시사회 때였습니다. 나중에야 '변호인'이 천만명이 넘게 관람했지만, 기자시사회를 할 때만 해도 다들 어떤 긴장감에 쌓여있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하면서 기자간담회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자 대신 "그분"이나 "특정인물"이란 표현을 썼으니깐요. 나중에 송강호에게 들었더니 아무도, 누구도, 그렇게 하자는 이야기를 안 했는데 돌아보니 다들 그렇게 이야기했더라고 했습니다. 그 광경을 "'변호인'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당시 김영애는 송강호 옆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배우들에게 "영화에 출연하면서 혹시 모를 불이익을 걱정하지는 않았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다들 당당하게 답을 했습니다. 오달수는 "누가 우리에게 불이익을 줄까,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곽도원은 "저는 (나쁜 역이니깐) 이 중에서 가장 불이익을 덜 받지 않을까 싶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들 속에서 김영애가 가장 솔직했습니다. 김영애는 "사실 일말의 불안함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심경을,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리라 생각됐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의 감동과 연기 변신을 하고 싶어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보통 배우들은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작품을 해도, 딱히 연기 변신을 시도한 건 아니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원래 갖고 있었던 걸 끄집어냈을 뿐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김영애는 달랐습니다. 출연배우들 중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연기를 오래 했건만, 가장 솔직하게, 연기 변신을 하고 싶어서 출연했다고 말했습니다. 연기와 자신의 삶에, 그렇게 솔직한 사람 만이, 그렇게 담담하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변호인'은 '해를 품은 달'이 끝난 뒤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은 뒤 출연을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던 사람이 그 다음에 했던 선택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연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건 결코 아닐 것입니다. 김영애는 '해를 품은 달'을 찍을 때도 투병 사실을 숨기고 종영 이후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유작인 KBS 2TV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찍을 때는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증을 끊어가면서 연기를 했습니다. 연기를 할 때 약을 먹으면, 몽롱해져서 제대로 연기를 못하니, 일부러 안 먹었다고도 합니다.

2017년 4월 9일 김영애가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1971년 데뷔한 이래 46년간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든 뒤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고인은 생전에 영정 사진과 수의로 입을 한복을 고르고 장례절차도 정했습니다. 죽고 사는 건 하늘의 뜻이지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김영애는 배우로서 마지막까지 살다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저에게 김영애는 새하얀 옷을 입고 춤을 추다가 하늘로 돌아간 백무입니다. 예인으로 마지막까지 연기혼을 불태우다가 하늘로 돌아간 사람입니다. 연기혼을 불태운다는 말은, 김영애이기에 적합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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