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길이 말하는 #어느날 #내려가기 #깔창 #인생연기(인터뷰)

영화 '어느날' 김남길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4.0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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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김남길 인터뷰 /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남자는 아내를 잃었다. 하지만 살아내야 한다. 그러려면 아내를 잃은 바로 그 병원에 가야 한다. 보험사 사고조사관인 그가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다시 찾은 그 곳에서 뜻밖의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자신이 남자가 만나려던 혼수상태 환자라고 한다. 그것이 진심임을 안 순간 남자는 기절한다.


김남길(36)이 그 남자 강수가 됐다. 어찌할 도리 없는 내상을 입은 남자가 받는 뜻밖의 치유가, 또 뜻하지 않은 선택이 '어느날'(감독 이윤기)이란 영화에 담겼다. 그는 초대형 재난 속의 작은 영웅(판도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한 형사(무뢰한), 속없는 허당 산적 우두머리(해적:바다로 간 산적) 등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다채로운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더 내려두고 더 비워내기에 가능한 변화들이다. 직접 보면 더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김남길은 너스레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내려놓을수록 더 깊어지는 고민에 대해서도 결국 털어넣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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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김남길 인터뷰 /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영화는 어떻게 봤나.


▶슬플 줄 몰랐는데 그런 분들이 많으시더라. 관객이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다. 이윤기 감독 영화 중에 제일 상업적이고 관객이 제일 많이 들지 않을까. 저도 감독님 전작과 너무 달라 의아하긴 했다. 본질적인 건 바뀌지 않았지만, 이를 어떻게 푸시려나 궁금증이 일더라. 감독님 본인도 편하게 풀어가면서 쉽게 다가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독립영화로는 큰 예산이지만 상업영화로는 넉넉지 않아 막히는 부분들을 상의할 시간이 적었다. 일단 촬영에 나가면 계획한 분량을 다 찍고 돌아와야 하는 식이다. 감독님도, 저도 스트레스가 컸다.

-혼자에게만 보이는 영혼을 가정하고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엔 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직업 이야기가 아니니까 보험조사원이란 직업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봤듯이 판타지 같은 장치라고만 생각하고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강수가 겪고 있는 일을 누구나 겪을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둘이 연기하다 혼자 연기하며 다시 촬영을 하니 템포가 늦어지고 어렵더라. 자꾸 오버하게 돼서 시간이 걸렸다. 과장돼 보일까봐 고민이 많았다.

-애드리브는 없었나?

▶애드리브는 때에 따라 한다. 예전에 애드리브 많이 하는 선배가 혼나는 걸 본 적이 있어서.(웃음) 천우희씨는 애드리브를 하면 당황할 법도 한데 유연하게 받는 걸 보며 '센스가 좋구나' 했다. 장난기가 발동하기도 하고 '더 세게 해야 하나' 생각도 들더라. 편하게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애드리브를 했더니 감독님이 '컷' 하고 자르시기도 했다. 우희씨 손에 떨어진 빗물이 손을 통과하는 걸 보고 기절하는 신도 애드리브인데, 사실 또 그렇게 찍으려고 한 건 아니다. 과해서 욕먹으려냐 했는데 감독님이 '이 정도는 괜찮아' 하시더라. 흔쾌히 오케이 해 주셔서 의아했다. 놀라서 도망가다가 깔창이 빠지는 신도 그렇다. 신발이 잘 안 벗겨져서 깔창을 넣고 찍었다. 감독님이 '깔창은 지워줄게' 그러셨는데 그냥 나왔다. 그냥 그대로 웃음을 주고 싶으셨다더라. 그런데 와이프가 죽었는데 깔창을 챙긴다는 게…. 아, 내 무덤을 판 건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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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김남길 인터뷰 /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실제 김남길이 극중 강수처럼 영혼을 보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면 어땠을까.

▶'모던보이' 찍을 당시 양수리 세트장에서 증명되지 않은 뭔가를 본 적이 있다. 거기가 원래 귀신이 많이 나온다는 곳이었다. 당시 담담했고 그런 걸 안 무서워하는 편인데도 온 몸에 닭살이 확 돋더라. 머리가 쭈뼛 섰다. 그런 존재를 만났을 때 느끼는 다른 게 있더라.

평소 종교적인 것과 상관없이 그런 존재가 있다고 막연히 믿고 있었고, 누구나 한번쯤 경험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옛날 만화 '오 나의 여신님' 같은 판타지를 보면서 나에게도 귀신 여자친구가 있으면 하는 상상을 했다. 상상만으로 소름끼치는 일이지만 또 지나고 나면 그들만의 사연을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천우희와의 만남은 어땠나. 마치 형제 같았다고 하는데.

▶첫 만남에 우희씨가 '추리닝'을 입고 왔다. 그 때부터 '너도?' 하는 느낌이었다. '너도 추리닝을 아는구나' 하는 기쁜 마음이랄까. 평소 추리닝을 입고 다니는데 '나를 무시하나, 예의가 없나' 하시는 분도 있다. 우희씨가 추리닝을 입고서 '촬영 때 캐릭터에 맞는 옷을 입고 표현한다면 평상시에는 편안해야 하고…' 이런 제가 하던 핑계들을 직접 이야기해주시는데.(웃음)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 하면서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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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의 김남길 / 사진=스틸컷


-아내를 잃은 남자의 상실감을 그렸다. 참고한 것이 있다면.

▶그저 받아들이려고 했다. 아직은 가까운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없다보니까 그 때를 상상해야 했다. 노래의 힘을 많이 빌렸다. 특히 이지훈 형의 '왜 하늘은'을 많이 들었다. 가사가 딱 우리 영화와 맞더라. '왜 하늘은 널 데려가는지~~~'(양 손을 흔들며 노래)

아픔이 있다 해도 일상적일 거라 생각했다. '판도라'에서의 울음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꺽꺽거리는 게 아니라 감정을 토해내는데도 소리내서 못 운다. 울어서 속이 시원해진 적이 없고 미안하니까 자꾸 손을 모으게 된다. 계속 노래를 들으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무겁고 남성적인 캐릭터를 그간 많이 맡았고, 그런 이미지도 강했다. 실제와는 분위기가 달라 보인다.

▶연기나 작품 탓일 거다. 그 때는 무겁고 묵직한 연기를 추구했다. 양조위 같은 홍콩 배우들을 보면 고독한 슬픈 눈 같은 닉네임이 많더라. 그렇게 명확한 이미지가 특화되길 바랐다. 지금은 마음이 편해진 것도 있지만 작품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다. 강한 캐릭터보다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캐릭터에 눈길이 많이 간다. 내가 언제까지나 20대 청춘도 아니고, 아무래도 나이를 먹다보니까. '판도라' 때 정진영 선배님이 '나는 티도 잘 안 나는 배우야'라고 하시더라.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냐고 했는데 '티는 안 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묻어갈 수 있는 연기를 한다는 게 좋아'라고 하시더라. 욕심을 내려놓기가 힘든데, 그런 자세에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그랬다가 '형님은 1000만도 해보고 다 해보셨잖아요' 그랬다. 본인은 할 것 다 해보고 그런다.

예전에는 내려오는 준비를 많이 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그 때도 잘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막상 내려와보니 잘 내려오고 말고 할 게 없더라. 훅 추락한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고 하더니 딱 맞다. 잊혀지는 건 한 순간이다. 그러니까 새옹지마다. 욕심도 없고 덧없어진다.

-연기도 달라지던가.

▶같은 것도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하려고 한다. 예전엔 손 하나도 더 느끼하게 보면서 표현하려 고민했다면 지금은 표현하는 것도 담담해졌다. 예전엔 뭔가를 더 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안 하는 연기가 잘하는 거라고 표현하면 될까. 없을 때 더 힘주고 있는 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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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김남길 인터뷰 /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김남길이 생각하는 인생연기가 있다면?

▶인생연기라 할만한 게 없었다. 인생연기를 항상 꿈꾼다. 유작을 항상 꿈꾼다고 할까. 매 작품마다 그런 느낌을 받는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를 연기할 때) 평상시에도 조커같고 무서웠다던 고 히스 레저처럼 산화하고 싶은 욕망이랄까, 그렇게 하면 연기를 재평가받고 또 오래 기억해주지 않을까 하는 나쁜 로망이 있을 정도였다. 배우 입장에서는 유작이라 불릴만한 그런 작품을 늘 꿈꾼다. 그만큼 몰입하고 싶은 마음이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다. 가끔 심리상담도 받는다.

-반면 꾸준히 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도 들 것이다.

▶그게 반 반이다. 저는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고, 이것밖에 못하겠는데 이걸 못하면 어떻겠나. 답답해서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도 들고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에 행복하려고 한다. 선배님을 보며 따라가는 것도 있다. 선배님들이 재조명받고 다시 일어서고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연기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런 길을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김남길도 마흔에 가까워간다. 나이먹는다는 걸 실감하는 때가 있나.

▶지금도 '아재'소리를 듣고 있다. SNS를 안하다보니 해시태그(#)도 지난해 말 '판도라' 개봉 때 처음 배웠다. 댄스 노래도 속도를 못 따라가겠어서 노래는 옛날 노래가 좋다고 한다. 걸그룹도 모른다. 트와이스도 차태현 형이 미쳐(?) 있어서 그 때 들었다.(웃음) 20대 때는 중후한 느낌을 내고 싶어서 머리도 기르고 했다. '남자는 마흔부터'라 하지 않나. 막상 30대 후반이 되니 50, 60은 돼야지 뭘 안다고 그러냐고 한다. 그러다보면 이순재 선생님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나이 많은 배우들도 멋지고 섹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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