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MIN 새 프런트, 박병호가 실패작이길 바랐나?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3.31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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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AFPBBNews=뉴스1


말 그대로 쇼킹한 뉴스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시범경기에서 홈런과 안타, 타점, 득점, 타율과 OPS(이상 30타석 이상) 등에서 모두 팀 내 1위를 달리고 있는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가 팀의 개막 엔트리에서 빠졌다. 미네소타는 31일(한국시간) 개막 25인 로스터를 발표하면서 박병호를 포함시키지 않고 그를 마이너리그 캠프로 내려보냈고 그가 트리플A 로체스터에서 시즌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2월 초 박병호에 대한 전격적인 계약양도선수 지정(Designated for Assignment- 이하 DFA)에 이어 또 다시 한국 팬들은 물론 현지 팬들이나 언론, 그리고 동료선수들까지 깜짝 놀라게 만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두 번째 충격적 조치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결정이 나왔을까.


박병호는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두말할 필요 없이 미네소타 최고의 선수였다. 수치가 그 사실을 입증했다. 홈런(6개)은 3명의 공동 2위(3개)의 두 배나 되고 안타(18), 타점(13), 득점(10)에서도 모두 팀 내 1위에 올랐다. 타율(0.353), 장타율(0.745), OPS(출루율+장타율, 1.159) 등도 최소 30타석 이상을 채운 선수 가운데서 모두 1위였다. 더구나 그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볼넷 대 삼진 비율도 엄청나게 향상된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해 시범경기에서 박병호는 볼넷 1개에 그친 반면 삼진은 17개에 달했지만 올해는 볼넷이 6개, 삼진이 15개로 눈에 띄게 좋아졌다.

요약하면 박병호는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빅리그로 돌아가기 위해 구단이 요구했던 모든 것, 또 그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해냈다. 하지만 그런 노력과 향상에 대한 보답으로 돌아온 것은 트리플A행 지시였다.

트윈스의 경기담당 사장인 데렉 팔비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박병호의 기량 문제가 아니라 구단이 당초 계획보다 투수 한 명을 늘려 13명의 투수를 엔트리에 올리기로 결정한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팔비 사장은 “팀의 5선발로 낙점된 아달버토 메히아는 신인이고, 또 다른 선발 헥토르 산티아고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출전으로 인해 2주간 캠프를 비웠으며, 또 다른 선발요원 필 휴스는 흉부에서 발생한 신경 및 혈관 압박으로 인해 손가락 끝과 어깨 등에 통증이 생기는 증상이 나타나 수술을 받고 돌아오는 등 선발요원들이 긴 이닝을 소화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돼 불펜에 투수 한 명을 더 배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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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박병호를 제외시킨 것은) 그가 포지션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로스터 구성을 다르게 가져가기로 했기 때문”이라면서 “우리가 박병호에게 주는 메시지는 지금 하던 대로 계속해서 기량 향상을 이뤄달라는 것이다. 전 시즌을 치르기엔 (개막 엔트리) 25명으로 부족하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시즌 중간에 박병호를 불러올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시범경기의 눈부신 성적을 감안할 때 박병호의 엔트리 제외를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시즌 초반 선발투수들이 오랜 이닝을 던지지 못하는 것은 모든 팀들의 고민거리로 미네소타만의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미네소타의 시즌 초반 스케줄상 오프데이가 종종 있어 투수운용이 그렇게 빡빡하지도 않다. 꼭 필요할지조차 알 수 없는 불펜투수 한 명을 보태기 위해 시범경기 내내 팀의 최고타자였던 선수를 엔트리에서 뺀 것에 대한 설명으로는 상당히 구차하게 들리며 만들어낸 변명 같다.

추후 그를 불러올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말도 어휘 선택이나 표현에서 아주 은근(?)하기 그지없다. 같은 의미를 표현하는데도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가 선택한 어휘는 그중에서도 가장 간접적인 것들로 이뤄졌다. 박병호가 시범경기를 통해 이뤄낸 것에 대한 인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추후 콜업 가능성도 구체적 내용 없이 원칙적 표현으로 이뤄졌다. 이 설명만 들으면 그가 박병호를 아직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고 빅리그로 부를 생각이 없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팔이 안으로 굽은 기자의 착각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상대적으로 폴 몰리터 감독의 표현은 보다 직접적이었다. 이날 박병호를 감독 사무실로 불러 트리플A로 가라는 통보를 직접 전달한 몰리터 감독은 “(그 말을 하기가) 정말 힘들었다”면서 “우리가 이번 캠프에서 그에게 주문했던 것을 그가 모두 해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캠프에 온 순간부터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을 좋은 위치에 올려놓았다. 꾸준한 타격을 보여줬고 타석에서 침착함도 얻었으며 자신이 갖고 있는 파워도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러분들(취재진)은 우리가 그를 여기(빅리그)로 데려올 방법을 찾는 것이 왜 그렇게 복잡하고 힘든지를 이해하려고 해 보시길 권한다”면서 “시즌이 진행돼 투수들이 제자리를 찾으면 다시 투수진이 12명으로 돌아갈 것이다. 단기적(Short term) 문제다. 단기적”이라고 덧붙였다. 투수진이 제자리를 잡으면 바로 박병호를 불러올릴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트윈스의 투수진이 올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단 13인 체제로 출발한 이후엔 박병호에게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 시범경기에서 이처럼 좋은 성적을 올렸고 지명타자 포지션의 주 경쟁자인 케니 바르가스는 부상자명단에 올라있음에도 박병호를 제외시킨 것에서 보면 미네소타의 프론트오피스가 박병호를 전혀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박병호로선 트리플A에서도 시범경기의 뛰어난 타격감을 유지하며 계속 뛰어난 성적을 유지함으로써 팀을 계속 압박해야만 조기 빅리그 콜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미네소타 프론트오피스가 박병호를 놓고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초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2주전에 박병호를 전격적으로 DFA시킨 것이 그 첫 번째다. 당시 현지 언론들조차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일이었다. 베테랑 구원투수 맷 벨라일과 계약한 뒤 그를 40인 로스터에 올리기 위해 박병호를 DFA시켰다고 했는데 다른 옵션도 있었음에도 굳이 박병호를 선택한 것은 현지 언론들도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비록 박병호가 지난해 구단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고는 하나 낯선 이국의 낯선 리그에서 겨우 한 시즌을 보냈고 그나마 중도에 손목 부상으로 수술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성급한 결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충분히 반등할 잠재력이 있는 선수이고 무엇보다도 미네소타가 그를 잡기 위해 포스팅 금액과 4년 계약, 그리고 5년차 옵션 바이아웃 금액을 합쳐 2,500만달러가 넘는 상당한 거액을 투자한 사실에 비춰보면 고작 1년을 지켜보고 그런 큰 투자를 한순간에 헛수고로 만들 수 있는 결정을 내린 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시범경기까지 지켜보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때 내보내도 전혀 늦지 않기에 더욱 그랬다.

결국 박병호를 영입한 것은 구단의 현 프론트오피스가 아니라 떠나간 직전 프론트오피스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DFA 이후 웨이버 와이어(방출자명단)에서 그 어느 팀도 박병호를 클레임하지 않으면서 현 프론트오피스의 작전은 일단 성공으로 돌아간 셈이 됐다. 아마도 지금쯤 메이저리그에는 그때 박병호를 클레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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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시범경기에서 박병호가 예상을 깨고 완벽하게 부활한 모습을 보이자 프론트오피스의 계산이 복잡해졌다. 불과 두 달 전 DFA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 그를 40인 로스터에서 빼냈는데 이제 다시 그를 올리는 것은 자신들의 판단이 완전히 잘못됐음을 바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임자들의 박병호 영입을 완전한 실패로 규정하고 새로운 판을 짜길 원했던 현 프론트오피스 입장에선 그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범경기는 어디까지나 연습경기라면서 시범경기의 성적만으로 그 선수를 판단할 수 없고 트리플A의 결과를 본 뒤 천천히 그를 데려와도 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박병호는 속 좁은 프론트오피스보다 훨씬 대인다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우 씁쓸한 뉴스지만 실망은 하지 않는다”면서 “스프링캠프 시작 때부터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고 있었다. 내 목표는 그대로다. 어디서 출발하든 난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몰리터 감독이 자신의 라커로 찾아온 것에 대해 “그(몰리터 감독)는 내가 스프링캠프 때 해온 것을 계속 해주길 원했고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줬다”면서 “좋은 이야기로 많은 도움이 됐다”고 사의를 표했다.

한편 박병호가 빠진 지명타자 포지션에는 백업 외야수인 로비 그로스만이 기용될 전망이다. 그로스만은 31일 벌어진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시범경기에서 9번 지명타자로 나서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의 시범경기 성적은 타율 0.238(42타수 10안타)에 홈런 없이 3타점을 기록 중이다. 박병호와는 체급차이가 한참 난다. 갈수록 머리를 긁적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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