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 "다시 태어나면 인기 있는 남자배우 되고 싶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3.2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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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자이온 이엔티


'쉬리'에선 여전사였다. 19년이 흘렀다. 그간 미국에선 '로스트'와 '미스트리스'로 스타덤에 올랐다. 한국에선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역을 해야만 했다.

김윤진은 "다시 태어나면 좋은 작가가 돼서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런 김윤진은 '시간위의 집'이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야기에, 볼 수 없는 캐릭터라 끌렸다고 했다. 김윤진의 말처럼 '시간위의 집'은 좀 다르다. 겉보기엔 하우스 호러 같지만 다르다.


4월5일 개봉하는 '시간위의 집'은 집에서 남편과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25년 동안 복역했던 여인이 다시 그 집에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베네수엘라 영화 '하우스 오브 디앤드 타임스'가 원작이다. 하우스 호러의 규칙에 충실하다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로 치닫는다. 김윤진은 그 속에서 남편이 살해되고 아이가 실종된 뒤 처절한 삶을 보냈다가 그럼에도 반드시 아이를 다시 찾겠다는 각오로 죽음을 앞두고 집에 돌아온 엄마를 맡았다. 또 엄마다. 그래도 다른 엄마다. 김윤진은 '시간위의 집'에서 40대와 60대, 두 시간대를 오가며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위의 집'을 왜 했나.

▶이런 영화가 나오면 진짜 영화관에서 볼 것 같았다. 원톱은 아니어도 내가 끌고 가는 이야기를 하고도 싶었고. 한국에선 이런 시나리오를 좀처럼 볼 수 없기도 하고. 남편이 공동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었다. 이야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국제시장'에 이어 또 노년 연기를 했는데.

▶'국제시장'에서 20대와 40대, 60대까지 연기를 했는데 분량이 부족하다 보니 섬세한 부분을 못 보여줘서 아쉬웠다. 이번에는 남편과 아이를 죽였다고 낙인 찍힌 여자다. 거기에 후두암 설정까지 넣었다. 좀 더 많은 부분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사실 '국제시장'에서 했던 노인 연기는 그다지 칭찬을 받지 못했는데.

▶맞다. 배우로서 어디까지 삶을 표현해야 하냐가 늘 고민이다. 정답도 없고. '국제시장'을 하면서 영화적인 현실과 진짜 현실은,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는 걸 뼈아프게 느꼈다. 여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어느 정도까진 목소리가 큰 차이가 없다. 카랑카랑 해진다고 할까나. 그런데 '국제시장'에선 그렇게 현실적인 모습을 담으려 했다가 많은 지적을 받았다. 영화에서 현실적으로 보인다는 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위의 집'에서 맡은 역할은 원래는 60대 중반이지만 감옥에서 고생으로 70대 정도로 보이게 설정을 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고민했다. 낮고 허스키하게 느껴지도록 일부러 후두암이란 설정을 아이디어로 냈다. 영화에 맞게 목소리를 쥐어짜도 영화 안에서도 현실적이고, 영화 밖에서도 리얼리티를 느끼도록 했다. 말하자면 배우의 아이디어로 단점을 커버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후두암에 걸리신 분들의 목소리를 많이 녹음해서 가장 영화에 맞는 분의 목소리톤으로 임대웅 감독님과 상의해 결정했다. 쇳소리 같은 호흡까지 담으려 펜마이크를 차고 연기했다. 그래도 감정 연기를 할 때는 불쑥불쑥 내 목소리가 올라오더라.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저 뒷모습만 봐도 슬퍼보이는 그런 모습,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애썼다.

-'시간위의 집'은 여느 하우스 호러 영화와는 다른데.

▶뻔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라서 좋았다. 가족드라마가 더해지는 데 단순한 신파도 아니고. 묵직한 이야기도 담겨 있고.

-같이 연기한 배우들과는 어땠나. 가톨릭 신부로 나온 옥택연은 어땠는지.

▶옥택연은 자기 할 일을 잘 했다. 난 30대 초반부터 내 역할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를 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옥택연은 영화 속에서도 딱 옥택연으로 자기 할 일을 잘 했다. 촬영 뿐 아니라 홍보 등 여러 면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영화 속의 몇몇 설정은 영화 속 인과와 엇갈려서 궁금증을 낳기도 하는데.

▶바로 그 점이 '시간위의 집'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그런 점들을 궁금해 하면서 토론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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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자이온 이엔티


-미국에서 인지도도 높은데 한국을 오가며 꾸준히 한국 작품을 하는 이유는.

▶미국에서 활동할 때도 현지 프로듀서들이 내가 한국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걸 특별하게 생각한다. 한국 활동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집이 한국이고 주무대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할 수만 있다면 계속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 내 욕심이다. 허락만 된다면 두 마리 토끼 귀를 계속 잡고 같이 가고 싶은 욕심.

-'미스트리스'는 일종의 막장 드라마였다. 그래도 누구의 아내나 엄마는 아닌 자유로운 캐릭터였다. 그런 반면 한국에선 주로 엄마 역할을 맡게 되는데.

▶맞다. '미스트리스'는 자극적이었다. 노출도 많고. 시즌3에서 쓰리썸 연기를 해야 하는데, 내가 생각보다 열린 사람이 아니더라. 상대 배우들은 어떻게 찍을지 토론을 하는데, 난 언제 촬영이 끝나나 이런 생각만 했다. 아무리 미국이지만 케이블도 아니고 ABC에서 이런 게 가능해요?라고 생각했다. 가능하더라.

글쎄 다른 길이 없었다면 그런 고민을 많이 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40대 여배우가 여자 중심인 영화를 찍을 때 모성애가 아닌 걸 본 적이 있나. 그게 여배우가 갖고 있는 현실이다. 그 현실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모성애는 한편으로는 영화적으로 대단한 무기다. 짧은 시간 안에 전 세계인의 공감대를 살 수 있는 감정이니깐.

-여배우로서 그런 지점을 고민하나.

▶물론이다. 진심으로 다시 태어나면 가수가 되고 싶고, 인기 있는 남자배우가 되고 싶다. 실수를 해도 남자배우에게 더 관대하지 않나. 작가가 돼서 여배우들이 다양한 캐릭터를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쓰고 싶다. 그런 세상을 진심으로 만들고 싶다.

-영화 속에서 가톨릭이 주요 정서 중 하나인데.

▶실제로 가톨릭 신자다. 내 삶의 다음 단계가 천국이면 좋겠고, 그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시간위의 집'에선 처음 신부를 만났을 때 "신은 없다"고 하지 않나. 남편이 죽고 아이가 사라진 뒤 살해범으로 몰려 25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얼마나 삶이 지옥 같았겠나. 그랬던 여자가 마지막에 고해성사를 한다는 부분을 내가 꼭 넣자고 했다. 그런 점이 도움을 준 것 같다.

-초반에는 거의 로우 앵글인데. 배우에게 로우 앵글은 부담스럽지 않았나.

▶배우의 적은 로우 앵글이다. 시사회 끝나고 기자간담회에 로우 앵글로 찍힌 사진에 제목이 '세월 거스린 미모'라고 돼 있었다. 댓글에 "세월을 뭘 거슬러, 정통으로 맞았구만"이라고 써 있더라. 그래도 영화에 효과적이면, 내가 예뻐 보이려고 출연한 것도 아니니깐.

-댓글 많이 보나.

▶아무래도 보게 된다. 댓글이 많이 달리는 배우도 아니고. 가끔 댓글을 보다가 감탄하는 것도 보게 된다. 여배우 관련 기사였는데, 댓글에 "여성 캐릭터는 두가지다. 피해자 아니면 민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속이 시원했다. 맞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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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사실상 홀로 이끌어 가는데 부담은 없었나.

▶일부러 관절마다 아주 강력한 아대를 찼다. 긴소매로 덮었고. 나이가 들면 몸이 뻣뻣해지지 않나. 그런 점을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하고 싶었다. 너무 갑갑해 심하게 체해서 촬영이 중단된 적도 있다. 육체적인 피로야 모든 배우가 느끼는 것일테고. 그래도 이 순간, 이 작품, 이 캐릭터가 자주 오는 게 아니니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멍이 들더라도 몸을 던지고 싶었다.

-'미스트리스'는 결국 하차 했는데.

▶2004년에 미국에 진출했는데 아주 운이 좋은 편이다. 다른 배우들은 파일럿을 만들어도 정규 편성이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로스트' '미스트리스' 모두 시즌별로 만들어졌으니깐. 그런데 미국 진출한 지 13년이 됐는데 작품을 두 개 밖에 못했다. 엄청난 행운이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미스트리스'가 2~3년 더 하면 다른 작품을 아예 못할 것 같아 하차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미스트리스'가 종영이 됐다. 내가 빠져서 종영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다. 미국에서 다른 드라마를 한다면 좋아하는 sci-fi(공상과학)나 판타지 같은 걸 하고 싶다. 절실하게 오디션 볼 계획이다. 내가 보는 오디션은 원래 아시아인이 아니다. 그냥 백인 캐릭터다. '미스테리스'도 백인 여성 캐릭터인데 내가 되면서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오디션을 통해 가능성을 얻고 만드는 데 자부심도 느낀다.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다고 늘 말하는데.

▶진짜 월드스타에는 수식어가 안 붙는다. 뭐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못 알아보는데. 남편이랑 이마트 같은 데 가도 못 알아본다. 그저 잘 하라는 응원멘트라고 생각한다.

-'쉬리'에서 같이 했던 한석규 최민식이 주연을 맡은 영화들이 차례로 개봉하는데.

▶그분들의 영화들이야 매년 개봉하는데 뭘. 그 때는 내가 너무 미숙했기에 이제 다시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선배와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 괴롭히는 아내 역할이라도.

-남자배우들은 중년이 돼도 여전히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데. 그런 점은 아쉽지 않나. 괴롭히는 아내 역이 아니라 킬러 역은 어떤가.

▶사람인데 왜 그런 마음이 없겠나. 킬러 역할이라기 보다 악역을 정말 해보고 싶다. 얼마 전에 그런 제안을 받긴 했다. 이야기가 와닿지 않아 거절하긴 했는데 딱 한가지 악역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다. 걸크러쉬 악역.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차기작은.

▶아직. 이제부터 열심히 오디션 보면서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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