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막내린 WBC, 그 승자와 패자들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3.24 08:02 / 조회 : 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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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WBC가 미국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MVP로 선정된 마크 스트로먼./AFPBBNews=뉴스1


미국이 ‘야구 종가’로서 자존심을 살려내는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막을 내렸다.

미국은 23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테디움에서 벌어진 대회 결승전에서 우완 선발투수 마커스 스트로맨(토론토 블루제이스)이 푸에르토리코의 강타선을 6회까지 무안타로 침묵시키는 눈부신 역투를 보이고 타선도 3회 이안 킨슬러의 선제 투런홈런 등 장단 13안타로 폭발, 이번 대회서 1라운드부터 전승가도를 질주하던(7승) 푸에르토리코를 8-0으로 완파하고 4회째를 맞는 대회에서 첫 우승의 기쁨을 안았다.

메이저리그의 주도로 창설돼 운영되고 있지만 정작 메이저리그 최고스타들과 팬들로부터는 외면을 받았던 이 대회는 올해 대회에서 미국이 마침내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미국 팬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고 사상 최초로 총 입장관중 수가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세계 야구 최고의 국가대항전으론 미흡한 측면이 적지 않음도 드러냈다. 올해 대회를 마무리하며 이번 대회 승자와 패자를 살펴봤다.

◎승자

■미국


지난 2006년 WBC가 시작되면서부터 미국은 사실상 ‘이겨야 본전’인 입장에 처해있다. 야구의 종주국이자 세계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를 보유한 미국의 우승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그렇기에 우승을 못하면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국 최고 스타들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부상 우려와 시즌 준비 차질을 이유로 대회 참가를 기피했고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팀의 톱스타들을 장시간 내주는 것을 탐탁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좋은 성적이 나올 리 없었다. 대회 개막에 임박해 급조된 대표팀이 한 3~4일 정도 호흡을 맞춘 뒤 나서다보니 첫 3개 대회에서 딱 한 번 4강까지 올랐을 뿐 야구 종가로선 체면치레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미국은 과거 대회에 비해 한결 WBC에 대해 진지해진 모습을 보였다. 브라이스 하퍼(워싱턴 내셔널스), 마이크 트라우트(LA 에인절스),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 등 최고 슈퍼스타들이 불참하긴 했어도 많은 톱스타급 선수들이 참가해 사실상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이라고 해도 될 만한 팀을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명장 짐 릴랜드 감독의 지휘아래 과거 모래알 같았던 팀워크도 훨씬 끈끈해진 모습을 보여줬다.

감독과 코치, 선수들부터 열정을 갖고 대회에 임하면서 플레이의 질도 좋아졌고 팬들이 이에 호응하면서 결국은 첫 우승까지 일궈내는데 성공했다. 특히 2라운드 최종전으로 펼쳐진 디펜딩 챔피언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단두대 매치’에서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4강전에서 만만치 않은 상대 일본을 1점차로 뿌리친 데 이어 결승전에서 전승가도를 달리던 푸에르토리코를 완파하고 우승에 골인한 것은 미국 야구의 저력을 보여준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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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의 서전에서 승리하고 기뻐하는 이스라엘 선수단.


■이스라엘

이번 대회는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오랜만에 이스라엘의 이름을 빛내준 대회였다. 사실 이스라엘의 깃발아래 뭉치긴 했지만 야구 불모지인 이스라엘 현지 출신 선수는 1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무명의 유태계 미국인 마이너리거들이었지만 그들은 이번 대회에서 그 어느 팀보다도 똘똘 뭉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성적을 올렸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펼쳐진 1라운드에서 개최국 한국은 물론 메이저리거들이 즐비한 네덜란드까지 꺾고 3전 전승으로 1위를 차지한 뒤 도쿄 2라운드에선 1차전에서 쿠바를 잡는 등 4연승 돌풍을 이어갔다.

비록 마지막 2경기를 패하면서 돌풍을 멈췄지만 야구의 변방으로 예선을 거쳐 올라온 이스라엘이 4강 진출에 1승 앞까지 다가선 돌풍을 일으킨 것은 이번 대회 가장 인상적인 스토리중 하나였다. 제리 웨인스타인 이스라엘 감독은 “이번 대회는 우리에게 월드시리즈였다. 하지만 월드시리즈는 단 두 팀만 나가는데 이 대회는 16개국이 나왔으니 월드시리즈보다 더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본

WBC에서 1, 2회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일본은 이번 대회 6연승을 달린 뒤 4강전서 미국에 고배를 마셔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마에다 겐타(LA 다저스), 다르빗슈(텍사스 레인저스) 등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에이스급 투수들이 전원 불참한 데다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스타인 ‘괴물투수 겸 타자’ 오타니 쇼헤이(니혼햄)까지 부상으로 빠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대회 결과를 성공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일본은 이번 대회 대진운에서 상당한 혜택을 봤다고 할 수 있다. 첫 2라운드를 모두 홈에서 치른 것은 물론 1라운드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대였던 쿠바가 예전에 비해 훨씬 전력이 떨어지는 팀이었고 더구나 서울라운드에서 라이벌 한국이 일찌감치 탈락하는 바람에 2라운드에선 가장 껄끄러운 한일전까지 피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6연승을 거두는 동안 고전한 경기는 승부치기까지 갔던 네덜란드전 하나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일본은 미국과의 준결승에서 보여줬듯 그 어느 팀도 쉽게 꺾을 수 없는 탄탄한 전력을 갖췄고 특히 메이저리그 스타들 없이도 충분히 세계 최강급들과 겨룰 수 있는 팀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더구나 일본이 장기적으로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이번 대표팀을 구축한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대회 4강 성적에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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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의 2라운드 최종전서 결승 홈런을 쳐낸 쓰쓰고(왼쪽) /AFPBBNews=뉴스1


■조시 자이드

이스라엘 돌풍의 주역 중 한 명인 우완투수 자이드(30)는 이번 대회를 발판삼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 빅리그 복귀에 도전할 기회를 잡았다. 이번 대회에서 자이드는 선발 등판 1차례를 포함, 4경기에 등판해 10이닝 동안 5피안타 6볼넷 10탈삼진을 기록하며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빼어난 투구로 1승 2세이브의 성적을 거뒀다.

특히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개최국 한국과의 1라운드 첫 경기에서 이스라엘의 마무리투수로 나서 3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구원승을 챙긴데 이어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라운드 일본과 경기에서는 선발로 등판해 4이닝을 무실점으로 봉쇄했다.

이런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세인트루이스와 마이너계약을 얻어낸 것이다. 자이드는 이미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선 경험이 있다. 2013년과 2014년 두 시즌 동안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48경기에 등판해 48⅓이닝 1세이브, 평균자책점 5.21의 성적을 남겼다. 과연 그가 WBC의 퍼포먼스를 디딤돌 삼아 3년 만에 다시 빅리그 무대에 복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패자

■한국


한국 야구에게 이번 대회는 ‘타이중 참사’로 기록됐던 지난 2013년 제3회 WBC보다 더욱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됐다.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신 것은 2013년 대회와 똑같은 결과지만 이번 악몽은 안방에서 당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컸다. 선수 선발과정에서부터 난항을 겪었던 대표팀은 역대 대표팀 가운데 최약체라는 평가를 면치 못했고 결국은 홈필드 어드밴티지에도 불구, 대회 첫 두 경기에서 패하면서 일찌감치 탈락이 확정됐다.

특히 1차전 이스라엘전 패배가 뼈아팠다. 메이저리거들이 대부분 빠지긴 했으나 그래도 이스라엘보다는 한 수 위라고 생각했던 착각도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특히 미국의 메이저리그 통계분석 사이트인 팬그래프닷컴이 “이스라엘의 돌풍은 놀랍지 않다”면서 “선수 상당수가 트리플A에서 뛰는 이스라엘이 더블A 정도인 리그(KBO) 선수들로 짜여진 한국을 꺾은 것은 이변이라고 할 수 없다”고 분석한 것은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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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참사'라 불리는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한 한국 대표팀.


■서울라운드

한국의 부진과 맞물린 서울라운드의 흥행 실패 역시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WBC는 모든 라운드에서 역대 최고 관중동원을 경신하는 흥행 대박을 터뜨렸지만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개최된 서울라운드만큼은 예외였다.

서울라운드 6경기에서 입장 관중은 총 5만2,286명에 그쳤다. 평균 관중은 8,714명으로 정원이 1만6,800석인 고척돔의 관중 점유율은 51.9%에 그쳐 절반을 겨우 넘기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는 지난 2013년 당시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탈구장에선 벌어진 6경기에서 총 관중 6만9,834명, 평균 1만1,639명이 입장했던 역대 최소관중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

한국팀이 첫 2경기에서 19이닝 1득점의 무기력한 경기 내용을 보이며 일찌감치 2연패로 탈락한 것이 팬들의 외면을 받은 가장 큰 이유였다. KBO가 야심차게 준비한 서울라운드는 한국의 조기 탈락과 함께 '역대 최소관중' 불명예까지 세우고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멕시코

이번 대회 1라운드에서 개최국으로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한 팀은 한국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멕시코였다.

멕시코 할리스코에서 1라운드를 개최한 멕시코는 메이저리거들이 대부분 불참한 한국과 달리 에이드리언 곤잘레스와 서지오 로모(이상 LA 다저스)를 비롯, 로베르토 오수나(토론토), 요아킴 소리아(캔자스시티) 등 다수의 메이저리거들이 출전했으나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1, 2차전에서 연패한 것으로 인해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고 말았다.

멕시코는 특히 이탈리아와의 1차전에서 9회초까지 9-5로 여유있게 앞서 가벼운 서전승리를 눈앞에 뒀으나 9회말에 단 한 개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한 채 5점을 내주고 충격적인 9-10 역전패를 당하면서 모든 것이 꼬이고 말았다. 멕시코의 마무리로 나선 토론토의 클로저 오수나가 9회말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3연속 2루타를 맞고 2점을 내준 뒤 실책, 볼넷으로 주자 만루를 만들고 강판됐고 이어 마운드에 오른 올리버 페레스(워싱턴)도 연속안타를 맞고 물려받은 주자 3명이 모두 홈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해 허무하고 쇼킹한 패배를 맛봤다.

이어 2차전에서 푸에르토리코에 완패한 멕시코는 마지막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선 11-9로 승리해 이탈리아, 베네수엘라와 1승2패로 동률을 이루는데 성공했으나 여기서마저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3자 동률의 경우 이닝당 실점을 비교하는 대회 타이브레이커 규정상 이날 베네수엘라에 2점차로 이기면 베네수엘라를 제치고 이탈리아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는 줄 알고 경기 종료 후 환호했으나 잠시 후 이탈리아와 1차전에서 9회말 아우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것으로 인해 그 이닝이 계산에서 제외된다는 유권해석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베네수엘라에 플레이오프 티켓을 빼앗겼고 생존의 기쁨은 탈락의 충격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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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최종 호주전에서 만루홈런을 친 데스파이네(오른쪽). 하지만 쿠바는 2라운드서 전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AFPBBNews=뉴스1


■쿠바

한때 세계 아마야구 무대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쿠바의 위상이 얼마나 많이 추락했는지가 이번 대회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쿠바는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1라운드에서 중국과 호주를 꺾고 일본에 이어 2위로 2라운드에 올랐지만 2라운드에선 이스라엘, 일본, 네덜란드에 모두 완패하면서 씁쓸하게 보따리를 쌌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쿠바 망명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하는 날이 오기 전에는 이제 WBC에서 쿠바를 우승후보 대열에 포함시키기는 힘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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