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큰 남자' 스트로먼 WBC 별이 되다

[손건영의 올어라운드 스포츠]

손건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 입력 : 2017.03.2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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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MVP로 선정된 마크 스트로먼./AFPBBNews=뉴스1





‘HDMH’는 2017년 WBC에서 미국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고 MVP까지 수상한 마커스 스트로먼(25)의 트레이드 마크다. ‘신장은 심장의 크기와 무관하다(Height Doesn't Measure Heart)’는 뜻으로 지난 2015년 1월 스트로먼이 트레이드 마크 등록까지 마쳤다.


스트로먼의 키는 173 센티미터로 현역 메이저리그 투수 중 최단신이다. 하지만 스트로먼은 자신의 어머니가 태어난 푸에르토리코와의 결승전에 선발로 출격해 6회까지 노히트노런 행진을 펼치며 미국의 사상 첫 WBC 우승의 수훈 갑이 됐다.

150 km를 웃도는 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커브 볼을 앞세운 스트로먼은 무려 3이닝이나 땅볼 아웃으로만 삼자 범퇴로 처리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지난 12일 푸에르토 리코와의 대결에서 선발로 출격해 4.2이닝 8피안타 4실점의 패전을 완벽하게 설욕한 셈. 2013년 WBC에서 모국을 위해 봉사하기 원했지만 자신을 택하지 않았던 푸에르토리코에게 그들의 선택이 잘 못된 것임을 일깨워줬다.

1991년 5월 1일 뉴욕에서 태어난 스트로먼은 5살 때 부모가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뉴욕 경찰이던 아버지가 가족을 떠난 후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어머니 품에서 자랐다.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던 어머니를 대신해 고등학교 시절부터 야구장을 찾아 늘 응원을 해 준 할머니는 듀크 대학 시절 운명을 달리 했다. 스트로먼은 2014년 10월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자신의 등번호를 54번에서 6번으로 바꿨다. 또한 왼쪽 어깨에 할머니 얼굴을 문신으로 새겨 놓기도 했다.


야구 선수, 특히 투수로서 작은 키는 늘 스트로먼의 앞길을 가로 막았지만 자신을 위해 늘 헌신한 할머니를 생각하며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2009년 워싱턴 내셔널스가 18라운드 532번째로 그를 지명했다. 그러나 자존심이 상한 스트로먼은 듀크대로 진학했다. 대학농구에서는 라이벌 노스캐롤라이나와 함께 5차례나 ‘3월의 광란’에서 우승을 차지한 농구 명문이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야구 팀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비록 약체지만 스트로먼은 48 경기에 등판해 15승12패를 기록했다. 222이닝을 던져 무려 290개의 삼진을 잡아내 듀크대 기록을 갈아 치웠다. 또 등판하지 않는 날은 2루수나 유격수로 출전해 뛰어난 운동 신경을 뽐냈다.

결국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스트로먼은 1라운드 22번째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되는 쾌거를 이뤘다. 불과 3년 만에 510 계단이나 뛰어 오른 셈.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 해 8월 금지약물 복용이 드러나 5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빅리그로 승격된 2014년 9월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캘립 조셉을 고의로 맞혔다는 의혹을 받아 6경기 출전 정지와 함께 벌금을 내야 했다. 이듬해 스프링캠프에서는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 수술대에 오르는 등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스트로먼은 이 기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다시 듀크대 캠퍼스로 돌아가 끝내 사회학 학사 과정을 모두 마쳤다. 또한 마켓 매니지먼트 연구를 부전공으로 선택할 정도로 학업에 대한 열의도 넘쳤다.

당초 시즌을 통째로 날릴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학업을 병행하며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매진한 스트로먼은 시즌 막판 4경기에 선발로 출전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27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1.67을 기록하며 4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 것.

스트로먼이 보여준 불굴의 투지에 감명을 받은 존 기본스 감독은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2차전과 5차전에서 선발로 출격시켰다. 특히 2승2패로 팽팽한 균형을 이룬 5차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블루제이스가 2연패 뒤 3연승을 거두는 리버스 스윕을 완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016년 블루제이스의 개막전 선발로 낙점을 받은 스트로먼은 자신의 생일인 5월1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 생애 최다인 9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이는 데이빗 프라이스, 마크 젭친스키, 로이 할러데이가 자신의 생일에 뽑아낸 탈 삼진 기록을 1개 차로 뛰어 넘는 것이었다. 생애 최다인 204이닝을 던져 이닝 이터의 면모를 보인 스트로먼은 9승10패(평균자책 4,37)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결정전 1차전에 선발로 등판하며 팀의 에이스로 인정받았다.

2017 WBC를 앞두고 미국 대표팀은 선발진의 무게 감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클레이튼 커쇼, 매디슨 범가너, 제이크 아리에타 등 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투수들이 참가를 고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로먼은 4년 전 푸에르토 리코에게 당한 수모를 갚기 위해 미국 대표팀 선발을 자청했다. 그리고 4번째 대회 만에 처음으로 결승에 오른 미국 대표팀의 에이스로서 마운드에 올라 다저스타디움을 메운 5만 여 팬들 앞에서 키가 아닌 자신의 심장이 얼마나 큰 지를 마음껏 과시하며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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