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기, 이제 좀 볼만하다"는 한석규의 고백"(인터뷰)

영화 '프리즌' 한석규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3.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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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의 한석규 / 사진제공=쇼박스


"한 3년 지나봐야 그 영화가 쓸만한지 아닌지 알 수 있어요. '아 이게 쓰레기구나' 라든지….(웃음) 스스로 점수를 매기죠."

부드럽고 느릿한 말투. 하지만 맺음이 깐깐했다. 한 마디 한 마디 고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예상대로 배우 한석규(53)의 점수는 짜디짰다. 20편이 훨씬 넘는 그의 출연작 중 자체평가 1위는 허진호 감독-심은하와 함께 한 멜로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최고점수 80점.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 점수와 비슷하다 했다. 신작 '프리즌'(감독 나현)의 점수 또한 3년이 지날 때쯤 스스로 점수를 매길 것이다.


'프리즌'은 수상한 감옥이 배경이다. 밤이면 담장을 넘는 죄수들은 은밀한 완전범죄를 벌인다. 한석규는 그 감옥의 수감자 익호 역을 맡았다. 그는 돈과 폭력, 그리고 광기 어린 악다구니로 죄수들을 장악하면서 간수들 위에도 군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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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의 한석규 / 사진제공=쇼박스


인기몰이를 했던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속 의사 김사부가 그의 설명처럼 "스스로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내 기본적인 걸 그대로 써먹어도 되는 인물"이었다면, 익호는 정반대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다양한 캐릭터를 그려낸 한석규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지독하고 잔인하기로 첫손에 꼽을 만하다. 한 차례 작업할 기회를 놓쳤던 나현 감독으로부터 출연을 제안받은 한석규는 '이게 왜 나냐'고 가장 먼저 물었다. '아 쉽지 않겠구나. 내가 입기에 쉽지 않은 옷이구나'라 직감했다.


"이 작품 저 작품에서 악역은 몇 번 했지만 익호란 인물의 악은 달랐어요. 저는 완전 서울 토박이고 도시인이에요. 사투리를 쓰며 연기하면 '베를린'에서 영어로 연기할 때나 비슷하죠. 배워서 하긴 하지만 내 말이 아니에요. 참 불편하겠다는 공포심이 있었죠. 익호라는 인물이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에라 모르겠다' 했어요. 스스로 도전하고 싶었고, 그것이 내 일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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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의 한석규 / 사진제공=쇼박스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본 수컷 하이에나의 모습이었다. 그가 본 화면 속 수컷은 아주 비참했다. 모계 사회의 천덕꾸러기나 다름없어 짝짓기를 하려면 다른 무리에서 암컷을 찾아야 했고 그러다 공격을 당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는 충격을 느꼈다.

"그 수컷은 코와 입이 찢어지고 눈이 떨어져 나갔어요. 그런데도 살아있더라고요. 그렇게 다른 무리를 찾아가는 장면이 이었는데… '저게 익호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미지를 계속 생각하면서 익호란 인물을 만들려고 발버둥쳤어요. 황당하긴 하지만 '나도 눈알을 뽑을까' 생각도 했고요."

그렇게 탄생한 한석규의 익호는 잔인한 면모를 구태여 전시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하게 감옥 전체를 짓누른다. 한석규답다. 한석규이기에 가능한 해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짜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렇다.

"전에는 제가 연기하는 게 꼴보기 싫었어요. 눈이 그러니까, '멍때린다'고 해야하나. 그랬어요. 요즘 좀 봐줄 만해요. 관객으로 제가 연기하는 눈을 보면 이제야 좀 사연이 담겨 보여요. 대사 없이도, 뭘 보든 안 보든 뭔가를 담아내는 것. 그게 한 마흔은 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늘 연기가 아쉽다고 하나봐요. 완성이 없는 거니까. 사실 완성시킬 필요도 없는 거죠. 이루고 완성하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젊었을 때는 뭔가를 해낸다는 데 정신이 꽤 많이 팔려 있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거 별 것 아니구나. 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구나' 생각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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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의 한석규 / 사진제공=쇼박스


지난 '프리즌' 시사회에서 연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한석규는 이처럼 답했다. "가짜를 통해서 진짜의 정곡을 찌르는 일, 그게 제 직업"이라고. 지난 '낭만닥터 김사부'에 출연하던 즈음 직업에 대한 물음을 갖고 고민하다 내린 답이다.

"한때 '내가 하는 연기가 다 가짜구나' 하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어요. 가짜만 잡고 그게 진짜인 것처럼 발버둥을 치는구나 싶어서. 20대 30대 때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 문제는 내가 가짜를 하고 있구나 하니, 연기를 하면서 상대 액션을 받아야 하는데 저 사람은 더 가짜같이 보이는데 그걸 받아 가짜의 리액션을 해야한다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더라고요. 그런 의미로 구차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제가 하는 가짜놀음이, 이게 꽤 괜찮은 거예요. 왜냐면 우리 직업군, 모든 문화 예술 '아트' 어쩌고 하는 일은 다 가짜만 가지고 하는 일이잖아요. 가짜가 그리 나쁜 건 아니에요. 진짜를 이야기하려고 진짜로만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 진짜의 이야기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하는 게 정말 어렵죠. 남녀노소 누구나 다 알아먹을 수 있게 하지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한석규는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국사람, 서울, 종암동, 그리고 1964년에 태어나 살아가는 인연으로 이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딴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훔쳐보길 좋아하는 본능을 만족시켜 주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10년 넘게 가져 온 물음에 돌고 돌아 답을 찾았다며 빙긋 웃었지만, 그는 끝까지 여전히 스스로에게 인색했다.

"연기를 안 할 수도, 못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때까지 계속 해보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100점짜리도 해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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