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사드갈등-영화] 한한령이란 유령에 멈춘 한중 영화 교류..위기가 기회다①

[★리포트] 스타뉴스 특별기획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3.23 10:00 / 조회 : 7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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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최대 한류 시장 중국이 얼어 붙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한국 배치에 따라 이른바 '한한령'(한류 제재 조치)이 내려지면서 양국간 교류는 끊겼다. K팝 가수들의 중국 공연은 불가능해졌고, 한국 드라마의 중국 수출길도 막혔다. 한국 영화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만 피해자는 아니다. 중국 역시 적잖은 피해를 보고 있다. 국내 연예계에 투자한 중국 투자자들 역시 이를 회수할 길이 없어진 것. 스타뉴스는 한중 사드갈등에 따른 피해를 짚어보고 해결 가능성에 대해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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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부산행 포스터, 김기덕 감독/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NEW


한국 영화계에 한한령이란 유령이 떠돌고 있다. 실체는 없는데 영향은 크다. 피해는 큰데 피해자는 없다. 중국 당국에선 한국의 사드 배치로 인한 한류 금지, 한한령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피해 사례는 넘친다. 막상 피해 사례를 확인하면 괜히 피해 봤다고 하면 불똥이 튈까 다들 쉬쉬한다.


모든 게 일단 멈췄다. 2014년 7월 한중 영화협력협의 이후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진행했던 각종 한중 영화 협력 사업이 일제히 보류됐다. 아직 완전히 중단 된 게 아니라며 말들을 아끼고 있지만 언제 재개될지 기약이 없다. 지난해 중국에선 한국영화가 단 한편도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한국 영화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은 오래됐다.

2006년이 원년이라 할 만 하다. TV드라마로 한국 배우와 가수들은 이미 진출이 활발했지만, 한국영화는 죽의 장막을 뚫기 쉽지 않았다. '무사' 이후 중국 영화시장 진출을 모색했던 김성수 감독이 중국에 영화사를 차리는 등 일찍이 문을 두드렸지만 진입 장벽은 높았다.

2006년에서야 비로소 CJ CGV가 상하이에, 메가박스가 베이징에 중국 내 첫 멀티플렉스를 오픈하면서 본격적인 물꼬를 틀기 시작했다. CGV는 현재 중국에서 81개 극장 636개 스크린을 보유할 만큼 성장했다.


물 밑에서 진행되던 한중 합작영화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2007년 '괴물'과 2008년 '디워'가 중국에서 정식 개봉해 각각 19억원과 49억원 가량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2009년 CJ엔터테인먼트가 기획부터 제작까지 참여한 '소피의 연애매뉴얼'을 중국에서 개봉, 약 18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CJ엔터테인먼트는 '해운대'를 중국수입사와 외국 수입사가 수익을 공유하는 분장제 방식으로 개봉하기도 했다.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참여한 '삼국지 용의 부활'과 쇼박스가 투자에 참여한 '적벽'은 중국에서 큰 성과를 냈다. 배우들의 중국 영화 진출도 늘었다. 송혜교가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에, 전지현은 중국계 미국감독 웨인 왕의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를 찍었다. 정우성은 오우삼 감독이 제작하는 '검우강호'에, 김희선은 성룡 주연 '전국'에 출연하는 등 대륙을 겨냥한 행보가 속속 이어졌다.

꾸준히 중국 영화 시장을 노크했지만 큰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사전 검열에, 스크린 쿼터까지 중국 영화시장 진출 벽이 워낙 높았기 때문.

한국 영화계의 중국 영화 시장 진출은 2014년 한중 영화협력협의가 이뤄지면서 일대 전기를 맞았다. 협의를 통해 한중 합작영화는 중국 스크린쿼터 대상에서 제외하고 박스오피스 수입 중 최고 43%를 한국 투자자가 받을 수 있게 됐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2000억원 규모 펀드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후 CJ E&M을 비롯한 한국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일제히 중국 영화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CJ E&M은 '소피의 연애매뉴얼'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한중합작영화 제작에 나섰다. 2013년 자체 기획한 '이별계약'이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 역대 중국 로맨틱 코미디 톱10을 기록하며 성공을 거뒀다. 2015년 '수상한 그녀'의 중국 리메이크 '20세여 다시 한번'은 약 3억 6500만 위안(약 640억원)의 박스오피스 매출을 기록하며 역대 한·중 합작영화 최고 스코어를 기록했다.

NEW는 2015년 중국 화책미디어와 현지 합자법인 화책합신을 만들고 '뷰티 인사이드'와 '더폰', 그리고 '마녀'를 중국 상황에 맞게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쇼박스도 중국 화이브라더스와 손잡고 한중합작영화 '뷰티풀 엑시던트'를 제작했다.

CJ E&M은 한중합작영화의 잇단 성과에 고무돼 2016년 6월 중국 상하이영화제에서 한중합작영화 라인업을 발표했다. '베테랑'과 '장수상회'를 리메이크하고, 윤제균 감독이 '쿵푸로봇'를 연출하는 등 청사진을 밝혔다.

불과 한 달 뒤에 사드 배치 확정이 전격적으로 발표될 줄 몰랐기에, 장밋빛 전망이 만발했다. 쇼박스, NEW 등의 2016년 상반기 주가는 중국 합작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계속 상승했다.

2016년 7월 8일 사드 배치가 발표됐다.

모든 게 일단 멈췄다. 2016년 8월 중국에서 개봉할 계획이었던 '뷰티풀 엑시던트'는 개봉이 미뤄졌다. '뷰티풀 엑시던트'는 올해 5월 중국 개봉을 고려하고 있지만 상황은 지켜봐야 한다. 이민호가 주연을 맡은 한중합작영화 '바운티 헌터스'만 사드 배치 발표 직전인 7월 1일 중국에서 개봉해 막차를 탔다.

제작을 추진했던 한중 합작영화들은 진행이 하염없이 밀렸다. 중국영화 '무신'을 연출하려 했던 김기덕 감독은 비자가 나오지 않아 국제적인 논란이 일었다. 장쯔이와 영화 '가면'을 찍으려 했던 배우 하정우도 비자가 나오지 않아 무산됐다.

뿐만 아니다. 물 밑에서 한국 유명 감독들이 연출하려 했던 각가지 프로젝트들이 한국 감독은 안된다며 중국 감독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우회 경로로 중국에서 투자를 받은 한국영화들은 외부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질까 쉬쉬하고 있다. 중국에 판매된 영화들은 개봉 일정조차 못 잡고 있다. 지난해 1100만명이 관람한 '부산행'은 중국에 일찌감치 판권이 팔렸지만 해를 넘기고도 개봉이 불투명하다. 그 사이 불법적으로 중국에 유통됐다.

사실 중국의 한한령은 굳이 사드 배치가 아니더라도 예견된 일이었다. 중국은 다른 모든 산업과 마찬가지로 자국 산업 융성을 위해 보호 장벽을 끊임없이 만들어왔다. 한류가 급격히 중국에서 확산되자 2000년 10월,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류 콘서트가 중국 정부의 한국 대중문화 유입에 대한 제재 조치로 무산됐다. 이후 2004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를 축하하는 한중 합동 콘서트에 안재욱 등이 무료로 참여하기까지 한국 가수의 중국 공연이 허가되지 않았다. 중국은 언제, 어떤 이유로든, 자국 문화 산업을 위해서라면 한류를 옥죌 가능성이 컸다는 걸 간과한 채 장밋빛 전망만 남발한 결과다.

사드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중국에서 한류 열기가 식은 과정은 일본에서 한류 열기가 식은 과정과 흡사하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류가 현지에서 크게 인기를 얻으면 자국 시장 축소에 대한 반발이 일었다. 쌍방향으로 문화 교류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한류가 일방적으로 전파된다는 데 현지 반감이 일었다. 각국의 민족주의가 혐한류를 자극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치적인 갈등이 생기면서 급속한 냉각기가 찾아왔다. 일본의 한류가 식은 데는 아베 정권의 우익화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MB의 독도 방문과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이 방아쇠를 당겼다. 한한령도 중국 정부의 지속적인 한류 확산 경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통없는 사드 배치 발표 탓이 컸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에서 지난해 1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사드배치가 한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69.5%)보다 최순실 게이트가 한류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78.6%)이 더 컸다고 응답한 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결국 한한령에 대한 해결 방안은 비정상의 정상화에서 답을 찾길 바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향후 중국 시장을 겨냥한 한국 영화 산업 진출이 꼭 어둡기만 한 건 아니다.

중국과 합작영화를 진행하던 영화 관계자들은 "현지에서도 당장은 당국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물꼬가 트이면 충분히 다시 물이 흐를 것이라고 하더라"고 말한다.

중국의 한류가, 일본의 한류와 다르다는 점도 희망의 실마리다. 40~60대 여성들에게서 일어나 퍼졌던 일본 내 한류와 다르게 중국에선 10~20대에서 한류가 일어나 빠르게 확산됐다. 중국 한류는 적극적인 문화 수요층에서 일어났기에 당국에서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다. 공유 주연 드라마 '도깨비'와 '부산행'과 같이 중국에서 정식으로 소개되지는 못했지만 불법적으로 크게 유행한 게 방증이다.

인력 진출 혹은 유출도 꾸준하다. 중국의 수요가 크기 때문이다. 문화 산업은 하루 아침에 노하우를 쌓을 수 없다. 중국에선 브라운관TV 없이 바로 평면TV로 산업이 이동했다. 폴더폰 없이 바로 스마트폰 산업으로 이동했다. 문화 산업은 그럴 수 없다. 꾸준히 쌓이는 노하우, 검열 없는 자유로운 창작력, 결국 사람이 핵심인 탓이다.

창작의 영역부터 CG제작 등 후반 작업까지, 아직 중국 문화 산업은 발전 속도를 인력이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스터고' 등 CG를 만든 덱스터 스튜디오에 중국 알파픽쳐스가 투자하고, '명량' '터널' CG를 만든 매드맨포스트를 화이브라더스가 인수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당장은 서슬 퍼런 중국 당국의 눈치를 보기에 한중 영화산업 교류가 중단됐지만 결국은 활로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중국 영화산업이 처음으로 상승세가 꺾인 것도 무방하지 않다. 높아진 중국 관객의 눈을 만족 시킬 수요가 필요하다. 한국 영화는, 한국 영화산업은 할리우드 영화산업보다 가성비가 좋다.

대외적인 변수도 마냥 한국 영화산업, 그리고 한류에 변수다.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기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 중국 전략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한국 영화산업, 나아가 한류의 활로가 생길 수 있다. 최근 중국 당국이 대규모 해외 투자 및 인수에 제동을 건 것도 기회다. 중국 다롄완다가 최근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제작하는 딕 클락 프로덕션을 10억 달러에 매입하려다가 무산됐다. 저성장 체제로 돌입하자 중국 당국에서 대규모 자본 유출을 막으려 하면서 벌어진 일이란 분석이 많다. 돈은 돌아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싼 한국영화 산업이 대체재가 될 수 있다.

중국에는 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말이 있다. 돈이 보이면 어떻게든 방법을 만든다.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열린 아시안필름마켓에는 알음알음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중국 바이어가 상당했다. 중국에서 관련 비자를 내주지 않아 개인 자격으로 온 중국 바이어들은 2015년 아시안필름마켓에서 첫 선을 보인 '엔터테인먼트 지적재산권 마켓'( Entertainment Intellectual Property Market, E-IP 마켓)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소설,만화,웹툰 등 다양한 한국의 지적 재산권에 여전히 눈독을 들인 것.

장차 새로운 정부에서 사드 배치로 잔뜩 골이 난 중국 당국과 어떻게 관계를 회복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기회로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동안 중국만 바라봤던 한류 산업도, 한국 영화산업도 다양한 활로를 찾아야 하는 건 물론이다. 그래도 여전히 중국이 가장 큰 시장인 것은 분명하다.

중국 영화산업은, 규모는 크지만 아직 내실을 다지기에는 갈 길이 멀다. 당국이 아무리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진입 장벽을 높인다 한들, 창작의 자유가 없는 한 르네상스가 일어나기란 요원하다. 한국 영화산업이 사전 검열이 사라지면서 제2의의 르네상스를 맞은 게 역사의 교훈이다. 바로 그 틈이 한국 영화가, 한국 영화산업이 중국 시장에서 살 길이다. 중국에서 한국 영화계에 탐내는 것이기도 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 문제는 하나여도 푸는 방식은 여럿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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