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1987년과 판타지의 오묘한 동거

[리뷰]'보통사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3.22 18:58 / 조회 :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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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통사람' 포스터


'보통사람'이란 제목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말 그대로 평범한 보통의 인간을 일컫는 네 글자는 1987년 힘겹게 쟁취한 첫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서 썩 효과가 괜찮았던 서민 코스프레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했다. 영화 '보통사람'(감독 김봉한)은 그 격동의 1987년을 무대로 삼아 평범하고 단란한 삶을 꿈꾼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보통사람'이라지만 그 역시 보이는 대로 받아들일 순 없는 인물이다.


형사 성진(손현주)은 말 못하는 아내, 다리가 불편한 아들을 둔 가장이다. 그의 친구 재진(김상호)은 신문기자다. 막걸리를 들이키며 꼬부라진 혀로 욕을 주고받는 허물없는 사이지만 일에선 근성 있는 베테랑들이다. 성진이 우연히 체포한 태성(조달환)이 살인을 자백하는데, 안기부 실장 규남(장혁)은 그가 대한민국 최초 연쇄살인범이라며 두툼한 수사자료를 넘긴다. 얼떨떨할 틈도 없이 더높은 안기부 어르신이 차도 돈도 주고 아들 수술까지 시켜준다며 수사만 잘 하라니 성진은 절로 신바람이 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베테랑 형사의 촉은 잡아놓은 그 놈이 그런 살인범일 리가 없다고 한다. 낌새를 눈치챈 재진도 성진을 말리지만 성진에겐 가족이 더 눈에 밟힌다.

국정농단과 촛불정국, 그리고 탄핵. 2017년 역시 격변의 시기다. 지금이나 그때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걸 절로 실감하게 하는 30년 전의 이야기는 작금의 상황과 묘하게 공명한다. '가만히 있어야 빨리 끝나'라며 두들겨 맞는 사람, 잘못된 줄 알지만 타협하는 사람. 부도덕하고 뻔뻔한 권력 편의 사람. 그리고 그들과 맞서는 사람. 그 모두가 지금 우리의 이야기인양 가슴이 뜨거워진다. 영화는 잘못을 알면서도 달콤한 유혹에 투항하고 말았던 이의 후회와 저항을 강한 어조로 담았다. 제작 기간이 2년이 훨씬 넘게 걸린 영화에 '이 시기를 노리고 만들었냐' 소리가 나올 정도다.

주인공 성진은 단순히 시대에 희생된 불쌍한 가장이 아니어서 더 흥미롭다. 그는 소시민이면서 권력의 부역자다. '원칙과 소신'을 입에 달고 사는 말쑥한 엘리트 규남 못잖게 악의 평범성을 대변한다.

하지만 1987의 봄이라 명시까지 된, 실재하는 과거와 영화적 판타지의 이음매가 매끄럽지 않다. 중반 이후 갈등이 증폭되고 해소되는 과정이 특히 덜그럭거린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자료영상까지 등장시켜 호헌조치를 등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뻔히 알려진 사실과 전혀 다른 인물, 상황을 시대적 변화를 이끈 동력으로 삼아야 했는지 의아하다.


몇몇 납득하기 힘든 점에도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덴 배우들의 호연이 큰 몫을 했다. 스크린의 스릴러킹에서 드디어 벗어나 전매특허나 다름없던 푸근한 가장으로 돌아간 손현주가 이야기를 끌고 간다. 김상호, 조달환, 라미란 등 크고 작은 조연들도 제 몫을 한다. 이들과 전혀 다른 톤으로, 실존인물을 떠다놓은 듯 연기하는 장혁은 흥미롭다.

러닝타임 121분. 15세 이상 관람가.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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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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