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여유 찾은 '초청선수' 박병호, 신분상승 기대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3.14 07:39 / 조회 : 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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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AFPBBNews=뉴스1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는 올 시즌 스프링캠프에 도착한 뒤 구단 측에 자기 이름의 표기방식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까지 그는 영어 이름을 'Byung Ho Park'으로 썼는데 올해부터는 ‘Byung'과 ’Ho' 사이에 있던 빈칸을 빼고 그냥 ‘ByungHo'로 써주길 부탁했다. 지난해 ’Byung Ho'라고 이름을 쓰다 보니 많은 미국인들이 그를 ‘Byung' 또는 ’Ho'로 부르거나, ‘Byung'을 이름(퍼스트 네임), 'Ho'를 성(라스트 네임)으로 생각하는 문제점이 발생했기에 혼란을 없애기 위해 아예 이름의 두 글자 표기를 붙여 하나로 만든 것이다.

올해 박병호에게 달라진 것은 이름(표기)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신분이 달라졌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도 전에 박병호는 미네소타로부터 계약양도선수 지정(Designated For Assignment- 이하 DFA) 조치를 당해 40인 메이저리그 로스터에서 제외됐고 웨이버 와이어에서 어느 팀에도 클레임을 받지 못한 뒤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내졌다. 따라서 그는 이번 스프링캠프에 마이너리거 초청선수 자격으로 나서고 있다.

미네소타가 스프링캠프 시작하기도 전에 박병호를 DFA 시킨 것은 당시 현지 미 언론들도 충격적이라고 받아들였던 일이었다. 시범경기 결과를 지켜본 뒤 성적이 좋지 않으면 그때 DFA를 시켜도 될 텐데 굳이 스프링캠프가 열리기도 전에 그런 조치를 내린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프리에이전트 불펜투수 맷 벨라일과 1년 205만달러에 계약하면서 40인 로스터에 빈자리가 필요해 누군가를 DFA 시켜야하는 사정은 있었지만 다른 옵션도 있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지난해 오프시즌 야심차게 영입했던 박병호를 1년만에 DFA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상당한 도박이었다.

미네소타로선 4년간 1,200만달러에 계약한 박병호의 경우 아직도 계약기간 3년이 남아있기에 웬만해선 다른 팀들이 잔여계약 부담 때문에 그를 선뜻 픽업해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모험을 했던 것이다. 물론 최악의 경우 어느 팀이라도 박병호를 클레임한다면 미네소타 입장에선 최소한 그의 남은 3년간 연봉(바이아웃 50만달러 포함 총 925만달러)은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미네소타에게 결코 바람직한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명백하다. 아직 4년 계약의 1년 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네소타는 포스팅에서 박병호와 계약 협상권을 얻기 위해 넥센에 이미 1,285만달러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봉 275만달러를 합치면 이미 1,560만달러를 투자한 미네소타가 현 시점에서 박병호를 잃는다면 그것은 구단의 엄청난 스카우트 실패를 1년 만에 인정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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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AFPBBNews=뉴스1

하지만 박병호를 영입한 프론트 오피스가 경질돼 그 실패의 부담을 전 임원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었기에 그런 결정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박병호가 다른 팀에 가서도 계속 지난해처럼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미 투자한 1,560만달러를 날린 아쉬움보다 남은 925만달러를 절약한 ‘손절매’ 성공사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박병호가 다른 팀에 가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면 그를 내보낸 현 프론트 오피스는 상당한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미네소타 프론트오피스가 그만큼 박병호의 빅리그 성공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결정이 나온 또 다른 이유는 박병호의 포지션인 지명타자에 케니 바르가스(26)라는 젊은 유망주가 있기 때문이다. 빅리그 4년차를 맞는 바르가스는 첫 3년간 빅리그에서 총 158경기에 나서 통산 타율 0.251에 24홈런, 75타점, 지난해는 47경기에서 타율 0.230에 10홈런, 20타점을 기록했다. 기본적으로 미네소타는 바르가스에게 올해 주전 지명타자 겸 1루수 조 마무어의 백업을 맡길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도박도 마다하지 않고 박병호를 40인 로스터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아무튼 미네소타는 모험을 했고 아무도 박병호를 클레임하지 않으면서 그 도박은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시범경기 시즌이 시작되자 박병호는 올해 바뀐 것은 이름이나 신분만이 아니라는 것을 필드에서 결과로 보여주고 있다. 출장기회조차 불규칙적으로 주어지고 있으나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구단과 팬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는 현재까지 시범경기에서 타율 0.409(22타수 9안타)에 3홈런, 6타점, 6득점에다 출루율 0.481, 장타율 0.909로 OPS(출루율+장타율) 1.391을 기록하고 있다. 팀에서 안타 1위, 홈런 1위, 타점 2위, 득점 1위이고 최소한 20타석을 소화한 선수 중에서 타율/출루율/장타율과 OPS에서 모두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미네소타 선수 중 시범경기에서 박병호에 버금가는 타격을 보여주는 선수로는 또 다른 초청선수 1루수인 맷 헤이그(타율 0.474, 19타수 9안타, 1홈런, 5타점) 정도 밖에 없다.

미네소타가 개막전 지명타자로 내심 낙점한 바르가스는 13타수 1안타, 타율 0.077을 기록한 뒤 현재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에 합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 중이다. 그는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에서도 첫 두 경기에서 벤치만 지켰고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는 등 이번 봄에 공식경기에서 16타수 1안타 슬럼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박병호의 진짜 달라진 모습은 홈런과 타점에서 팀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의 홈런 파워는 이미 지난해에 입증된 것으로 그가 홈런을 많이 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의 진짜 변화는 그가 타석에서 지난해에 비해 한결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시범경기에서 박병호의 삼진 대 볼넷 비율은 듣기만 해도 끔찍한 17대1이었다. 그런데 그는 올해 시범경기에서 현재까지 삼진 6개를 당하는 동안 볼넷 4개를 골라내 지난해와는 상전벽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볼넷 4개는 팀에서 공동 2위, 삼진은 공동 5위에 해당되는 성적이다. 그가 이처럼 삼진 대 볼넷 비율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었던 것은 빠른 볼 적응 능력을 향상시킨 것과 함께 무엇보다 타석에서 여유와 인내심을 갖고 볼을 끝까지 볼 수 있는 자신감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13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박병호는 그런 달라진 모습들을 보여줬다. 1-1로 맞선 2회말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박병호는 오리올스 우완선발 딜런 번디의 몸쪽 빠른 공을 힘으로 밀어 쳐 2루수 키를 살짝 넘어가는 안타를 만들어냈고 다음 타석에선 풀카운트 접전 끝에 스트라이크존을 살짝 벗어나는 볼을 골라내 볼넷으로 출루하며 멀티출루를 기록했다. 큰 타구만을 노리고 욕심내는 스윙을 하지 않고, 또 스트라이크를 쫓아다니지 않고 유인구를 골라내는 절제된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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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AFPBBNews=뉴스1

폴 몰리터 감독도 박병호의 달라진 모습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박병호가 볼이 아닌 스트라이크에 많은 스윙이 나가는 것이 맘에 든다”면서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잡거나 당황하지 않고 있다. 타석에서 인내를 갖고 자신의 어프로치를 신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난해엔 박병호가 빅리그 루키로서 여러 가지 요인으로 적응이 힘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특히 그는 한국에서부터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한 선수인데 지난해 우리가 시즌 초반 엄청나게 부진한 출발을 보인 것도 그가 슬럼프에 빠지는 요인이 된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스프링캠프에서 박병호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올린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박병호가 40인 로스터에 복귀하고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힘들다. 기본적으로 시범경기는 연습경기로 시범경기 성적이 정규시즌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데다 현재 그가 초청선수라는 사실이 개막전 엔트리 경쟁에서 절대 불리한 핸디캡이기 때문이다.

시범경기 성적만으로 비교한다면 박병호는 바르가스에게 이미 KO승을 거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초청선수와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있는 선수의 경쟁은 애초부터 시범경기 성적만으로 승자를 가리는 ‘공평한’ 레이스가 아니다. 초청선수는 압도적이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줘야만 기회가 있지만 메이저리거들은 성적에 관계없이 몸 관리만 잘 하면 엔트리에 들어갈 기회가 있다. 현재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의 경우 시범경기 타율이 1할대에 그치는 부진을 보이고 있지만 다치지 않는 한 그의 개막전 엔트리 포함은 기정사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물론 바르가스는 추신수급이 아니고 미네소타가 그를 마이너에 보낼 수 있는 옵션도 남아있기에 박병호가 앞으로 남은 3주동안 압도적인 우위를 이어간다면 충분한 빅리그 복귀 찬스가 있다. 하지만 바르가스가 지금의 부진한 모습에서 탈출한다면 미네소타 프론트오피스가 원래 계획대로 그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박병호는 트리플A로 보내 더 경험을 쌓게 한다는 원안을 고집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박병호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시킨다면 불과 몇 주 전에 그를 DFA 시켰던 결정이 무색하게 되는 것은 물론 그를 다시 40인 로스터에 올리기 위해 누군간 다른 선수를 제외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미네소타가 일단 박병호를 트리플A로 보냈다가 시즌 중반에 불러올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결국 그 때문이다.

결국 박병호는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포지션 경쟁자 뿐 아니라 신분의 차이와도 싸우고 있는 셈이다.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의 무게가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역시 초청선수로 엔트리 경쟁을 하고 있는 황재균의 경우도 팀내 홈런과 타점에서 공동 1위에 올라있음에도 역시 트리플A행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이야기다. 초청선수가 개막 엔트리에 진입하려면 단순히 경쟁에서 이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경쟁에서 완벽하게 이기는 것은 필요조건일 뿐이고 그밖에도 여러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다.

하지만 박병호가 이 고비를 이겨내고 빅리그에 복귀한다면 그의 위상은 비온 뒤에 땅이 더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처럼 훨씬 더 탄탄해질 수 있다. 시작부터 공평하지 않은 레이스였기에 만에 하나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한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번 시범경기에서 인상적인 퍼포먼스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기에 그를 원하는 팬들의 압력이 프론트오피스의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박병호가 현재의 페이스를 계속 이어간다면 미네소타 프론트오피스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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