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황재균의 도전이 아름다운 이유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3.10 07:17 / 조회 :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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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균 /AFPBBNews=뉴스1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사실 대회는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참이지만 참담한 현 주소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한국야구 입장에서 보면 이미 끝난 대회다. 하필이면 가장 먼저 일정이 시작된 A조에서 첫 이틀간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연패를 당한 한국은 대회 개막 이틀 만에, 그것도 안방에서, 가장 먼저 탈락한 팀이 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당연히 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마지막 3차전에서 연장 끝에 대만을 따돌리고 첫 승을 거두며 그나마 안방 전패의 치욕은 면했으나 여전히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무엇보다도 한국프로야구(KBO)에 낀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도 있고, 야구가 생각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몸값만 수십억원이 넘는 선수들이, 그것도 처음으로 한국에서 벌어진 대회에서 이처럼 무기력하고 전혀 투혼이 느껴지지 않는 플레이를 보인 것은 팬들로서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당장 선수들의 정신자세가 잘못됐다는 질타가 타져 나오는 등 한국 야구의 문제점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부쩍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KBO리그의 거품론과 스트라이크존 문제다. KBO 경기에서 스트라이크존이 너무 좁았던 것이 타격 거품을 키운 데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타자들의 극심한 부진이 국내에서보다 훨씬 넓은 국제 야구의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사실 평소 경기 때는 볼이었던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다면 타자가 쉽게 적응하기가 힘들 것이 당연하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KBO의 심판위원장이 올해 시즌부터는 스트라이크존을 원래 규정집에 있는 데로 엄격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지만 늦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하니 당연한 이야기다.

사실 KBO리그의 타고투저 현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규정타수를 채운 3할 타자의 수는 30개 구단을 다 합쳐서 단 25명에 불과했다. 3할 타자가 팀당 1명이 채 안됐다. 그런데 KBO리그를 보면 3할 타자가 차고 넘쳐 아예 팀 전체가 3할 타자들로만 채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기록을 살펴보니 KBO에선 대부분 팀의 팀 타율이 3할에 육박한다. 거의 3할인 두산(0.298)을 비롯, 넥센(0.293), 삼성(0.293), SK(0.291), NC(0.291), LG(0.290) 등 6개 구단은 팀 타율이 2할9푼을 넘었고 최하위인 kt의 팀 타율도 0.276이나 됐다.


이를 메이저리그와 비교하면 차이가 뚜렷하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팀 타율이 KBO리그 꼴찌 kt보다 높았던 팀은 보스턴 레드삭스(0.282) 한 팀 밖에 없었다. 메이저리그 팀 타율 1위가 KBO에선 끝에서 2등인 셈이다. 월드시리즈 챔피언인 시카고 컵스의 팀 타율은 kt보다 훨씬 낮은 0.256에 불과했는데 그 것이 메이저리그 전체 14위로 평균에 해당된다. LA 다저스 등 9개 구단은 팀 타율이 2할5푼에도 못 미쳤다. 이 정도면 KBO 타율엔 상당한 거품이 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KBO 선수들의 몸값도 거품이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다. 이번 오프시즌에 이대호와 최형우가 각각 4년간 총액 150억원과 100억원에 계약하면서 선수 몸값 100억원 시대가 열렸다.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평균 이상의 대우다. 그런데 선수들의 몸값이 올라가면서 팬들의 눈높이도 올라갔지만 필드에서 선수들의 보여주는 기량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KBO의 인기가 높아지고 시장이 커지면서 몸값은 계속 치솟고 있지만 선수들의 기량이 그와 비례해 계속 올라갈 수는 없으니 거품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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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팀./사진=뉴스1


그렇다면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해 타자들의 거품을 빼면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근본적으로 선수들의 기량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 한 이것은 투수 쪽에서 또 다른 거품을 만들어낼 뿐이다. 투구와 타격은 일종의 제로섬 관계이기에 투수가 잘하면 타자는 못할 수밖에 없고, 타자가 잘하면 투수는 못할 수밖에 없다. 타자와 투수가 동시에 잘할 수는 없다. 당장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져서 타자들의 타율은 뚝 떨어진다면 반대로 투수들의 평균자책점과 피안타율은 훌쩍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됐다고 KBO리그가 타고투저에서 투고타저로 변했다고 주장한다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일 뿐이고 거품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것일 뿐이다.

결국 결론은 거품을 그런 방법으로 제거하는 것은 약간은 도움이 될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하게 거품이 빠지려면 투구와 타격에서 모두 선수들의 기량이 지금보다 훨씬 더 올라가야 한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시장이 계속 커지는 한 선수들의 몸값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추세다. 그런데 리그 전체 수준의 성장 없이 몸값만 계속 올라간다면 거품론도 계속 커질 것이고 궁극적으론 KBO가 팬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 시스템에서 선수들의 기량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선 선수 공급부터가 문제다. 국내 전체를 통틀어 고교 야구팀은 50~60여개에 불과한 데 KBO 구단 수는 10개나 된다. 10개 구단에 꾸준하게 경쟁력 있는 선수 공급이 이뤄지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사실 메이저리그는 제쳐두고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만 봐도 프로구단 수는 12개인데 고교 야구팀은 5천개가 넘는다. 선수 공급원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하다.

이런 처지에선 당연히 기량이 처지는 선수들도 프로무대에 나서게 되고 이는 전체적인 KBO리그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게 된다. 또 기량이 월등하게 앞서는 선수들은 자신을 위협할 상대가 별로 없으니 아무래도 현실에 안주할 가능성도 커지는 것도 문제다. 대강 설렁설렁 운동해도 리그 최고스타 대접을 받을 수 있고 리그 성장에 따라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다면 더 발전하기 위해 평소에 악을 쓰고 노력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결국 이런 이유들로 인해 용병제도가 있는 것이지만 용병 수가 팀별로 인원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선 그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메이저리그처럼 용병제도라는 개념 자체가 없이 실력만 있으면 어디서 왔든지 관계없이 리그에서 뛸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현실적인 고려대상이 아니다. 제도적으론 팀당 용병수를 더 늘리는 방안 정도가 고려할 수 있는 한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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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균.


결국은 선수들 자신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부와 명예를 다 가진 최고의 스타급 선수들부터 거기서 만족하거나 멈추지 않고 더 발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면 나머지 선수들도 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고 당연히 팬들은 그에 응답할 것이다. 그런 선수가 점차 많아지는 것만이 근본적으로 KBO리그의 거품론을 씻어낼 수 있는 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스플릿 계약을 체결하고 지금 스프링캠프에서 초청선수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황재균의 도전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국내구단의 거액 계약오퍼를 받아들여 현실에 안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어렸을 때의 꿈을 좇아 아무런 보장 없는 모험에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황재균 같은 선수들이 KBO를 떠나는 것이 리그 차원에서 볼 때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니지만 이들이 도전에 성공, 더 큰 무대에서 명성을 떨치고 꿈을 이뤄낸다면 궁극적으로 KBO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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