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헝그리 마이너리거'들의 이스라엘, 한국 울리다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3.07 08:15 / 조회 : 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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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꺾고 기뻐하는 이스라엘 선수단.


혹시나 하고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한국 야구가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A조 첫 경기에서 복병 이스라엘에 1-2로 덜미를 잡혔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면서 한국은 안방에서 벌어지는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하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실제로 일어날 위험성이 높아졌다.


한국 대표팀은 6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벌어진 대회 1차전 경기에서 이스라엘에 연장 10회초 결승점을 내주고 뼈아픈 1-2 고배를 마셨다. 8명이 나선 투수진은 이스라엘 타선을 8안타 2실점으로 막았지만 볼넷을 9개나 남발하며 번번이 위기를 자초했고 타선은 6명의 이스라엘 투수를 상대로 단타 7개와 볼넷 4개를 얻는데 그치고 삼진은 10개나 내줬다. 믿었던 중심타자 김태균(한화)-이대호(롯데)는 둘이 합쳐 합계 8타수 무안타 4삼진에 잔루 8개를 기록하며 철저히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는 수비에서조차 생소한 고척돔에서 경기한 이스라엘 선수들이 익숙한 홈필드의 한국 선수들보다 한결 더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한마디로 이날 경기는 대표팀은 물론 한국프로야구(KBO) 전체에 대한 실망감까지 높여준 ‘역대급’ 졸전 중 하나였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은 7일 벌어지는 2차전에서 A조 최강 네덜란드와 만난다. 선수 전원이 마이너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이스라엘과 달리 네덜란드는 라인업 전체에 현역 빅리그 스타들이 깔려있는 강호다. 특히 이날 한국전엔 에이스 릭 밴덴헐크(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선발로 나선다. 지난 2013년과 2014년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밴덴헐크는 시속 150㎞대 중반의 빠른 공에, 140㎞대 슬라이더, 120㎞대 커브를 던지는 위력적인 구위를 갖춘 특급 투수인데다 삼성 시절 경험으로 한국 타자들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이점까지 갖고 있다. 무조건 이겨야하는 처지가 된 한국 입장에선 배수진을 친 상태에서 가장 힘든 상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잘못하면 대회가 시작된 지 단 이틀 만에 안방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는 망신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의 전력이 불안하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1라운드가 홈경기로 치러진다는 엄청난 프리미엄에도 불구, 뚜렷한 특징없이 짜여 진 대표팀에 출발부터 좀처럼 신뢰감이 들지 않았었다. 선수 선발을 둘러싼 시점부터 어수선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고 부상으로 낙마하는 선수도 속출하면서 선수들 사이에서도 도전에 대한 흥분과 의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치면서 대표팀에서 제외된 것이 팀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상당한 악재가 된 데다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와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소속팀 반대로 대표팀 합류가 무산된 것도 팀의 분위기를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

국내 선수 중에서도 에이스 김광현(SK)에 이어 이용찬(두산), 정근우(한화), 강민호(롯데) 등 주전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한 이탈이 꼬리를 물었던 것도 더욱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심지어는 메이저리거로 유일하게 합류한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조차 과거 해외 원정도박으로 KBO에서 징계를 받은 상태라는 사연 때문에 팀에서 리더 겸 분위기 메이커로 나설 입장은 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팀 전체가 하나로 뭉친 일체감과 자신감이 결핍된 상태로 이번 대회에 나서고 있음은 누구의 눈에도 자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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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충격패를 당한 한국 WBC 대표팀.


그런 분위기는 이번 대회에 대한 팀의 기대치에서도 반영됐다.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안방에서 조별리그 3전 전승으로 2라운드 진출이 목표였겠지만 이번 대회에선 말로나마 그런 목표를 외치는 것을 들어보기 힘들었다. 솔직히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떻게 해서라도 2라운드는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치 정도였다. 4년 전만 해도 우리의 맞상대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네덜란드에 대해선 이번엔 꺾기 힘든 상대라는 분위기가 강했고 본선 16개국 가운데 최약체로 평가됐던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연습경기를 지켜본 결과 결코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런 두려움은 우선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취약했기에 더욱 쉽게 선수들의 뇌리에 파고들었다.

이미 전성기가 지난 지 한참 된 왕년의 빅리거들과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무명의 마이너리거들로 짜여 진 이스라엘 대표팀의 전력이 의외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첫 경기에서 이미 자신감이 결여된 한국 선수들의 몸을 굳게 만들었고 스스로 패배의 길을 찾아가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날 이스라엘을 상대로 선발 등판한 장원준은 4이닝동안 삼진 5개를 솎아내며 2안타 1실점으로 기록상으론 괜찮은 투구내용을 보였으나 실제로 그의 투구에선 확신과 자신감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2회에 계속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가 2루타와 볼넷 3개로 밀어내기 선취점을 내준 것은 이날 경기 분위기 전체를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는 실점 이후엔 공격적인 모습으로 돌아서며 추가실점 없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으나 시작부터 그런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했더라면 이날 경기 전체의 분위기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이날 경기에서 나타난 이스라엘 타자들의 실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렇다고 상대에 위협감을 줄 정도로 인상적인 것은 전혀 아니었다. 투수들이 자신감을 갖고 정면승부로 나섰더라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었던 상대들이었다. 하지만 한국 투수들은 결과적으로 과감한 정면승부 대신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베테랑 선발 제이슨 마키를 비롯한 이스라엘 투수진들이 모두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기 했으나 사실 한국타자들을 압도할 구위는 아니었음에도 불구, 경기 내내 타석에서 뭔가 자신감을 갖고 공략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2안타씩을 친 서건창(넥센), 손아섭(롯데), 민병헌(두산) 등을 제외하면 한국선수 특유의 독하게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완전히 실종됐다. 더구나 중심타선의 부진은 실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컨디션 난조로 아예 선발 라인업에서조차 제외된 최형우(KIA)외에 김태균-이대호까지 대표팀의 핵심타자들이 모두 무기력했다. 이들 중심타자들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한국팀에 어떤 희망도 없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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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포수 라반웨이와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는 조시 자이드.


반면 한국과 맞서 싸운 이스라엘팀의 발걸음에서는 ‘언더독’으로써 뭔가를 만들어보겠다는 투지가 느껴졌다. 이스라엘 야구협회장 피터 쿠츠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유태인계인 다수의 현역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참가를 타진했으나 끝내 한 명도 건지지 못했다. 폴 골드슈미트(애리조나), 라이언 브론(밀워키), 케빈 필라(토론토), 작 피더슨(LA 다저스), 이안 킨슬러(디트로이트), 알렉스 브레그만(휴스턴) 등 쟁쟁한 선수들이 모두 그의 초청을 정중히 거절했고 이중 골드슈미트와 킨슬러, 브레그만은 미국 대표팀에 합류했다.

미국 대표로 뛸 경우 대회 1, 2라운드를 마이애미와 샌디에고에서 치르는데 반해 이스라엘 팀에 합류한다면 스프링캠프 도중에 태평양을 건너와 한국에서 경기해야 하고 또 1라운드를 통과할 경우 일본에서 2라운드를 치러야하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시즌을 앞두고 지나치게 힘든 여정이 될 가능성이 컸기에 모두들 고사했다. 그나마 마키와 함께 가장 풍부한 빅리그 경험의 소유자로 지난해 브룩클린 예선에 참가했던 왼손 구원투수로 크레이크 브레슬로도 대회 직전 미네소타 트윈스로부터 스프링캠프 초청을 받아 대표팀을 떠나갔다.

결국 이스라엘은 왕년의 스타 마키를 제외하곤 전원 무명의 선수들로 짜여진 팀을 한국에 보냈다. 하지만 배고픈 마이너리거들로 짜여진 팀은 이번 대회를 통해 뭔가 보여주겠다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팀이었다. 뉴욕 메츠 소속인 타이 켈리는 “우리는 올스타 팀이 아니다”라면서 “우린 하나같이 잡을 얻기 위해 뛰는 선수들이다. 뛰면서 기량을 보여줄 찬스를 원한다. 우리가 아직도 플레이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선발 마키는 “이번 대회가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으로 마운드에 서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면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승리가 절실한 이들은 첫 경기부터 일을 냈다. 불행히도 그 제물은 한국팀이 됐다.

이젠 한국이 배고픈 팀이 되어야 할 차례다. 다시 도전자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2차전 상대인 네덜란드는 지난 2013년 대회에서 한국을 꺾은 뒤 여세를 몰아 4강까지 올랐던 팀으로 이번에 더욱 강한 팀으로 돌아왔다. 분명히 한국보다 강한 팀이다. 하지만 한국야구는 지난 2006년 1회 대회와 2009년 2회 대회 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4강과 준우승의 성과를 냈던 숨은 저력을 갖고 있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처음 도전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잊고 있었던 한국 야구의 저력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번 대회는 한국 대표팀에 사실상 시작하자마자 단 이틀 만에 끝난 대회라는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다. 아직 기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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